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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Apr 13. 2020

오늘을 살아줘서 고마워

29일 차 자기발견

자기발견 질문은 매번 오래 고민할 정도로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오늘 질문만큼은 한 문장을 쓰기도 힘들었다. 과거는 이미 정해진 것이고, 현재는 생생하게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미래는 어떠한가? 기술도 삶의 양식도 빨라지는 사회에서 미래의 변하지 않을 내 모습은 어떻게 그려질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4일 차에 했던 자기 역사 연표를 참고해서 미래 역사 연표를 그려 보았다.



2021년~(1년 뒤)


UX 분석 기고글과 데이터 분석을 정리해 놓은 포트폴리오로 여러 회사를 지원하고, 내가 원하는 기업에 입사했다. 이제 막 1년 차라 전반적인 서비스 구조나 프로세스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일을 하면서 부족함을 느껴 업계 종사자 커뮤니티에서 케이스 스터디를 하고 있다. 여기서 나눈 인사이트를 다시 우리 회사의 서비스에 반영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기획일을 하면서 노하우나 경험담을 브런치에 올리고 있다. 브런치 구독자는 어느덧 1000명을 넘어섰다. 현실적인 내용을 담아서인지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주신다. 앞으로 연재 글을 다듬어서 기획과 관련한 책을 출판하려고 한다.



2023년~(3년 뒤)


서비스의 한 부분을 맡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신규 앱 서비스를 사용해보고 요즘 10대, 20대 사용자들이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살펴보면서 우리 서비스에 적용할 만한 기능을 제안했다. 내부에서도 좋다는 의견을 받아 리서치부터 프로토타입으로 실험과 검증을 반복하는 애자일 방식으로 진행한다. 프로젝트 일로 바쁘지만 퇴근 후에 틈틈이 UI 트렌드나 업계 뉴스를 보며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 한다.


기획자 꿈나무인 취준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시작했다. 다들 나이 때문에 늦은 건 아닌지 걱정하는 것 같다. 나는 3년이란 취준 생활 끝에 원하는 기업에 입사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멘티들의 고민을 같이 생각해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말해준다. 얼굴에 희망찬 표정이 피어오르니 뿌듯하기도 하고 책임감도 느낀다.


좋은 출판사와 협의가 잘 돼서 <기획자로 사는 법>이란 책을 출판하기로 했다. 브런치에 썼던 글들을 다시 처음부터 교정하고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아 주말에 시간 내서 글을 정리하고 있다. 3개월 뒤에 책이 서점에 나온다 하니 기대된다.

 

휴가기간을 연휴와 붙여서 일주일간 실리콘밸리에 방문하기로 했다.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의 치열한 현장을 느껴보고 싶었다. 마침 아는 분이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 네트워킹을 주최하신다니 거기서 현직자들을 만나보려 한다.



2025년~(5년 뒤)


HCI 석사학위 과정을 찾고 있다. 실무경험을 하면서 인간과 기계 간 인터랙션 쪽에 학문에 관심이 생겼다. 4학기이고 야간수업이지만 전문성을 기르기에 도움될 것 같다.


업계 커뮤니티에서 만난 분들과 앱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모두 사람 간의 연결과 개인의 성장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 든든하다.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이란 주제로 이유를 나열해보고 pain point를 찾고 있다. 꼭 커뮤니티가 아니더라도 pain killer가 될만한 사업이 많았다. 유사 서비스를 리서치하면서 차별화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있다. 드디어 내가 꿈꾸는 서비스를 만든다!



2030년~(10년 뒤)


서비스 다운로드 수가 100만을 넘어섰다. 월간 이용자 수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고 여러 기업에서 제휴를 받고 있다. 멤버분들과 상이한 끝에 우리 서비스의 철학에 공감할 수 있는 기업들과 제휴를 맺기로 했다.


우리 서비스를 이용해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찾았다는 후기글이 자발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나는 서비스를 통해 변화한 사람들의 네트워킹을 그리고 있다. 네트워킹 속에서 안심하고 자기의 꿈을 얘기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같이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앞으로 서비스가 더 더 성장해서 많은 사람들이 꿈을 찾을 수 있기를!




