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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Nov 10. 2022

"가나안 프로젝트" 탈고 후기

창작의 고통이란

 오늘 작가의 SF 소설 최신작, "가나안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ragony/154


 30개 국가 이상에서 독점출판 계약요청이 쇄도하며 2022년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 아니지, 그래미는 노래하면 주는 상이죠.. 거 뭐냐 그... 노벨 문학상에도 한국인 최초로 거론되면 좋겠지만, 언제나처럼 이웃작가님들의 따뜻한 응원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ㅡ_ㅡ;


 다만 소설이 탈고되면 먹으려고 막걸리 준비해놨습니다. 탈고 기념으로 내일 저녁에 먹을 거예요. 사실 지난 주말에 먹을 수도 있었는데 여기도 날씨가 많이 선선해져서 발효가 늦게 진행되네요. 여름에 하루면 되던 발효가 이제 최소 일주일은 걸리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술 먹을 때는 온갖 이유 다 갖다 붙이면 됩니다. ㅋㅋㅋ


 이번 소설은 비교적 오래 전에 기획했었습니다. 소설 "문어" 탈고 시점부터 구상하던 소설이니 두어 달은 이리저리 구상을 하긴 했었네요. 다만, 머릿속에서만 굴려보던 구성이라 막연히 행성과 위성의 융합이라는 큰 플롯 하나만 줄구창창 상상하고 구체화했을 뿐이지 세부적인 스토리보드를 미리 만들지는 못했어요.


1. 왜 화성인가 / 왜 유로파인가

 괴짜 CEO 일론 머스크의 꿈 중 하나가 인류의 화성 이주를 완성하는 거라고 하지요. 저도 별 바라보길 좋아하는 공학도로서 인류의 타 행성 진출을 희망하는 사람이긴 해요. 그렇지만 화성 이주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인류의 행성 진출은 장기적인 테라포밍(행성의 지구화 개조)을 염두에 두고 실행되어야 할 텐데, 가까운 미래에 화성이 테라포밍 될 것 같지가 않거든요. 지구의 자원을 옮겨 사는 건 극소수의 이주민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고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화성 극지방에 핵탄두를 떨어뜨려 물을 녹인다든가 하는 여러 방안들이 제시되었지만 그다지 와닿지가 않아요. 화성의 테라포밍 선결조건은 어떻게 기온을 높여 물을 만드는가 하는 건데, 다들 알다시피 화성에는 물 자체가 많지가 않잖아요. 극지방의 물을 녹여본들 그게 얼마나 되겠어요. 그리고 이건 또 다른 문제인데, 화성은 중력이 낮아 기화된 물이 우주공간으로 쉽게 날아가버린다고 합니다.

 화성에 물이 없으면 물탱크를 밖에서 가져와서 공급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태양계에서 물 많기로 유명한 곳이 지구하고 유로파거든요. 탐사된 자료에 따르면 유로파 위성에는 지구보다 물이 더 많을 가능성이 많다고 해요.



 아, 그럼, 유로파를 옮겨와서 화성하고 합치면 되겠네!!! 그럼, 물도 공급하고 화성 자체의 중력도 증가할테니까 1석 2조! 오~ 이런 신박한 생각을~~~~~ 그럼 어떻게 옮기지? 했는데 이미 중국 SF 영화인 "유랑지구"에서 지표에 설치된 엔진을 가동해서 행성을 옮기는 아이디어를 제시했잖아요~ 그 개념을 좀 빌려 쓰면 딱 좋겠다~ 싶었어요.


영화 "유랑지구" 중 한 장면


2. 소설의 방향성

 원래 처음에는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를 어떻게 화성까지 옮겨서 위성과 행성을 융합할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세밀하게 묘사해보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몇 줄 쓰다 보니 이건 그냥 연구논문이 되어가는 거예요... 연구논문도 뭐 나쁘진 않지만 제가 우주역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학술적인 가치는 하나도 없고 지겨운 엉터리 가설만 만들게 될 게 뻔해서 소설답게 스토리를 부여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소설의 핵심 이야기인 "화성과 유로파의 융합론"만 주목을 받으면 되잖아요. 이걸 실제로 어떻게 할지는 해당분야의 지식이 해박한 전문가들이 고민할 문제이지 제가 할 일이 아니죠. 그렇게 "화성과 유로파의 융합론"을 가볍게 톡 던지고, 이게 왜 국제사회에서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되었는지 배경을 좀 만들었죠. 과격한 행동이론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만 어필될 테니까. 이렇게 황당한 이론이 실행에 옮겨지려면 그럴싸한 배경이 필수. 그래서 멸망 직전까지 갔다 겨우 살아난 인류가 제2의 지구를 절실히 소망하는 배경을 깔고 실행력을 배가할 수 있는 정치적 장치를 만들었죠. 공과대학을 졸업한 저는, 기술과 과학을 좀 더 잘 이해하고 부강한 과학기술강국으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이 국가 지도자층에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3. 제목은 뭘로 짓지?

