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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May 24. 2022

"찰나의 느낌" 창작 후기(1~5편)

과정도 재밌어요

 사진을 살짝 비틀고 리터칭해서 느낌을 극대화하는 매거진을 신설했습니다.


 사람은 보고싶은 것만 보는 동물이라, 똑같은 사진을 놓고도 서로 보는것과 느끼는 것이 다르지요. 저는 제가 느끼고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더욱 강조하고 그 찰나의 이미지를 극대화해서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좋은 세상이라 특별한 기교 없이도 스마트폰 어플만 있으면 그럴싸 한 효과를 낼 수 있더군요.


 작품은 짧고 단순하지만, 창작까지의 고뇌의 과정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본 작품에 그걸 다 욱여넣으면 작품을 감상하는 포인트가 없어지니까 최대한 간결하게 느낌만 전달하고, 대신 영화의 메이킹 필름처럼 창작 후기를 남겨서 작품의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꾸준히 잘 될지 저도 아직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스스로 재미있어요. 저한테도 처음 해보는 새로운 시도라서. 부끄럽지만 응원 부탁드립니다. ^_^



1. 시간의 흔적

 주말에 몰아서 한 번에 손톱을 깎는데,


 "언제 또 이만큼 자랐지? 손톱에 시간이 쌓였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대충 0.2mm, 1주일이면 거의 1mm. 그 1밀리미터가 키보드칠 때 성가시다. 손톱만 봐도 흘러가는 시간을 알 수가 있구나. 그런데 내 머릿속에 떠오른 "손톱에 시간이 쌓인다는 표현" 자체가 왠지 멋있게 느껴졌다. 자뻑 타임. 그런 날도 있어야지. 스스로 하는 칭찬도 때론 자존감 회복에 무척 도움이 된다.


 브런치 작가들은 생활 속에서 늘 글 쓸 소재 발굴 궁리만 한다는데, 나는 아직 손톱 깎는 주재로 긴 글을 써낼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그냥 흘려보내긴 너무 아까운 발상인데? 그럼 나도 이미지 작가 도전? 그래. 그러면 되겠다. 일단 해보자.




 처음에는 손톱 깎는 그림을 직접 그려볼 참이었다. 하아. 그런데 그게 되나. 그림 한 번 안 그려본 사람이. 몇 번 선을 그어보다 빠른 포기. 안 되겠다. 사진을 찍고 레이어를 깐 다음 베껴서 그려야지. 문제는 누가 사진을 찍어주나? 손톱은 두 손으로 깎는데. 삼각대도 없고, 스마트폰 홀더도 없고.

 궁하면 통하리니. 책상 끝에 스마트폰을 대롱대롱 걸쳐놓고, 사진은 타이머 10초로 설정해놓고 셔터를 누른 다음 연출 포즈를 취한다. 찰~칵. 뭐, 그런대로 이미지를 건졌다.

 자. 이제 사진을 깔고 그림을 그리자.

혼자서 기획 촬영. 사실 깎을 손톱이 없다. 이미 다 깎아버려서.

 ㅡ_ㅡ;


 역시 안 된다. 소묘도 선 굵기와 힘 조절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거 대놓고 베껴도 너무 어렵다. 다시 포기.

 음... 어쩐다. 사진 자체를 소묘로 바꾸면 안 될래나? 되겠지. 요즘 어떤 시댄데.

 스마트폰 어플 검색을 해본다. 역시 비슷한 앱들이 많다. 몇 개 앱을 테스트해보고 그중 그럴싸한 이미지를 건졌다. 음. 이 정도면 소묘 느낌이 좀 나긴 나네? 그런데 너무 잘 그린 것 같아서 현실감이 없어.

 그린 것처럼 눈속임하려고 이제 손만 남기고 배경을 살살 지운다. 몇 분 동안 그러고 있다가 "하, 내가 왜 이러지. 이거 누가 본다고." 금방 목적과 흥미를 잃고 중단. 결국 내 만족이고 취미일 뿐인데 "대충 하자"가 발동된다. 대충 인생, 작가 한다고 안 바뀐다.

