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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May 30. 2023

결국 3억을 잃은, 투자의 역사

  나는 스스로를 부동산과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집을 산 2008년부터 15년 동안 부동산을 매매해서 손해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 내 이름으로 된 집을 가진 것은 2008년이었다. 그 해 경제는 냉골이었다. 세계적 금융위기가 국내 경제에도 직격탄을 날린 시기였다. 그때 나는 외국계 증권회사에 다녔는데, 아침에 출근을 하며 듀얼 모니터 너머로 파랗게 질린 동료의 얼굴을 매일 보았다. 주식 시장뿐만 아니라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급매물이 쏟아졌지만 거래량은 ‘0’에 가까운, 생명을 잃은 때였다. 그 시기에 나는 과감하게 첫 집을 샀다. 모두 다 미친 짓이라고 말렸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대구 교육의 중심지였고, 탄탄한 지역 은행의 본점이 있는 곳이었다. 도보 5분 거리에 지하철역과 백화점에서 운영하는 마트도 있었다. 대구 지도로 보면 중앙에 속하는 곳이라 운전을 해서 어디든 가기에도 참 편리한 곳이었다. 소위 말하는 입지가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시기가 그랬다. 모두 다 말렸지만 엄마의 의견을 달랐다.

  “아이 키우기 좋은 곳이면 결국 오른다."

  결국 2008년 12월, 9월부터 눈여겨봤던 집의 호가가 더 내려간 것을 보고 계약을 했다. 실제로 살아보니 더 장점이 많은 동네였다. 방 한 칸이 더 있는 집으로 옮기기 위해 5년을 살고 매입한 가격의 2배의 금액을 받고 집을 팔았다.      


  두 번째 집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새로 짓는 아파트들은 대부분 주차장에서 바로 엘리베이터가 연결되는 직주 문화를 갖췄는데, 사실 나도 그게 참 부러웠다. 그래도 정든 이곳을 떠나는 것은 더 아쉬웠다. 결국 같은 단지에 있는 넓은 평수로 집을 알아보았고, 마음에 드는 1층 집을 찾았다. 이번에도 모두 반대했다. 늘 지지해 주던 엄마도 이번에는 걱정 섞인 한마디를 하셨다.

  “1층 아파트를 사면 나중에 제값을 받기나 할까?”

  “그럼 오래 살면 되지 뭐.”

  오래 살 생각으로 삼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 대대적인 리모델링도 했다. 그 당시 물가는 “집 고치는데 삼 천만 원씩이나 쓴다고?”였다. 아무튼 두 번째 집은 모두가 기피하는 1층이었고 오래 살 요량으로 뼈대만 남기고 싹 뜯어고쳤다. 개인 정원이 딸린 1층이라 아침마다 정원에서 모닝커피를 마실 상상을 하며 데크도 깔고,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정원수도 심었다. 그리고 밤에는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매물과 가격 추이, 부동산 뉴스를 보며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민을 날려 줄 기적이 일어났다.


  층간소음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공동주택 층간 소음의 범위와 기준이 마련되면서 아파트 1층이 가지는 메리트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 달에 걸린 리모델링을 하는 동안 아파트 가격도 급등하기 시작하며 공사에 든 비용만큼 올랐다.     

  ‘두 배가 되면 팔아야지’라고 계획했던 두 번째 집은 1년이 조금 넘자 목표했던 매매가격에 왔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목표를 달성한 것이었다. 게다가 지역 내 가장 핫한 학군이자 다음 이사 갈 곳으로 점쳐둔 동네의 새 아파트 청약에도 당첨이 되었다. 약 1년 만에 핫한 지역의 아파트가 두 채나 생겼다.

  ‘역시 부동산!’

  부동산 재테크에서는 내가 들어가는 타이밍이 늘 최적기였고, 욕심내지 않아도 두둑한 수익을 안겨 주었다. 30대 초반에 얻은 영화로운 월계관은 지인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은 당연했지만 나 자신에게는 독이 되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해서 얻은 정보 대신 근거 없는 감에 의존한 그다음의 결정은 결국 3억이라는 돈을 연기처럼 사라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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