 원래 이 소설의 제목은 "담대한 구상"으로 한동안 작가 서랍에 박혀 있었어요. 아, 그런데 볼 때마다 정치권이 자꾸 생각이 나잖아요. 그렇다고 "화성과 유로파의 융합론"을 바로 박자니 너무 간지가 안 나고 논문 같고... 고민 고민하다가 제2의 지구가 미래 인류들에게 약속의 땅이 될 테니, 성서 이야기를 차용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렇게 약속의 땅 제2 지구로 이끄는 소설, "가나안 프로젝트"가 탄생했어요.


4. 어떻게 마무리한담-

 조금 억지를 부리긴 했지만 그래도 시작은 잘 된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대담한 담론이 국제사회 주목을 받았고, 첫 삽까지 잘 떴어요.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됩니다. 사실 작가(=저요)가 말하려고 하는 건 매끈하고 흥미로운 소설 스토리 그 자체가 아니고 "화성과 유로파의 융합론"을 세상에 꺼내놓으려는 게 다였거든요. 그래서 서두를 그럴싸하게 던지고 나니 동력이 팍 떨어지는 거예요.... 이제 할 말 다해버렸는데. ㅠㅠ 스페이스 오페라 대서사시로 끌고 나가자니 아무 준비가 안 되어있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배경이 너무 장대합니다. 이걸 어째. 어찌 덮어? 원래 구상은 위성이송엔진을 다 제작해서 유로파에 설치까지 하고 이걸 운영하면서 이런저런 사고가 나고 그걸 또 수습하는 식으로 해보려고도 했는데 "아... 이래선 끝나지가 않겠다....." 싶어 유로파에 처음부터 보내지 않는 걸로 급선회했습니다. 유로파는 이미 갔다 왔거든요, 소설 "문어"에서요.


https://brunch.co.kr/@ragony/144


 이왕 종교적 색채를 조금 입혔으니, "바벨탑 이야기"를 조금 빌려왔습니다. 신에 도전하는 첨탑을 세우려다 신의 노여움을 사서 인류가 뿔뿔이 흩어지는 게 기본 서사잖아요. 우주의 질서를 깨는 일은 신에 대한 도전이니 모처럼 전 인류가 힘을 합치는 것처럼 보이다 분열돼서 싸우다 끝내는 걸로. 신의 노여움 얘기를 섞으려다 보니 종교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전쟁의 불씨는 제가 살고 있는 파키스탄 이야길 살짝 섞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북서부에 살고 있는 파슈툰족은 원래 한민족인데 아프가니스탄 하고 파키스탄으로 국경이 나뉘어버렸어요. 심지어 파슈툰족의 인구가 아프가니스탄보다 파키스탄 쪽이 더 많은데, 파키스탄 총인구가 워낙에 많다 보니 파슈툰족은 소수민족 취급을 당하죠. 그래서 국경지대 파키스탄 쪽 파슈툰족은 아프가니스탄 편을 들 수밖에 없는 민족적 배경이 있어요. 역시 중국의 확장정책과 서아시아 민족분쟁 얘기를 살짝 섞으니 현실감이 조금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 작가는 끝없이 공부해야 하나 봅니다.


