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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ul 12. 2023

아침을 차렸는데 밥솥이 비었다

아들의 생일날

  우리 집 사춘기, 춘기의 생일입니다. 한여름에 낳아 고생을 좀 했지요. 오늘도 아침부터 30도가 넘는 더위에 가스 불 앞에서 정성스럽게 미역국을 끓이느라 고생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매번 제가 끓인 미역국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미역국으로 생각해 줍니다. 그 말을 전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귀엽고 마음이 고마워서 더워도 미역국을 자주 끓입니다. 오늘은 더 정성을 담아야 합니다.

  

  미역국을 끓이는데 비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우 국거리를 잔뜩 넣는 것이지요.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고기부터 볶으며 익힙니다. 바닥이 타지 않게 잘 저어가면서 말이죠. 그 사이에 자른 미역을 물에 불립니다. 주의할 점은 꼭 자른 미역을 사세요. 저는 가끔 장바구니를 풀면 자른 다시마가 나오기도 합니다. 고기가 갈색으로 익으면 불린 미역을 건져 같이 볶습니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면서 달달 볶아줍니다. 가스불에 얼굴이 달아오를 때쯤 국간장을 두 스푼 넣어 간을 했습니다. 그리고 물을 더 부어 끓입니다. 이제 팔팔 끓으면 불을 끄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들깨 가루를 넣어야 되는데, 들깨 가루가 없습니다! 이런, 7시가 되면 들깨 가루부터 사러 가야겠습니다. 지금은 6시 50분이니 10분만 쉬고요.


  춘기는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미역국을 '미국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입술을 '우' 모양으로 쭉 내밀고 '미국국'이라고 말하던 3살 춘기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꼬마였습니다. 지금은 발 사이즈와 키는 물론이고 힘도 저를 넘어섰지만 여전히 애교가 많은 아이입니다.

  "엄마, 사랑해."

  "응."

  "내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는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어서 그래. 나한테도 사랑한다고 해줘."

  요즘은 이렇게 친절하게, 감정을 나누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몇 번을 가르쳤는데도 안 될 때는 가끔 이런 협박도 합니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툭툭 거려볼까?"

   

  7시가 되었습니다. 장바구니를 챙겨 마트로 걸어갔지요. 들깨 가루를 하나 들었는데 옆에 있는 멥쌀가루도 필요해 보입니다. 조만간 또 떡을 찔 계획을 세우며 이것도 담았습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끓이던 미역국을 마저 끓여야겠습니다.

  다시 가스불을 올리고 방금 사 온 들깨가루를 한 스푼, 두 스푼, 세 스푼, 네 스푼 아주 듬뿍 넣었습니다. 한번 더 보글보글 끓으면 이제 불을 끄고 아침 식사 상을 차릴 계획입니다. 냉장고 속 밑반찬도 하나씩 꺼내 접시에 담습니다. 그 사이 춘기가 일어났네요. 전날 12시가 넘도록 잠을 못 이루더니 피곤해 보입니다



춘기야, 생일 축하해!



  

  미역국부터 국그릇에 담고, 밥그릇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밥통이 텅텅 비어있습니다.

  

이런, 밥이 없다.



  얼핏 '춘기 생일 아침에는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먹어야지.' 했던 생각이 스칩니다. 어제는 생각했지만 오늘은 새까맣게 잊어버린 게 바로 아침밥 짓기였네요. 시간은 7시 30분. 얼른 밥을 먹고 30분 뒤면 학교로 출발해야 합니다. 밥을 지을 시간이 없습니다. 춘기가 묻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미역국만 먹어야 해?


  춘기를 기르며 느끼는 것은 이 아이는 운이 좋은 날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미안하다. 그렇게 되었다.'라고 말을 하려던 찰나에 햇반이 보입니다. 출장이 많았던 지난달에 비상용으로 사둔 것인데 마침 딱 2개가 남아 있었습니다. 후, 햇반이 저를 살렸습니다.



  춘기는 오늘도 미역국에 엄지 척을 날려주었지요.

  "최고! 딜리셔스! 진짜 진짜 맛있어!"

  저녁에도 미역국을 먹고 싶다는 춘기를 보니 고맙고 뿌듯합니다. 이 맛에 미역국을 끓입니다. 저 대신 흰쌀밥을 지어준 CJ와도 고마운 마음을 나눕니다. 진짜 큰일 날 뻔 한 생일날 아침입니다.  




  춘기야,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네가 태어나서 엄마는 참 기쁘단다.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널려있단다. 혹시 어려운 일이나 오늘처럼 당황스러운 일을 만나더라도 그것은 해결하면 되는 문제이지, 포기하라는 전조는 아니란다. 네 삶과 시간이 결국 방법을 찾아낼 거야.

  그러니 매 순간, 스스로를 믿으렴. 자신감을 가지고 잘 살고 있는 스스로를 응원하렴.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202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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