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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티 Apr 24. 2024

음악시간에 밤양갱을 불러도 될까



"선생님, 짝 언제 바꿔요? 건후가 자꾸 수업 시간에 노래 불러요."


"그래? 하지 말라고 부탁했는데도?"


"네! 자꾸 밤양갱 밤양갱 이래요!"



건후가 밤양갱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밤양갱 열풍에 뒤늦게 탑승했나 보다. 중독성이 강한 멜로디가 반 전체로 퍼져서 미술 시간에도, 수학 시간에도, 점심시간 급식실 줄을 서도 여기저기서 "밤양갱~밤양갱~"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열한 살과 밤양갱이라는 단어는 몽글몽글하니 퍽 잘 어울린다. 같이 지내는 나에게도 밤양갱 물이 들어버렸다. 저녁 먹고 설거지를 할 때도, 빨래를 갤 때도 이 노래를 무한 반복으로 틀어놓았더니 어제는 꿈에서 배경음악으로도 나왔다.


​​

그래도 어쨌든 재우가 불편하다고 했으니 선생인 나는 건후에게 근엄하게 주의를 준다. "네가 노래를 불러서 옆에 있는 친구가 불편하다고 말하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해. 그걸 배려라고 하는 거야."

​​


'재우야 이러다가 나도 수업 중에 밤양갱 밤양갱 노래를 흥얼거릴지도 모르겠어.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과목 음악인 거 알지? 너도 밤양갱 바이러스에 같이 전염되어보면 어때? 릴렉스 앤드 인조이뮤직~'이라는 것이 속마음이다.

​​


나는 자고로 아이들이 있는 곳은 시끌벅적하고 노래도 흐르고 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철없는 선생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따라 부르는 노래라니! 이대로 소음 취급하고 넘어가기는 뭔가 아쉽다. 아예 밤양갱 노래를 음악 시간에 같이 불러버릴까 싶어서 가사를 음미하며 들어보았다.


비비 '밤양갱' (장기하 작사, 작곡)​


떠나는 길에 네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잠깐이라도 널 안 바라보면


머리에 불이 나버린다니까'


나는 흐르려는 눈물을 참고


하려던 얘길 어렵게 누르고


'그래 미안해'라는 한 마디로


너랑 나눈 날들 마무리했었지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이야




와 좋네. 장기하가 이제 이런 것도 쓰네. 근데... 이거 이별 노래고 '밤양갱'은 상당히 은유적인 표현인데 애들이 이 노래 이해 될까?

​​


'자 얘들아. 재민이라는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었어. 네가 학교 끝나고 자전거 타자고 했는데 재민이가 한 시간밖에 없다고 주말에 오래 같이 놀자고 한 거야. 주말이 되어서 실컷 놀았는데 재민이가 감기에 걸린 거지. 근데 너랑 오래 놀다가 감기에 걸렸다고 하면서 이제 너랑 안 놀겠대. 사실 너는 딱 한 시간만 같이 재밌게 놀아도 상관없었는데! 그 마음이 다디단 밤양갱 같은거야.‘


​​

너무 설명충인가? 의외로 애들이 무슨 의미인지 이미 알고 있을까? 내 설명이 오히려 유치뽕짝으로 들릴까? 옆에 있던 엄마에게 고민 상담을 해보았다.



"엄마, 학교에서 애들이랑 밤양갱 부르면 안 될까?" (참고로 우리 엄마는 제시, 비비, 이효리 팬이다)


"왜 안돼? 멜로디가 너무 좋잖아~"

"이별 노래잖아. 애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리고 교사 커뮤니티에서 보니까 비비가 노출 심한 가수라 학부모들이 싫어한대."

"애들도 이별 알아야지. 그리고 그런 이상한 민원 들어오면 그때 그만하면 되지!"


역시 우리 엄마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 음악이 흐르는 건 항상 옳은 것이고 내용에 잔인하거나 야한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별난 민원은 들어오면 그때 생각하자. 엄마의 쿨한 응원을 받으니 단순해지면서 용기가 난다. 다음 주 음악 시간에 같이 밤양갱 불러봐야지. 내일은 피아노나 우쿨렐레로 어설프게라도 반주 연습을 해봐야겠다.

​​


'재우야. 우리 밤양갱 같이 부르자! 불러보면 너도 건후랑 같이 흥얼거리게 될지도 모르잖아?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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