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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Feb 10. 2021

기억이 났어 #005

명절을 같이 보내는 풍경


꼬마 나무는 명절마다 할머니 댁에 갔다. 명절이 아니어도 자주 간 편이다. 종갓집이든 아니든 차례를 지내는 집은 기본적으로 음식을 어지간히 한다. 우리도 그랬다. 만두 속이 고무대야로 가득, 동태전, 호박전, 고구마전, 계란에 맛살과 야채를 버무려 한 숟갈씩 부친 전. 할아버지가 나무는 동태전을 특히 좋아하니 많이 부치라고 하신 기억도 난다. 종종 내가 우리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겠지만 할아버지는 서슬 퍼런 느낌이 기본이나, 필요한 것은 아낌없이 지원해주시고, 해야 될 것도 칼같이 하시는 스타일이었다.


이틀을 준비해서 차례를 십 분 지낸다. 밥을 먹고 치우고 산소에 다녀오면 어지간하면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거 어여 들 가.


그러면 할머니와 엄마와 작은엄마는 분주해졌다. 식을 싸주시는 거다. 점심을 먹고 갈 때도 있었고 오전에 갈 때도 있었는데 그에 관계없이 할아버지가 어서 들 가 하시면 10분 내로 갈 채비를 마쳤다.


그렇게 외가를 간다. 외가도 복작복작.. 낯을 가리던 어린 나무는 인사만 빼꼼 하고서 주로 방에 처박혀있었고 술을 좋아하는 외삼촌들은 오후부터 새벽까지 계속 술을 드셨다.


외갓집이 당진 신평면 운정리. 왜 지명을 말하느냐 하면 이곳이 매우 시골인데 명절마다 라디오에서 거론했던 핫플레이스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길이 잘 되어있지만 내가 국민학교 다닐 적에는(아마 고등학교 때도) 그 길이 막히고 또 막혀서 사거리를 지나는데만 네 시간이 넘게 걸린 기억이 있다(에어컨 없는 자동차로).


바로 그곳. 전설의 <인주 사거리>라고 들어는 보셨는가 몰라. 우리 외갓집이 당진 시내에서 삽교천을 지나 인주 사거리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정말이지 대책 없이 외갓집을 나섰다가는 그냥 길에서 하루를 뻥튀기만 먹으며 보내야만 하는 어마 무시한 곳.


외할아버지는 명절 당일 저녁이 되면 차도가 보이는 길에서 망부석처럼 서계셨다. 마음 놓고 술판과 이야기판이 벌어지는 동안 차가 덜 막히는 타이밍을 보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벽 세시쯤.


어여 들 가.


즉시 모두 기상. 각 방에 흩어져 자던 이십 명 넘는 자식과 손주는 비몽사몽. 짐을 챙겨서 가장 바깥에 주차한 자식부터 출발해야 했다. 보통 새벽 두 시부터 다섯 시 사이였다. 그때가 아니면 하루 종일 인주 사거리에 갇힌다. 외할머니가 미리 음식을 싸 놓으셔도 못 가져올 때가 있었다. 정신없이 나오느라. 그러면 외할머니는 이건 누구네 거고 저건 누구네 거고 이건 나무가 잘 먹는 건데 하며 차가 떠나기 전에 보자기를 차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쌈짓돈을 꺼내 손주들에게 쥐어주시고 어여 가라고 손짓했다.


한 번은 우리 집이 제일 늦게 출발한 적이 있었다.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에게 쉴 새 없이 뭐라고 하셨다. 누구네는 이걸 좋아하는데 놓고 갔고 누구네는 이걸 못줬다고 매번 이렇게 말도 없이 갑자기들 보내면 어떡하느냐고 이런 시절(충청도 방언) 같은 양반, 뭐한 영감, 뭐한 할아배 등, 외할아버지의 각종 애칭이 나왔다. 자식들을 다 보낸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의 랩을 뒤로한 채


니들도 어여 가.


하시고는 방안으로 쏙 들어가셨다. 외할아버지를 바라보시던 외할머니의 표정이 기억난다. 그렇지만 이내 우리를 보시곤 잘 먹고 잘 놀아서 이쁘다며


또 오너라.


하시고는 만원씩 손에 꼭 쥐어주셨다. 아들 손주는 삼만 원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여섯 명을 태운 화물차가 운정리를 벗어날 때까지 할머니는 손을 흔들었다.


명절이다. 아빠를 만나기 위해 사과 한 상자를 들고 친정에 들렀다. 원래는 같이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지만 아빠가 외래로 수술 후 첫 검진이 있으셔서 오후 두시쯤 잠시 뵈었다. 놀고, 간식도 먹고, 얘기도 해야지 하고 느긋하게 갔는데 아빠가,


엄마가 없으니까 밥도 못해준다야. 해 떨어지기 전에들 가.


하시는 거다. 온 지 한 시간 지났는데. 아니 뭘 벌써 가라고 그랴? 하니 이발하러 가신단다. 이왕 가야 하는 거 어여들 일어나란다. 코로나 때문에 너무 오래들 있을 거 없다며. 부모 마음이 다 그런가 보다. 엄마 마음도 그랬겠지.


잠깐이라도 봤으니 됐어. 안전하게, 어여 들 가.


눈에 눈물방울이 맺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일어났다.


Fin.


또미가 그린 색동 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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