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마음에 안 들어요
어제(2022.10.23. 일요일), 대한민국 대통령실은 새 CI를 공개하였다.
https://www.ajunews.com/view/20221023153606779
뭔가 새로운 것의 반응은 일반적으로 평안하지가 않나 보다. 청와대가 빠진 대통령실은 뭔가 한국적이지도 않아 보이고, 가오나지 않아 보인다. 미국 국가권력의 상징이 백악관이듯이, 대한민국 국가권력의 상징은 청와대였는데 나한테는 아직 여전히 인지부조화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다.
나는 내심, 한옥의 미를 살려지은 국가상징물 청와대가 "국민께 돌려드린다"며 그냥 관광지화 되는 게 서운한 사람이다. 나, 국민은 맞는데, 그거 한 번도 돌려달라고 말한 적 없는데......
대통령실 건물을 형상화해서 만든 거란 건 설명안 해도 알겠다. 으음... 그런데, 청와대보다 영 멋이 떨어져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청와대는 누가 봐도 한국 같지 않냔 말이지. (구)국방부 청사 건물은 각 잡힌 군인처럼 보이긴 하지만 암만 봐도 대한민국 상징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슬로건 보니 또 열받네.... 슬로건이 마음에 안 드는 이유 간접광고.)
https://brunch.co.kr/@ragony/118
차라리 저 밋밋하고 특징 없는 건물을 빼고, 한국적 미를 살려 디자인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든다.
나만 저게 아쉽나 인터넷 반응을 살펴보니,
"ㅋㅋ 검찰 로고에다 봉황만 넣었네",
대통령실 로고 "검찰 형상" 주장에 "억지 주장"이라는 대통령실 반박에는
"억지는 누가 부리는데? 전 국민 청력 테스트에 이어 시력 테스트까지 하는 거냐?"
등등의 부정적 댓글 일색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6/0000115209?sid=100
비슷한가? 비슷하네. 의도한 게 아니라서 억울할 수는 있겠는데, 내 눈에도 비슷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해석도 기가 막히잖아. 검찰을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이 감싸고 있는 그림 맞구만. 정책과 디자인을 다수결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주요 포털의 댓글 반응에는 응답자의 80.96%가 "화나요"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http://www.bigta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89
나는 그냥 화나는 감정보단 좀 착잡한 감정이 든다.
원래 "Good Guy, Bad Guy" 이론이 있지 않은가. 초장에 한 번 잘 보인 사람은 신뢰감을 형성해서 뭘 해도 이뻐 보이고, 며느리가 미우면 발 뒤꿈치가 계란 같아서 미운 법. 대통령실이 취임 초기 보였던 검찰 일색의 인사 중용, 소통 없는 고압적 태도 등이 이번 반응에 다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Bad Guy"에 찍힌 거겠지. "Bad Guy"를 "Good Guy" 이미지로 바꾸려면 연타석 홈런을 때려서, 어, 보기보다 잘하네~ 내가 생각한 게 아닌갑네~ 라는 반응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과연? ㅡ_ㅡ;
CI(Corporate Identity, 기업이미지), 아니지, 정확히 말하자면 NI(National Identity, 국가이미지)가 맞겠는데, 어쨌든 이거에 관한 내 느낌을 조금만 더 보태면...
보들보들해야 할 봉황 꼬리가 검찰의 차가운 칼끝같다. 찔리면 피가 퐁 나겠다고.
대한민국은 선이 곱디고운 한옥과 한복의 나라 아닌가. 디지털 시대에 가급적 문양을 간소화하는 추세인 건 알겠다만 민심을 부드럽게 품어야 할 봉황이 저렇게 서슬이 시퍼런 칼날을 품어서야 되겠는가. 모름지기, 문양은 거부감이 없고 곱고 예뻐야 한다. 예쁘면 용서가 된다. 그래서 전문 디자이너가 있는 거 아닌가?
이쯤에서 과거 청와대 문양을 소환해보자.
아. 평온하군... 한국의 미를 살려 처마의 선도 곱고, 품위와 위상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물론, 안 좋은 기억도 같이 소환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직제의 전 세계 통용 명칭인 "대통령실"보다 대한민국의 고유함이 느껴지고 당당하고 깔끔하다.
미국은 어떻게 하나 함 보자
누가 봐도 백악관. 깔끔하다. 조금조금 차이가 있는데, 조 날리면..아니,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2021년도에 최종 업데이트 한 문양이라고 한다.
https://blog.naver.com/tim9202/222247796774
요즘 CI 트렌드는 단순화, 평면화가 대세이다. 그것이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기 효율적이며 다양한 환경에 범용적으로 적용하기에도 쉽기 때문이다. 문양이 입체적이고 복잡하면 다양한 디지털 환경에서 일관적인 이미지를 제공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https://joss-apple.tistory.com/73
그런 점에서 평면적으로 (봉황과 건물을) 최대한 단순하게 디자인한 대통령실 새 로고는 시대적 유행은 잘 따른 것처럼 보이긴 하다. 복잡한 그라데이션도 없고, 복수의 색상도 쓰지 않았으니, CI 적용 시 혼란도 덜 따라올 것 같다.
로고 개발을 위해 1억을 넘게 집행했다고 하는데, 사실, 로고 바꾸는 작업은 돈과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 작업이라는 것을 나는 이해한다. 이게 단순히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에서 그림 몇 장 그린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저 문양이 나오기까지 1안 2안... 37안.. 151안... 등등해서 수백 장 그림을 그려다 바쳤을 디자이너의 고충이 느껴진다. "이건 아니야", "이것도 아니야" ".... 그럼 어떻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거 하라고 용역 하는 건데." 했을 거야.... 안 봐도 알아...... 그래서, 고객이 마음에 들 때까지 수백 장 그렸을 거다. 그것도 대충 그린 게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해서 각각의 그림을 완성도 99% 버전으로.
그림만 그리는 게 아니고, 이 그림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초자료 조사도 하고, 국내외 벤치마크도 한다. 이 와중에 고급인력 출장비와 연구비도 포함되고 설문조사비도 들어간다.
방향성이 정해지면, 로고의 적용을 위한 매뉴얼을 개발해야 하는데, 이 매뉴얼이 기본이 수십 쪽이 넘어간다. 로고는 한 종류가 아니다. 대표 이미지는 하나지만, 가로 문양, 세로 문양 및 이에 어울리는 별도 서체를 개발해야 하고, 역상 사용의 기준도 심미적 안정감을 생각해서 표준으로 정한다. 공무원증, 봉투, 서류 표지 등등에도 다 이걸 쓸 거니까, 디자인 오브제 생각해서 균형감을 하나하나 만든다. 사무실 문에도 붙이고, 차량에도 디자인하고 CI 하나를 개발하려면 따라붙는 문서와 보조 디자인이 한 두 종류가 아니다. 이거 저거 다 하면 기본 수천만원 깨진다. 하물며 국가 상징인데. 1억 정도의 예산은 수긍이 된다.
나 잘 이해한다구. 배운 사람이니까.
그런데, 정말 배경조사 열심히 하고 여론 수렴해서 어디 내놔도 안 부끄럽게 자랑스럽게 만든 거 맞으심???
아니거 같은데???
정말 100번 양보해서 저 날카로운 칼끝만 좀 뭉뚱그려주시면 안 될래나? 나 볼때마다 피 날거같아 무서운데.
아...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청와대 로고가 한국적이고 정겹고 훨 낫다. 국민께 청와대를 돌려줄게 아니라 청와대 로고를 도로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