5. 창작의 고통이란

 1편에서 3편까지는 비교적 수월하게 써 내려갔는데 급하게 마무리한 4편은 나름 창작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특히 달 기지 공장이 폭파된 후 가나안 종교대전이 발발하기까지의 압축적 서사는 달랑 2 단락밖에 안 되지만 두 시간이 넘게 끙끙대고 있었습니다.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그 왜, 소설가들이 원고지에 글을 욱여넣다가 구겨서 던져버리고 또 쓰고 하는 장면 있잖아요, 그랬대니깐요. 써놓고 읽어보고 '아 이건 아니야 아니야' 하면서 지우고 또 쓰고 또 지우고 또 쓰고 역시 창작에는 고통이 따르는구나 중얼중얼 그랬다고 합니다. 종교계와 과학계가 전쟁을 벌일 만큼의 도화선이 있어야 되는데 그거 불 붙이는 구실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6. 열린 이야기판

 3편까지 전개하며 앞으로의 이야기는 독자님들의 반응을 보며 인터랙티브 하게 전개해볼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다지 팔리지 않는 망한 소설이라 계획을 접었습니다.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4편 마무리 방향에 대한 미공개 플롯을 몇 개 펼쳐볼까 해요.


가. 페이크 과학 다큐멘터리 보고서 버전

 사실 최초에 구상한 버전입니다. 무미건조 공대생답게 논문도 몇 편 써 본 적이 있고, 회사 고인물 중간 간부답게 기획서도 많이 써봐서, 주요 마일스톤 별 시기에 따른 [배경/목적/현황/개선방안/향후계획] 순으로 전개되는 구성이 저한테 제일 익숙하긴 하죠. 그런데, 저렇게 쓰면 누가 읽냐고요... 쓰는 저도 재미가 없고.......


나. 원탑 히어로 버전

 마블 히어로처럼 초능력자는 아니지만, 능력있는 프로젝트 책임자를 중앙에 부각시키고 게임처럼 잘게 쪼개 퀘스트를 생성한 다음 액션 어드벤처 형식으로 끌고 나가도 되겠다는 구상을 잠깐 해봤습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수석 엔지니어 한석필은 유로파에 설치될 엔진 설치시공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과학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조기 졸업하고 26세에 최연소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항우연에서 가장 젊은 수석 엔지니어였고 다방면에 지식이 깊어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소리를 듣는 인물이었다. ~~~~"


다. 다중인물 개떼버전

 전쟁소설 "데프콘"에서 각 전투현장마다 매우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와서 다 기억하기 힘들 정도였던 게 살짝 기억이 나요. 전 지구적 아니, 우주적 프로젝트이니 매우 다양한 사람이 등장할 테고 단위 에피소드마다 단위 등장인물을 구상해서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하는 거죠. 옴니버스는 물론 큰 서사를 따르며 나중 결말에서 만나고요. 그래서 세부적으로 어떻게? 몰라몰라 그까진 생각 안 해봤어요.


라. 유로파 분실 버전

 위성이송엔진을 잘 설치한 후 목성 중력권을 벗어나서 화성으로 옮기려는 찰나, 엔진이 고장이 나서 궤도를 이탈해버립니다. 어떻게 잘 대응해서 유로파를 찾아오는 스토리를 엮어도 재밌겠다고는 생각했는데, 어떻게??? 일단 머리 아파서 포기.


마. 갑툭튀 외계인 버전

 유로파에 엔진을 설치해서 가동하려는 찰나, 갑자기 외계인이 공격해옵니다..... 으음. 이건 좀 너무 진부한 것 같아서 일찌감치 포기했어요. 사실, 유로파에는 문어가 살고 있잖아요....


바. 독자 참여 버전

 독자님들이 이야기 작가라면 이번 얘기를 어떻게 전개하고 싶으신가요? 댓글로 의견을 받아 가장 공감가는걸로 전개해볼까 했는데 용기가 없어 시작을 못했습니다.




 엉성한 초보작가지만, 소설 쓰기는 재밌습니다.


 소설로 먹고 살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 팔리지 않아도(읽히지 않아도) 괜찮아요. 일단 저만 재밌으면 만족합니다. ^_^ 머릿속의 막연한 공상이 활자로서 생명력을 얻고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면 그 자체로 짜릿하며, 한 편을 또 탈고하면 어째 살짝 뿌듯한 감정을 느끼거든요. 제 기준에선 엉성한 소설이라도 소설 쓰는 게 수필 쓰는 거보다 시간도 훨씬 많이 걸리고 열 배는 더 어려워요. 그렇지만 어려운 만큼 성취감도 크답니다. 다만, 정교한 설계와 전개가 필요한 장편소설은 아직 능력 밖이라 단편 중편 습작을 충분히 거치고 준비가 되면 도전해 볼 생각이에요.


 항상 응원해주시는 이웃작가님들과 변변찮은 글도 구독해주시는 독자님들께 오늘도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며 물러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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