배경을 반쯤 지우다가 지겨운 생각이 들어서 포기. 마저 더 지울 걸 그랬나?

 후다닥 매거진 제목을 정하고, 첫 작품을 작가의 서랍에 올려본다.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작품이니, 구구절절 말이 많으면 안 되겠다. 산문인 듯 시인 듯 편집도 가운데 정렬로 바꿨다. 음... 그럴싸한가? 그럴싸하다. 그치만 아직 너무 허접해 보이니 발행은 미뤄야지. 자신감이 붙으면 올리자. 일단 저장 후 키핑.


 한 작품 뚝딱 완성.

https://brunch.co.kr/@ragony/55



2. 이상한 나라의 과일가게

 운전기사님이자 보디가드 격인 조니가 다음 주 현장 사택에서 먹을 1주일치 장 보러 간다고 한다. 현지 가게가 궁금하기도 하고, 주말 별 약속도 없이 집에만 있기도 무료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자두도 사고, 수박도 사고, 망고도 사고 잔뜩 샀다.


 조니가 물건을 다 챙기고 계산하고 있을 때 잠시 가게 사진을 찍어뒀다.


생생한 색감이 오늘의 포토제닉!!!

 집에 와서 사진을 휙휙 넘기고 있는데, 과일가게에서 찍은 사진의 색감이 엄청 마음에 든다. 말 그대로 오색찬란하다. 아, 이거 의도한 건 아닌데 작품이네. 의미를 어떻게 부여한다?


 스토리는 다 있다. 이곳은 파키스탄. 똥만 싸도 콘텐츠가 되는 곳. 이곳 수박 가격은 놀랍다. 한국처럼 줄무늬 수박은 아닌데, 맛도 식감도 거의 같은 여기 수박은 무척 싸다. 10kg짜리 큰 통이 350루피. 한화 2,500원도 안 한다. 비싼 과일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한국 대비 월등히 저렴하다.(그나마 이것도 여기가 도시라서 비싼 거라고 했다.) 그런데, 공산품, 생필품은 한국보다 더 비싸다. 자국산 제품은 제조기술이 아직 성장하지 못해서인지 아무래도 질이 좀 떨어지며, 마트의 진열 물건 태반이 수입산인데, 수입관세는 또 비싸서 "엥? 이렇게 비싸?" 하게 되는 경우가 무척 잦다.


* 오늘의 글과 전혀 상관없는 중간 광고 : 왜 파키스탄에서는 똥 싸는 것도 콘텐츠인가.

https://brunch.co.kr/@ragony/36


 참 이상한 나라네. 그래. 제목은 정했다. 이상한 나라의 과일가게.

 매거진 성격은 일관적이어야 하니까, 사진을 조금 리터칭 해본다. 오색찬란하니까 오늘 사진은 원색 중심의 마블코믹스 북처럼 보이면 재밌겠다. 역시 스마트폰의 만화 앱을 이용해서 사진을 바꿨다.


 "음. 그럴싸한데? 직접 그렸다고 빡빡 우기면 믿겠는데?"


 만화적 감성을 넣으려니 말풍선이 있으면 더 좋겠다. 물건 사는 모습이니 서로서로 땡큐지 뭐. 살짝 "Thanks" 말풍선 추가. 우와. 멋있다. 만화적 감성 충만. ^_^


 두 번째 작품 완성.

 이제 일관성도 보이고, 자신감도 생겼다. 세상에 공개해야지. 1,2편 모두 동시 발행.

 아. 망했다. 더 많이 구상하고 더 심혈을 기울였던 첫 작품이 2편에 묻혔다. 브런치 나우에 제목도 안 보인다. 내가 앞으로 다시는 동시발행 하나봐라.


https://brunch.co.kr/@ragony/56



3. 한국이 그리울 땐

 혼자 사니까 밥하기가 귀찮다. 주중에는 회사 소속 요리사가 현지 숙소에서 직원들에게 밥을 해 주지만, 주말 이슬라마바드에 나와 있으면 알아서 해 먹거나 사 먹어야 한다. 사 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집돌이는 나가기도 귀찮고 현지식이 그다지 땡기지도 않는다. 식성은 가리는 게 없지만 늘 한국 음식이 그립긴 하다. 여기서도 한식처럼 먹기는 하지만, 요리 재료도 소스도 조금씩 달라서 100% 한식 맛은 안 난다.


