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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Dec 20. 2020

엄마 안녕 #002

몇 안되는 추억이라



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나? 그렇게 아프고 힘들면 나를 잊고 살지. 뭐하러 나를 생각하느라 병이 나? 뭐가 그렇게 못 미더워? 그렇게 슬픔에 잠식되어 코로나와 함께 엉켜 살았던 2020년이었다.

가족치료 책도 들여다보았다. 장례라든가 사후세계에 대한 책도 찾아보았다. 종이책을 둘 곳이 부족해 예스 24에서 북클럽을 반년 정도 신청했다. 읽을 수 있는 모든 책은 다 주워다 읽고 메모했다. 자기 계발서는 트렌드에 파묻힐 뻔했다가 다시 정신 차리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주워다 읽었다. 그리고 올해는, 그리고 작년에는 소중한 이들을 많이 떠나보낸 친구도 있었고, 제자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내가 폭삭 익은 갓김치를 하나하나 씻다가 생각났다. 할머니가 담가주신 갓김치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둘째 고모부의 취향이었다. 나는 좀 더 폭삭 시어버린 동치미와 총각무를 좋아했는데 나는 손녀고 둘째 고모부는 사위 아닌가. 사위가 서열이 높지.

갓김치가 중요한 게 아니다. 갓김치든 뭐든 송송 썰어서 양념을 싹 걷어낸 다음 커다란 냄비에 넣고, 들기름을 휘휘 두르고 어쩔 때는 다시다도 탈탈 넣은 뒤에 포옥 끓인다. 이렇게 끓여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다 끓었을 때쯤, 내가 엄마에게 잘한다 소리 들은 유일한 요리가 완성된다.

여담이지만 내가 한 요리는 내 식솔들만 맛있게 먹어준다. 그것도 맛있으리라는 보장이 늘 되어있는 것은 아닌데, 내가 결혼하고서 너 요리 못한다는 소리는 남편은 죽어도 안 했다. 죽기 전에 니 음식 맛없었더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맛없는 요리도 ‘처음 해서 괜찮여’ 하고 쪼끔 먹고, 맛있는 요리는 두 그릇 먹고. 그런 남자와 살고 있어서 참 다행이긴 하다.

아무튼, 이 양념 빠진 허연 김치볶음을 할 때마다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김선자 여사를 떠올릴 것이다. 이것이 아니면 무엇으로 김선자 여사를 생각한단 말인가? 이게 나와 김여사의 연결고리인데? 뭐.. 쓰다 보면 몇 가지 연결고리가 더 생길 테지만 암튼 그러하다.

그리워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떠올리다 보면 자동적으로 슬퍼졌던 때가 있었다. 슬퍼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마음을 강제하는 상황이 없었다고는 말 못 하겠다.

그런데 산 자가 슬퍼야 하나? 한 사람의 역사도 잘 들여다보면 아무리 비정한 세상에 살다 갔어도 웃을 시간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행복했던 추억 한 자락쯤은 있었을 거다.
다른 식솔들이 엄마를 부여잡고 매일 울거나 말거나 이제 남의 일이다. 아직 나의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의 일을 기억하는 일.

그렇게 엄마와 나만의 일을 오롯이 정리하며 1주기 전에 글을 완성할 셈이다. 슬퍼만 하는 것이 뭔가 나답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가족 내에서의 내가 어떤 부분은 형편없었겠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엄마와 나는 취향이 좀 다른. 그래도 한 팀이었던 적이 종종 있었던. 준비되지 않은 채 내가 일찍 엄마를 떠나고 내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엄마는 인사도 없이 나를 떠난. 우리는 그런 사이다.

그 둘만의 이야기로 딸이 2020년 3월 20일 오후 5시에  별이 되어 떠난 엄마를 추모할 참이다.


지켜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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