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은 맞는데요 ‘의 프롤로그를 뒤늦게 쓴다. 이제 와서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이제라도 적어보기로 했다. 벚꽃 잎이 흩날릴 땐 원래 안 하던 짓을 하게 되는 거니까. 에세이 연재를 시작하고 "글 쓰면 뭐가 좋아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보통 '재밌어요! 속도 풀리고...'라고 간단하게 답해버린다. 그렇지만 뭐가 재미있는지, 왜 속이 풀리는지에 대한 설명은 꽤 생략되어 있다. 장황하게 설명해 봤자 듣는 사람에게 얼마나 와닿을까 싶어서 입을 열다가 말게 된다.
이렇게 글로 한 번 정리해 두고 앞으로 누가 또 묻는다면 이 글의 링크를 보내주면 되겠다. 그리고 내게도 자꾸 보여줘야겠다. 글쓰기가 당장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창한 일요일 낮이나 지친 평일 저녁에 더 늘어져 있지 않고 노트북을 연다. 마치 대학교 때 시험기간처럼 엉덩이 붙이기 전에 딴짓부터 잔뜩 한다. 안 하던 팩을 하거나 청소기를 돌리기도 하고 유튜브 영상도 깨작거린다. 노트북 옆에는 아몬드, 말린 오징어, 먹다 남은 과자 등등 씹을 수 있는 것은 몽땅 깔아 둔다. '열두 시 전에 자려면 이제는 시작해야지.'싶을 때가 되어서야 집중이 잘 되는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두고 자판에 손을 올린다. 일단 손을 올렸으면 뭐라도 두드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나는 왜 사서 고생일까.
첫째, 솔직해질 수 있다. '선생님'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을 때는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속내를 시원하게 까보이며 희열을 느낀다. 평소엔 어디 가서 직업 얘기는 잘 안 하려고 한다. ‘역시 선생님은 달라.’라던가 ‘선생님이 그래도 돼?’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이다. 나는 한적한 횡단보도에서 무단횡단도 하고 운전하다가 흥분하면 욕지거리도 날리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들 앞이나 내 직업을 아는 지인들 앞에서는 자기 검열이 이 빡빡해진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나 생각이 나를 선생님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하게 들릴까?'를 신경 쓴다. 겁나 피곤하다. '람티'라는 필명 뒤에 숨어 좀 더 날것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
둘째, 교사 일을 안 해도 먹고 살 방법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교사 다음의 먹고 살길을 위해 교사 시절의 이야기를 도토리처럼 모아두는 철두철미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직업이 평생직장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막연하지만 분명하게 든다. 몇 달 전에 심리 상담을 받았을 때 내게 교사가 힘든 직업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한 명씩 다 살피고 맞춰주려는 내 성향이 아이들에게는 좋겠지만 스스로에게는 큰 스트레스일 거라고 했다. 매일 느끼고 있는 부분이어서 금방 이해가 갔다. 나의 예민함은 아이들에게 득이 되지만 내겐 독이 되는 순간이 많다. 감정의 촉수가 많은 나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크게 느끼고 금세 기가 빨리고 만다. 매일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의 에너지가, 이야기가 내게 다녀간다. 퇴근 후엔 전화 통화도 안 하고 싶고 약속도 귀찮을 때가 많다.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려나 싶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 상태로는 십 년만 버텨도 다행일 것 같다. 교사 자격증 떼고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고 하니 글쓰기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학창 시절부터 다이어리에, 블로그에, 인터넷 라디오에, 글쓰기 모임에서 조각조각 글을 적어왔다. 기똥찬 문장을 쓰지는 못하지만 나는 글쓰기가 재미있고 앞으로 더 잘하고 싶다. 꾸준히 쓰는 근육을 길러 놓으면 뭐라도 모여서 내게 믿을 구석이 되어 주지 않을까.
셋째, 독자가 있는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강제성이 없는 글쓰기의 장점은 매우 자유롭다는 것이고 단점은 너무 자유롭다는 것이다. 나는 조용한 관종인 편이라 일기장이나 혼자 보는 저장글만 쓰면 혼자 떠드는 기분이다. 내 안의 엉킨 감정과 경험이 단어로 옮겨졌다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봉인되어 버린다. 그런 글쓰기는 편하지만 끝맛이 씁쓸할 때가 많다. 문득 글쓰기라는 놀잇감이 떠오르면 혼자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면 다시 장난감 상자에 넣어버리면 그만이다. 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이 표현은 좀 멋지지 않냐고 관심받을 수 있는 공간에 글을 쓰고 싶었다.
넷째, 내가 꾸준히 쓸 수 있는 주제여야 했다. 처음엔 선생님 이야기로 글을 쓰는 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선생님보다 뻔해 보이는 직업이 있을까? 유명 엔잡러의 인스타그램 게시글이 구미가 확 당기는 탕후루라면 선생님의 글은 이미 무슨 맛인지 알겠는 누룽지 사탕이 아닐까 걱정됐다. 그래도 결국 내 일상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 아이들이라 교실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일 외에 다른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해도 결국 아이들에 대해 적는 글이 갓 구워 나온 소금빵처럼 맛있는 냄새가 났다. 이제 교사 삼 년 차인 나의 온 신경은 아직 교실 안에서 허덕이고 있어서 어쩔 수가 없다.
일하면서 기록하고 싶은 반짝이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 예쁜 것들을 감히 글로 옮겨본다. 아이들의 뭉클한 말 한마디, 내게 선물하는 꼬깃꼬깃한 하트모양의 종이 접기가 모두 살아있는 글감이 된다. 교실에서 문뜩 떠오른 글감을 서둘러 노트에 적으면서 ‘앗싸 득템!’을 속으로 외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분명 쾌감이 있다. 해외여행보다, 호캉스보다 나를 즐겁게 해 주니 꾸준히 쓸 말이 생긴다.
선생님은 맞는데 모든 아이가 예뻐 보이지는 않고, 선생님은 맞는데 풋살과 밴드 음악을 좋아한다. 선생님은 맞는데 방학 때는 학교 근처도 쳐다보기 싫고, 선생님은 맞는데 아이들에게 항상 근면하고 성실하라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선생님은 맞는데요 ‘라는 연재 제목 뒤에는 조금은 비뚤어진 선생의 고해성사, 변명이 가득 생략되어 있다.
적고 보니 네 가지씩이나 되는 이유로 글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학교의 일상이 비슷하게 반복되는 게 많아서 언제까지 쓸 말이 있을까 싶다. 얼마 전, 글쓰기 모임의 백회 기념 파티에서 모임장님께 앞으로 목표가 뭐냐고 물었더니 다음 주 모임열기라고 하셔서 좀 멋있었다. 멋있는 건 자고로 따라 해봐야 하니까 ‘선생님은 맞는데요.’의 목표도 그저 다음 주의 무사한 한 편 글쓰기로 잡을 거다. 내 안의 할 말이 떨어질 때까지 박박 긁어서 누룽지까지 야무지게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