 저녁은 뭘 먹지? 그래, 오늘 저녁은 한국에서 가져온 짜왕이야. 땡길 때 해 먹자. 일단 멜랑꼴리 한 감성이니, 해 먹는 것도 기록으로 남겨놓자. 물을 끓이고, 라면을 찢고 보글보글 끓이는 과정을 찰칵 남겨놓는다.

 그대로 짜왕 완성. 완두콩이 생두처럼 살아서 올려져 있다. 프레이크도 풍성하고 아주 한국적 비주얼이다. 식기 전에 퍼지기 전에 찍어놓자. 신기하게도 음식도 맛있을 때 찍어야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다. 찰칵.


 이제 혼자 사는 기레기(기러기 오타가 아닙니다. 의미가 있음. ㅠㅠ)가 한국이 그리울 때 짜장라면 끓여먹는 걸 감성을 담아서 간단한 만화로 만들어보자.

 짜장면은 새까맣니까, 흑백이면 충분하겠다. 컬러면 시선이 분산돼서 느낌이 반감될 터.

 만화어플, 스케치 어플 다 돌려가면서 어떤 효과가 가장 극적인지 하나하나 살펴본다. 외곽선의 느낌은 살리면서 세부적인 선은 지우는 느낌의 효과가 가장 그럴싸하다. 만화처럼 말풍선도 달아준다.


 순서대로 배치하니 꽤나 그럴싸하다. 미리 예상하고 의도한 바가 아니지만, "베르세르크" 작화 같은 극사실주의 장인 느낌이 난다.  짜장면에 흐르는 윤기 자체가 세심한 펜 터치로 매우 잘 살아있다. 꼬불꼬불 이어지는 면의 느낌 역시 굵은 선으로 잘 표현되었다. 이번 작품 역시 한 달 내내 직접 그린 거라고 빡빡 우겨도 믿겠다. 재능이 뭐 대순가. 기획하고 그걸 표현물로 어떻게든 만드는 게 재능이지. 오늘도 자화자찬 자뻑이다.


 세 번째 작품 완성.

https://brunch.co.kr/@ragony/57



4. 무단침입자의 최후

 바퀴벌레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해서 현지 약국에서 바퀴약을 사다 놓았는데, 이거 뭔, 애들 간식 챙겨주는 건지 잘만 씩씩하게 돌아다닌다. 니들 두고 보자.


 중간 귀국 휴가 때 약국에서 한국 바퀴약을 사서 왔다. 포장을 뜯으니 달콤한 과일향이 느껴진다. 현지 바퀴약은 냄새 자체가 안 나던데 역시 한국산. 엄지 척. 한 주 전에 요소요소에 몇 개씩 바퀴약을 놓고 갔었는데 확실히 이번 주말에는 한 마리의 바퀴도 안 보인다. 대신 바퀴약 주변에 배를 뒤집고 죽어있는 바퀴가 여러 마리 보인다. 그래. 이 나라는 모든 게 컨텐츠지. 바퀴벌레와의 전투도 기록으로 남기자.

 바퀴약과 죽은 바퀴를 모아서 한 장의 앵글에 담는다. 손 그림자가 자꾸 앵글에 잡히네. 2배 줌으로 당겨서 찍으니 그림자 문제는 해결된다. 오늘의 작품은 오래된 만평처럼 꾸며보자. 오늘도 앱으로 여러 가지 효과를 적용하면서 이것저것 느낌을 본다. 빛바랜 갱지에 검정 단색 화풍이 좋겠다. 징그러운 바퀴를 너무 디테일하게 강조할 필요가 없지. 적절한 크기로 크롭하고, 말풍선을 찾아 배치한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실루엣만 남은 두 마리 바퀴는 한 마리가 먼저 죽고, 나머지 한 마리가 무릎 꿇고 목놓아 우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나 먼저 갈께" 작별인사하는 한 녀석과 "아아악~" 절규하는 나머지 녀석을 표현해주고, 바퀴약에는 "미안"이라 써 붙이니 긴 말 안 해도 한 장에 느낌이 담긴다.


