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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Mar 18. 2020

단호하게 대하지 못했던 하루

"안 돼요" 라고 딱 잘라 말했어야 했다

2019년 11월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고객이 신경질을 내는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화가 났다. 어르신들을 상대하는 업무다 보니 신청서를 작성할 때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다. 한분 한분 봐드리는 게 맞으나 네가 쓰라고 종이를 툭 던지는 고객이나 빨리 안 도와주고 뭐하냐며 성질을 내는 고객을 만나면 힘이 쭉 빠진다.

기운이 빠졌다 못해 화가 났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사람은 계속 들어오고 설명하는 중간에 다른 사람이 봐달라고 끼어드는 정신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동시에 요청할 때는 한 사람만 봐주기 어렵기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고 다른 분도 함께 보는 경우가 많다. 그 와중에 누군가 등을 콕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 뒤를 돌아보니 접수번호를 받는 줄에 서 있던 사람이 이쪽으로 와보라고 손짓했다.

그는 휠체어에 탄 어르신 도우미로 왔는데 줄을 기다리면서 신청서에 빠진 게 없는지 봐달라고 했다. 신청서에는 빈칸이 많았고 뒤에 기다리는 고객도 많은 상황이라 여기서 말고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리시라 말씀드렸다. 왜 여기서 안되냐고 물어 이유를 설명하려는데 방금 전에 도와드렸던 노인분이 찾아와 내가 먼저 했는데 안 오고 뭐하냐고 화를 내셨다.

나는 곧 간다고 말씀드리고 도우미분께 먼저 오신 분이라 도와드려야 한다고 저쪽 테이블에 있는 직원분께 물어보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도우미는 '아까 줄 서서 기다렸는데 테이블로 가라 하셨잖아요.'라고 말하면서 '저기 직원한테 가도 안 봐준다고요!'라고 열을 내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서 노인분은 내 팔을 꽉 움켜쥐고 나부터 봐줘야지 하며 끌고 갔다.

팔이 아플 정도로 잡아당기는 무례한 태도에 나는 화가 났다. '난 모르니까 네가 써봐'하며 종이를 툭 던지는 걸 보며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나는 종이만 쳐다보며 묵묵히 빈칸을 채워나갔다. 노인은 다됐는지 다시 봐달라고 했지만 한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다됐으니 접수표 뽑으시라고 하고 돌려보냈다.

책임질 수 없는 말 때문에 괜히 도우미에게 피해를 준 게 아닌가 자책했다. 차라리 기다리라고 하지 말고 다른 직원을 불렀으면 해결됐지 않을까 하며 그때 행동을 곱씹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식당에 가려고 하는데 봐달라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내 테이블에는 맡을만한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근처 직원에게 자리를 비우려는데 대체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직원은 없어도 상관없다며 얼른 다녀오라고 말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심각하게 고민했던 나와 달리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듯 말하는 직원의 말에 당황했다. 처음엔 얘기를 제대로 안 들어준다는 생각에 섭섭했다. 하지만 점심을 먹으며 혼자 곰곰이 그 말을 떠올리니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고객은 나를 직원 중 하나로 생각하지 특정한 누구로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아니더라도 결국 다른 직원을 찾아 도움을 받을 것이었다.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부담감에 벗어나자 그제야 묵묵히 쌓였던 화도 씻겨 내려갔다.

직원분들이 가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단호하게 '안돼요'라고 선을 그었는데 그런 태도를 보인 이유도 이해가 됐다. 하나씩 봐드리다 보면 막무가내로 요구할 수 있는데 사전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최선을 다하지만 선을 넘어서는 행동에는 단호하게 대하는 태도는 배워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이제 하루가 남은 시점이지만 이번 아르바이트가 아니더라도 어느 직장에 가서든 명심하며 사람을 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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