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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Apr 05. 2020

문제 해결의 두 열쇠

21일 차 자기발견

로직상에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 개발팀도 원인을 모르겠데.


팀장님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로 인해 고객들의 항의가 이어질 것 생각하니 답답함에 참을 수 없었다.


서비스운영팀에서 일한 지 3개월쯤 됐을 때 일이었다. 처음 1~2개월은 업무에 적응하느라, 서비스 구조와 기능을 익히느라 정신이 없어서 이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3개월부터는 CS문의 처리량도 늘고 스토어리뷰 관리도 진행하면서 이상한 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이미지가 없습니다


서비스 오류로 문의를 받아보면 '재생이 안돼요', '앱이 갑자기 꺼져요.' 등으로 간략하게만 적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증상만 얘기하면 우리 쪽에선 앱에 어떤 부분이 이상이 있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다. 고객에게 일일이 정보를 받으면 누락되거나 정확하지 않는 일이 많아 문제가 생겼을 때 화면을 캡처해서 첨부해달라고 요청한다.


문제를 알아챈 것은 평소와 다름없이 '캡처화면을 첨부해주세요'라고 답변한 뒤 몇 분 뒤에 재문의가 들어왔을 때였다. '이미지 첨부합니다'라는 말이 적혀있었지만 첨부된 파일이 없었다. 넣다가 실수로 빠졌나 싶어 고객분께 '누락되었으니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 두 번째로 보낸 메일에도 이미지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일단 메일주소를 안내드리고 이쪽으로 전달해달라고 요청하고 급한 불을 껐다.


혹시나 해서 다른 문의들을 살펴봤다. 다른 문의에서도 유사한 증상이 나타났다. '왜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거지?' 나는 CS 업무에서 꽤나 치명적인 문제임에도 이 사실을 알리려 하지 않는 것이 의문이었다. 다른 문의는 어떻게 답변했는지 살펴본 결과 고객센터에서도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원인을 몰라 메일로 이미지를 달라는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내버려 두기엔 문의채널의 분산과 그에 따른 매끄럽지 못한 대응이 고객의 강경한 항의로 이어질 위험이 있었다. 나는 이미지가 첨부되지 않는 이슈를 팀장님께 말씀드리고, 해당 증상을 보인 고객정보를 취합해서 개발팀에 전달했다. 그렇게 하고 나서 그다음 날 '원인을 모르겠다'라는 말을 들은 것이었다. 그 뒤에 쏟아지는 업무량에 이 문제는 잠시 후순위로 미뤘다.



고객이 탈퇴하고 말았다


우려했던 상황이 나타났다. 고객이 '이미지를 첨부했는데 왜 자꾸 보내라고 하냐'라고 화를 내시곤 답변을 하기도 전에 탈퇴해버렸다. 힘이 빠졌다. '내가 전에 포기하지 말고 집요하게 원인을 찾으려 노력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나는 이 문제만은 꼭 스스로 원인을 찾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최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 문의를 모두 정리하고 기종, OS, 앱 버전 등 세분화해서 공통점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안드로이드'. 다른 건 모두 달랐지만 안드로이드 기종이란 것만은 예외 없이 같았다. 나는 이전처럼 취합한 결과를 넘겨주는 대신 개발팀에 찾아가 이 증상이 왜 심각한 문제인지 설명하고, 특정 OS에서만 발생하니 중점적으로 봐달라고 요청했다. 마침 개발팀도 중요한 업데이트 개발을 끝낸 참이어서 여유가 있었던 상황이라 타이밍이 좋았다. 그 날 개발팀에서 이미지가 DB에 저장되지 않는 원인을 찾았다. 몇 줄의 코드를 삽입하는 걸로 해결 가능한 이슈였다.



문제 해결의 두 가지 열쇠: 중요도 그리고 재현 가능성


이 날을 이후로 개발팀과 어떻게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개발팀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고객에게 보이는 프론트 영역이 훨씬 중요하다. 아무래도 CS에서 사용하는 Admin은 중요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Admin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이 문제가 고객에게 영향을 미치고 서비스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즉 이 문제가 계속되면 고객이 탈퇴하고 서비스의 주요 지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분명히 얘기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해야 후순위에 있던 CS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시급한 사항으로 처리된다.


그다음으로 '재현 가능성'이 소통의 열쇠고리이다. 아무리 심각한 문제라도 그 문제가 우리 쪽에서 재현되지 않으면 원인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 특정 고객에만 발생하는 문제는 폰 내 앱 간 충돌이거나 OS와 앱 간 최적화가 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앱을 잠시 끄고 키거나 앱을 지우고 다시 깔아보는 식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이도 저도 안될 때 최후의 방법으로 안내해드린다.


다만 이 증상이 3~4명 정도 특정 시간에 동시에 발생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동일한 증상을 가진 고객 중심으로 공통된 정보를 수집하고 테스트폰에서도 증상이 발견되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그 증상이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지 분석하고 그 내용을 개발팀에 전달한다. 증상이 재현되면 원인이 파악되기 때문에 수정한 버전을 빠르면 그다음 날, 늦으면 다음 업데이트에 적용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큼은 잘해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찾아내고 업데이트에 올린 건들이 꽤 있었다. 나는 개발지식이 없어도 개발팀이 요구하는 정보를 파악해 고객에게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맡은 일에 있어선 내가 책임자이고, 꼭 해결해서 고객에게 불편을 드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꽃비내린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잘해'. 팀장님도 이 부분만큼은 인정해주셨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문제를 붙잡는 인내와 상대가 필요하는 정보를 파악해 선별해서 전달할 수 있는 소통방식은 성과를 내는 나만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그때 남들처럼 무시하고 넘어갔다면 내게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 경험이 앞으로의 일에서도 묵혀있던 문제들을 헤쳐나가는 데 힘이 돼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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