 지저분하고 징그러운 소재인데, 기획 의도보다 더 깔끔하게 잘 나왔다.


 네 번째 작품 완성.

https://brunch.co.kr/@ragony/59



5. Prado Parade

 정부 지침에 따라 외국회사의 관리자가 교외로 이동시에는 경찰이 호위하도록 되어있다. 오늘도 출근길은 무장 경찰의 호위를 받는다. 도시와 교외를 잇는 출근길은 비포장 도로가 많은 험로이기 때문에 경찰차도 출근차도 모두 튼튼한 SUV를 쓴다. 길을 따라 한참을 가는데, 운전기사가 재밌는 광경이라며 백미러를 한 번 보라고 한다. 응? 저게 뭐야? 내 차를 포함해서 도요타 프라도 SUV 다섯 대가 졸졸이 호위차를 따르고 있다. 프라도는 매우 드문 차는 아니지만, 일반 서민이 사기에는 많이 비싼 차라서 흔한 차도 아닌데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 신기한 장면은 일단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 투철한 작가정신. 정신없이 꼬불꼬불 달려가는 차 안에서 뒤따르는 차량 넉 대를 한 프레임안에 잡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번의 씨름 끝에 한 프레임을 건졌다. 지나고 나서 생각이 났는데, 아예 동영상으로 찍어놓고 필요한 프레임만 건지는 게 훨씬 쉬울 뻔했다. 그땐 그 스킬이 생각이 안 났다.


뒤따르는 넉 대의 프라도를 한 앵글에 잡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실패다. 달리는 차 안에서 후미를 찍는 건 정말 어렵다.


넉 대의 차량을 한 프레임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차가 너무 작게 찍히고, 행인이 시선을 분산시킨다.
행인을 AI지우개로 지워버리고, 필요한 부분만 크롭한다. 사진이 좀 흐리지만 괜찮다. 어차피 뭉갤거니까.

 그날 저녁. 이제 느낌을 표현해보자.

 딱 맞는 시상은 안 떠오른다. 무언가 좀 묵직하면서도 긴박해 보이는 그런 느낌을 잡고 싶은데 영 느낌이 안 난다. 뭐가 문제지? 프레임 안에 같이 찍힌 길가는 행인이 자꾸 몰입을 방해한다. 오늘 주제는 "떼빙"인데. 엑스트라가 문제구나. 새로 찍을 수도 없고, 다른 사진은 느낌이 안 살고 어쩐다? 그냥 지우자. 행인만 지우면 되지. 스마트폰이 기본으로 제공하는 AI지우개를 처음 써본다. 대충 지울 대상을 선택하고 "삭제" 누르니, 100% 깔끔하게는 안 되어도 대충 지워진다. "떼빙" 차량 강조를 위해 불필요한 부분은 자르고 좀 더 차량 쪽에 집중을 해 본다. 몰입의 느낌은 도트 4원색 포스트 느낌으로 정했다. 떼빙 차량을 더 강조하는 아웃라인을 넣고 싶었는데 이제부터는 디테일한 손의 기술이 필요해서 이쯤해서 절충하고 마무리. 약간의 만화적 느낌을 위해 말풍선도 추가해본다.


 하아. 이번 작품은 뭔가 조금 부족하다. 원래 전달하려고 했던 묵직함이 좀 없다.

전달하려는 이미지는 딱 이런 포스인데.


 묵직한 사진을 인트로에 깔아야겠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대통령 호위차량 사진을 가져오고, 비슷한 톤으로 바꿨다. 음. 이제 조금 그럴싸하네.


 프라도 퍼레이드는 이쯤에서 마무리.

https://brunch.co.kr/@ragony/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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