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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뮈 Oct 06. 2024

1. 헤어졌다.

희성이와 헤어졌다. 평범한 사랑을 꿈꾼다면서 상대를 잘못골랐던 내 탓.

"헤어지자"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는 듯 그 남자의 목소리는 떨리지도 않았다. 그저 덤덤했다. 

평소처럼 무던한 말투 그 자체였다. 그 남자, 희성은 한마디를 남기고 카페 테이블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사실, 예견된 이별이었다. 

이미 예상된 상황이었는지 나도 생각보다 그렇게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나도 철이 없는 여자였다. 그래서 밀당의 고수인 이 남자에게 끌렸을 것이다.반듯한 외모, 매력있는 성격에 직업까지. 나에게는 과분하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연애를 해도 되는 건지 황송할 따름이었다. 사실 헤어지고 나서 생각한 건데.....그렇게 과분하지도 않은 남자였다. 망할놈의 콩깍지 때문이지. 


연애할 때 무슨 콩깍지 때문인지 이런 대단한 남자와 연애를 한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누군가의 밤늦은 전화 벨소리와 낯선 향수의 체취에도 애써 모른척했다. 

질투심에 내 마음이 아픈 것이 싫었다. 그래서 진실과 마주하기를 끝까지 거부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이 남자와 끝까지 관계를 해나가고 싶었다. 그의 튼튼하고 두터운 팔에 안길 때면 세상 모든 시름을 잃는 듯 했다. 

그의 큰지막한 손이 부드럽게 어깨와 등, 가슴을 스칠 때면 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황홀했다.  


어떤 일이든 진실을 마주했을 때 외면하기 시작하면 그 부작용은 어떤식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핸드폰 사진첩에서 어렴풋이 스쳐 지나간 그녀. 그녀를 이런 식으로 마주친 것은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내가 애써 모른척했을 뿐이지. 


참고 참다가, 결국 나의 불타는 질투심과 배신감은 활화산처럼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의 핸드폰 사진첩에 스쳐 지나가는 그녀의 사진을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그의 목을 힘껏 움켜 잡았다. 나의 본 적없는 야수같은 행동에 당황한 희성은 떠나갈세라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너 뭐하는 짓이야! 정신 나갔어?"


나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나? 정신 나간지 오래지. 그동안 오랫동안 참아왔어. 그런데, 정말 정신이 나간거는 너 아니야? 어떻게, 어쩜 이렇게 당당하게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거야?"


나는 희성의 목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그 남자의 얼굴을 점점 빨개지고 있었고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내 손을 뿌리치며 그의 큰 손은 나의 뺨을 휘갈겼다. 


'찰싹!'


내가 좋아했던 그의 큰 손이 거칠게 내 뺨을 휘갈겼다.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왔다. 


"이....이게 뭐야 이게..."


나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그 남자 또한 당황한 표정으로 혼자 씩씩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우리 둘 중 한 명도 '헤어지자'라는 단어는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있었다. 이전에 우리는 그 어느 커플들과 다를바 없이 수도 없이 다툼을 해오고 있었고 '헤어져, 끝내' 라는 말을 쉽게 내뱉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둘은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둘 중 누구 한 명이라도 '헤어지자'라는 말을 하는 순간 그것은 정말 끝이라고. 더 이상 연인간의 다툼이 아닌, 우리 둘 사이를 확실하게 종결시켜 버릴 마지막 단어라는 것을. 


"헤어지자" 


희성의 이별선고에 나는 한 3초 동안은 '멍'했고, 가슴은 '철커덩'하고 가라 앉는 듯 했다. 그러나 금방 또 수긍이 됐다. 차라리 '잘 됐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예전부터 그는 좋은 남자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이런 도파민을 자극하는 연애는 그만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헤어지자는 말에 나는 어떤 말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게 희성과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차라리 잘 됐어'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쓸쓸히 혼자서 하염없이 시내를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와 헤어진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거웠던 가슴이 한 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난 후 나는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퇴사는 할 껀지 말껀지 고민스러운 상태였고 경제적인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그냥 이도저도 아닌 인생마냥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인생이이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별 후 새로운 연애는 진행될 기미도 안 보였으니 세상의 시선대로라면 나는 그야말로 도태녀가 된 셈이다. 


"커피나 한 잔 하러 가자"


물론 나 스스로에게 건넨 한 마디다. 스스로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으로 가득할 때 즈음 나는 근처 카페로 향했다. 여느 때처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키고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평소 사람들로 가득했던 카페는 적막감이 흐를 정도로 조용했고, 나 혼자만의 공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때 '왈콱'하고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카페는 그가 나를 바래다주거나, 데리러 오겠다고 할 때 자주 들르던 집 근처 카페였다. 다른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고 마치 둘만의 세계에 있는 것 처럼 간지럽게 사랑을 속삭이던 추억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나는 이제 그 공간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와의 뜨겁던 순간들이 영화의 필름처럼 이어져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와 헤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펑펑'하고 울었다. 새어나오는 울음소리를 필사적으로 내지 않으려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쏟아냈다. 


'진짜로....헤어졌어. 끝난거야. 이제는 못 봐' 


그렇게 이별을 실감했다. 두 눈이 퉁퉁부을 정도로 울고 나니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뜨문뜨문 생각나던 그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듯 했다. 그의 거친 팔로 나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던 손길, 따듯했던 품 속이 떠올라 마음이 아파왔다.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쥐어짜듯 아렸다. 알 수없는 고통에 나는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펑펑' 울고나서는 신기하게도 그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그의 얼굴도 모습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생각은 나는데, 생각하기도 싫었다는 표현이 더 잘 맞을 것이다. 


단지 그런 남자를 사랑했던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긴 했을 뿐이다. 

진짜로 그를 사랑했던게 맞았던 것인가? 아니면 사랑의 감정이 증오로 변질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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