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기울고 새가 울었다 회색이 짙어 멀리까지 갔다 너무 멀어서 밤이었다 어느 날은 나방이 가득한 숲에서 허기가 내 몸을 열었다 딱딱한 빵을 씹고 생수를 마셨다 빵을 씹으면 나방이 파닥거렸다 시큼한 맛이 목구멍을 자꾸 찔렀다 오르막길에서 멈췄을 때 두 번의 겨울이 지났다 그 사이 눈꽃이 피고 새가 녹았다 하루가 기울면 새는 멀리 갔다 멀리 가서 돌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나방을 씹으면서 우표를 붙였다 혓바닥에 끈적끈적한 울음이 가득했다 멀리 갔던 새가 나를 비집고 들어왔다 멀리 갔던 새는 방향이 분명해서 오히려 밤이었다 하루가 기울고 당신이 울었다
시집 <내가 먼저 빙하가 되겠습니다>, 문학수첩, 2020. 수록
[以後, 시작노트] 새가 운다. 울면서 땅을 떠나지 못한다. 떠나지 못하므로 나는 새가 된다. 나는 운다. 울면서 당신이 갔던 길들을 다시 걷는다. 해무가 짙어 나는 회색의 무덤에 갇힌다. 그것은 밤이다. 나방이 가득한 숲에서 내 몸을 열어버린 허기다. 빵과 생수를 먹는다. 빵을 씹으면 나방의 물렁물렁한 고립이 씹힌다. 혀에 고이는 자줏빛 해무. 봄에 떠났고 여름에 묻혔다. 나는 지금 겨울이다. 눈꽃이 피었지만 눈을 뭉쳐 조각한 새는 이미 녹았다. 새가 운다. 땅에 깊이 박혀버린 발톱이, 옛날의 내 눈에도 패여 있다. 멀리 가서 돌아오지 않아야 했다. 너무 멀어서 그 누구도 찾을 수 없도록. 나방을 씹을 때마다 혀에 끈적끈적한 울음이 고였다. 나는 운다. 울면서 새를 비집고 들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