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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Mar 14. 2020

관계의 온도

남들보다 조금 미지근한 온도를 가진 사람

하이메 아욘 전시회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무료 티켓은 이번 달 중순까지 동반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마침 이달에 보기로 한 K와 약속을 잡아 오늘 만났다. 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친구에게 걱정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우울해했던 터라 이번만큼은 기운차게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전시회 내용이 생각보다 짧아 시간이 남았다. 우리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가게를 구경하기도 하고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리가 아파올 때쯤 K는 자기가 아는 카페에 들리자고 제안했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카페는 협소하지만 3층으로 되어 있어 자리가 넉넉했다. 우리는 커피를 주문하고 2층에 자리를 잡아 깊은 얘기를 나눴다.

인간관계에 관해서는 K만큼 조언을 잘해주는 친구가 없다. 판단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생각을 강요하기보다는 자기 생각에는 이럴 수 있다고 말해주곤 해서 마음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최근에 읽었던 책에 대해 한참 얘기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읽는 내내 내 얘기 같다며 공감이 갔던 구절을 읊어주었다.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친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관계의 온도에 관한 얘기를 해줬다. 금붕어는 사람이 만질 때 화상을 입는다고 한다. 사람에게는 적당한 체온이 금붕어에는 뜨거운 온도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과의 관계는 서로 다른 온도를 가진다고 했다. 누군가는 미지근한 온도를 좋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뜨거운 온도를 좋아할 수 있다. 그렇기에 K는 과도하게 관여하고 살갑게 구는 사람보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지내는 사람을 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꼭 적극적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아도 된다며 나는 너 같은 친구가 편하다고 말하는 K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남들처럼 맞장구를 치거나 농담을 주고받는데 서툴었기에 이런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우울해했었다. 그래선지 억지로 자기를 변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친구의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 단지 나는 남들보다 조금 미지근한 온도를 가질 뿐이었다. 그런 나를 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가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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