대보름날 택시를 탔더니, 기사님이 대뜸 이렇게 말하셨다. 쥐불놀이며, 강강술래며 달집도 태워야 하고, 부럼도 깨고, 더위도 팔아야 하고, 또 오곡밥에 김, 귀밝이술에다 말린 나물반찬도 먹어야 했단다. 말만 들어도 하루가 짧을 지경이었다. 아직도 대부분남아있는 풍습인 걸 보면, 그 당시 대보름은 1년 중 가장 큰 행사였을지도 모르겠다.
올해 대보름도 다르지 않았다. 대보름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 어제와, 보름달의 모습을 담으려는 오늘이 있었다. 가로등보다 더 밝은 보름달은 어쩌면 소원을 들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보름달이 떠오른 오늘, 쥐불놀이를 하지도, 귀밝이 술을 마시지도 못했지만, 보름이 지기 전에 부럼은 깨야하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했다.
부럼 깨기는 견과류를 이로 깨며 치아의 건강을 비는 풍습을 말한다. 1년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올 한 해의 건강과 복을 비는 것이다. 옛날에는 나이의 수만큼 부럼을 깼다고 하는데, 과연 이 건강에 긍정적이었을지는 의문이다.
올해는 턱관절은 지키고, 부럼 깨는 즐거움은 그대로 남겨줄 디저트를 만들어본다. 보름달 같은 껍질을 깨면 그 안으로 견과류의 고소함이 한가득이다. 이 대신 숟가락으로 깰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다쿠아즈는 머랭과 견과류 가루를 이용해 만든 디저트로, 사용되는 재료가 마카롱과 비슷하다. 다만 훨씬 폭신하고,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지 않다. 이번에는 견과류가 주인공인만큼 아몬드가루가 담뿍 들어간 다쿠아즈를 만들어보자. 다쿠아즈 위로는 마스카포네 크림과 함께 헤이즐넛이 풍성하게 올려진다. 마지막으로 초콜릿 껍질을 보름달로 만드는 과정까지 레시피 안에 담아냈다.
헤이즐넛은 미리 볶아서 준비한다. 헤이즐넛뿐만 아니라, 모든 견과류는 한번 볶아주면 그 특유의 향을 증폭시킬 수 있다. 더불어 떫은맛도 없어지니, 선택이 아닌 필수과정이라 할 수 있다.
헤이즐넛을 식히는 동안 빠른 속도로 다쿠아즈를 만들어주자. 단단하게 거품을 올린 흰자에 아몬드가루와 다른 가루들을 섞어 준다. 거품이 꺼지지 않게 살살, 그러면서도 스피드를 더해 반죽을 만든다. 굽기 전에 슈거파우더로 옷을 두 겹 입혀주면 순식간에 오븐에서 구워낼 준비가 끝난다.
노릇하게 익은 다쿠아즈는 식혀서 동그랗게 잘라낸다. 잘려나간 자투리는 자연스럽게 입 속으로 들어갈지 모른다. 괜찮다. 달콤하고 폭신한 그 맛은 그 누구라도 참지 못할 테니 말이다.
견과류의 고소함을 온몸으로 풍기며 구워진 다쿠아즈를 옆에 두고, 헤이즐넛을 변신시키자. 팬에 재료를 넣고 저어 주다 보면, 시럽에서 설탕결정으로, 그리고 다시 설탕결정에서 캐러멜색으로 시시각각 모습을 바꾼다.
미리 헤이즐넛 몇 알을 빼두고, 믹서에 곱게 갈면 헤이즐넛과 설탕이었던 것들은 이내 황금색의 페이스트로 바뀐다. 이때 헤이즐넛 페이스트를 맛보지 않도록 하자. 한번 맛보면 빠져나올 수 없이 다 먹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헤이즐넛 페이스트를 만들고, 마스카포네 필링을 준비하자. 휘핑을 단단히 올려서 재료를 한데 섞으면 완성이다. 이때 젤라틴이 꼭 들어가야지, 보름달의 동그스름한 모양을 유지해 낼 수 있다. 완성된 필링은 조금 덜어 헤이즐넛 페이스트와 섞어주자. 꾸덕했던 페이스트가 보다 부드럽게, 만지기 좋은 상태로 바뀌게 된다.
이제 필요한 재료는 모두 준비된 셈이다. 초콜릿으로 모양을 잡아내면 이제 필요한 것은 시간뿐이다. 돔형틀에 녹인 초콜릿을 얇게 펼쳐 바르고, 차갑게 굳힌다. 그 안으로 크림 - 페이스트 - 크로캉트 - 다쿠아즈를 순서대로 가득 채운다. 보름달처럼 가득 찬 틀을 냉동실에 넣어 얼리기만 하면 된다.
꽁꽁 얼린 뒤 틀에서 조심스럽게 분리하고 다시 냉장고에서 크림을 녹여준다. 번거롭긴 하지만, 모양을 잡아주기 위해 얼리고 녹이는 작업이 빠지면 곤란하다.
냉장고에 있던 디저트를 꺼내 그 위로 단호박 가루를 얇게 뿌린다. 그럼 이내 접시 위로 둥근 보름달이 떠오른다. 숟가락 등으로 초콜릿을 깨면 그 속으로 헤이즐넛향의 크림이 가득하다. 이로 호두를 깨무는 대신 숟가락으로 견과류 디저트를 깬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작게 잘라 한입 떠먹으면 설탕으로 코팅된 헤이즐넛이 와자작 하며 깨지는 소리를 낸다. 이 정도면 부럼을 깼다고 해도 민망하지 않을 정도이다.
헤이즐넛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견과류라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종류가 무엇이 되었든 접시 위로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 속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쏟아져 나올 때면 대보름의 풍성함을 대신 느낄 수 있다.
올 한 해 평안하고 풍족한 시절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담아 보름달처럼 풍성한 디저트를 만들었다. 달이 들어주지 못한 소원이 있다면 서운함을 담아 보름달을 깨트려도 좋다. 깨트린 그 속도 결국 행복한 맛으로 가득 채워 두었으니 말이다.
부럼보다 고소한보름달을 깨트리며 올 한 해도 풍성하길 바라면서, 헤이즐넛 다쿠아즈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