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byell Mar 16. 2023

봄소풍을 기억하는 법 | 쑥팥빵

경칩 - 완연히 깨어난 봄

코 끝으로 연둣빛의 바람이 분다.


아직 진한 초록은 못 되었지만 더 이상 시들어있다 하기 민망한, 설레는 색으로 바람이 물들었다.

봄이 왔다. 촉촉이 젖은 땅을 비집고 작은 싹이 올라온다. 그 작은 향기를 바람이 담고 불어온다.


하나의 단어로 형언하기 힘든 봄의 향이 불어오면 나뭇가지 하나를 챙겨 쑥을 캐러 가야 한다. 어린 나의 손에 꺾인 나뭇가지가 들려있었다. 이맘때의 여린 쑥을 캐는 데에는 거창한 것이 필요하지 않다. 어린아이의 힘과 꺾인 나뭇가지의 날카로움만으로도 충분하다.


조기교육 덕에 갖은 풀 사이에서 쑥을 찾아내는 것은 전혀 어려울 것이 없다. 옅은 보라색 줄기를 얼마나 상처 없이 잘 끊어내느냐가 더 중요했다. 그렇게 한 바구니 잔뜩 가져오면 그날은 쑥국이 저녁메뉴로 올라왔다.


사실 쑥을 캔다는 건 놀이에 가까웠다. 이 시기를 풍만히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엄마와 동생이 함께 뒷산으로 떠나는 소풍에 껴있던 작은 이벤트라고 할까. 놀랍게도 그 소일거리는 아직도 내 손끝에, 코끝에 진한 기억으로 물들어 있다.


개구리가 깨어날 정도로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경칩. 이맘때면 항상 쑥을 캐러 가던 기억을 레시피에 담았다.


팥빵은 특이할 것이 없다. 설탕이 적당히 들어간 달달한 반죽 안으로 잘 만든 팥을 채워 넣으면 된다. 대신 오늘은 남은 반죽과 재료들로 위트를 더했다.


쑥은 비를 맞으면 크기가 커진다. 때문에 바람에 봄내음이 묻어나기 시작하면 지체할 겨를이 없다. 곧장 산으로, 들로 쑥을 찾으러 가야 한다.

히지만 애써 시간을 내지 않더라도, 요즘은 쑥을 골라 파는 곳이 많다. 엄마가 좋아하 어린 쑥은 잘 없지만, 어렵지 않게 진한 향의 쑥을 구할 수 있다.


쑥은 가볍게 데쳐 잘 갈아준다. 양이 많지 않아도 색과 향을 내기엔 부족함이 없다. 다른 재료와 함께 반죽을 만들다 오일을 마지막으로 넣는다. 그럼 숨겨져 있던 오일과 쑥의 향이 시너지를 내며 주방에 퍼진다.

맨질맨질해진 초록의 반죽은 따뜻한 곳에서 충분히 발효시킨다. 두둥실, 부피가 커지기만을 기다리자.

기다리는 동안 특제 팥앙금을 만든다. 팥을 미리 불려두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설탕을 너무 아끼기보다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정도로 충분히 넣자.

미리 불려둔 팥은 이내 형태를 잃고 달달한 팥앙금으로 졸아든다. 설탕을 넣기 전의 팥은 고소함을 품었다면 팥앙금은 고소하고 달달한, 작은 행복과 닮은 맛이다.

팥과 반죽은 크기에 맞춰 떼어내고, 반죽 가운데에 팥소를 넣어 둥글게 완성한다. 이제 남은 반죽과 재료로 위트를 더한다. 눈과 코를 콕콕 박으면, 짠! 경칩과 어울리는 개구리모양 팥빵이 되었다.


다시금 따뜻한 곳에서 반죽이 자라날 수 있게 시간을 준다. 그럼 드디어 오븐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스팀 가득한 오븐에서 나온 개구리 여섯 마리. 왜인지 약간 미안한 마음을 품고 한입 베어 물면 봄의 향이 난다.


쑥의 향은 오븐의 열기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입안으로 스며들었다.  향기 사이로 팥앙금이 고개를 내밀면, 그 달콤 쌉싸래한 봄의 맛이내 미소 짓고 만다.


쑥을 향한 작은 모험. 그날의 봄소풍을 기억하며, 쑥 팥빵 완성이다.

이전 02화 보름달을 기억하는 법 | 헤이즐넛 다쿠아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