"3년 동안 인턴 경험은 1년밖에 안되는데 그동안 뭐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3년이란 기간이 남들에겐 크게 다가오는구나 싶었다. 대학을 나오고서도 진로를 탐색할 시간 조차 허용되지 않는 걸까. 이런 편견을 대면할 때마다 내가 꿈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질문을 받았던 그날 잠을 못 이루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주홍색 조명 빛을 받으며 책상에 앉아 있었다. 잠시 머리가 몽롱해지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강이 보이는 테라스에 와 있었다. 내가 모르는 카페 안이다. "거기 편하게 앉으시면 돼요." 낮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니 내가 서 있었다.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혔지만 그건 바로 나였다.


그는 놀란 기색 없이 나를 불러 세웠다. 내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나? 그의 양 손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이 들려져 있었다. "고민이 있어서 왔죠? 갑자기 미래로 오다니 당황스러웠을 거예요." 그는 내게 아메리카노 한 잔을 건넸다. 내가 잔을 받아 들자 그는 나를 찬찬히 응시하더나 이렇게 말했다.


"제가 꽃비내린님 나이에 미래로 건너왔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이 시점에 여기로 올 줄 알았죠. 무슨 고민이었는지 말해줄래요?"


나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했다. 그동안 조금씩 원하는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의 한 마디에 쉽게 무너질 줄 몰랐다고. 내가 너무 나약한 건 아닌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10년 뒤에는 저도 어엿한 직장을 가지고 살고 있나요?"

"꼭 직장이 있어야만 어엿한 걸까요?"


허를 찌른 느낌이었다. 나는 여전히 장애물 앞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장애물이란 바로 나에 대한 의심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가 무의미 한 건 아닐까? 이게 과연 도움이 될까", "나이 때문에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면 어떡하지?", "3년 동안의 공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을 뭐라고 설명하지?"


"다짜고짜 반문부터 하다니 제가 무례했네요. 미안해요, 저는 꽃비내린이 지금 잘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아마 지금은 제가 이렇게 말해도 믿기 어려울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래도 한 가지는 꼭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요. 지금 만나는 사람들, 받은 기회들을 놓치지 말아요. 꽃비내린이 꾸준히 브런치에 올렸던 글을 누군가 보고 기회를 줄 거거든요."


"정말 그럴까요? 저는 아직도 취업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 초조해요."

"한달자기발견에서 적었던 글 기억나요? 고민 끝에 나를 정의하는 한 단어로 '진정성'을 선택했죠. 그 단어는 아직도 저를 이끄는 소중한 단어예요. 아마 자기발견 글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몰랐거나 알아도 너무 늦게 알아챘을 거예요. 저는 꽃비내린이 그때 자기발견을 선택한 걸 고맙게 여기고 있어요."

 (...)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시울만 붉혔다. 그는 휴지 한 장을 건네며 울어도 된다고 말했다. 내가 휴지를 받아 들고 코를 풀자,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내게 말했다.


"너는 매번 미래의 내가 부끄럽지 않도록 지금의 내가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말했어. 나는 그 결심이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지켜와 줘서 고마워. 아마 네 주변에선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이게 정답이라고'라는 말을 계속해서 듣게 될 거야. 그때마다 크게 휘청이고 자기를 의심하게 돼. 하지만 이내 네가 하려는 일을 다시 정리하고 시작하려고 하지. 그래서 지금의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됐어. 그러니까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와 만난 시간을 떠올려봐. 다른 사람도 아닌 미래의 내가 이렇게 맞다고 얘기하잖아. 네가 최선을 다하는 만큼 나도 응원할게. 오늘을 살아줘서 고마워."


그 말을 끝으로 주변이 깜깜해졌다. 기겁하며 눈을 뜨자 아침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 잠이 들었구나' 꿈인지 진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10년 뒤의 나를 만나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확신한다면 어떤 말을 듣더라도 올곧게 설 수 있다는 것. 이제 나는 큰 장애물을 막 넘어선 시점에 서 있었다.


오늘부터 10년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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