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짝 언제 바꿔요? 건후가 자꾸 수업 시간에 노래 불러요."
"그래? 하지 말라고 좋은 말로 부탁했는데도?"
"네! 자꾸 밤양갱 밤양갱 이래요!"
건후가 밤양갱 열풍에 뒤늦게 탑승했나 보다. 미술 시간, 쉬는 시간, 급식 시간에도 여기저기서 "밤양갱~밤양갱~"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 학년 아이들과 밤양갱이라는 몽글몽글한 단어가 잘 어울리긴 한다. 일 학년 담임은 안 해봤지만 왠지 발음도 잘 못해서 "방앙갱?"이럴 것 같고 육 학년은 언니 포스 좔좔 풍기며 아이돌춤 연습에 빠져 지내니까 말이다. 올해 사 학년과 같이 지내는 나도 뒤늦게 밤양갱 물이 들어버렸다. 설거지를 할 때도, 빨래를 갤 때도 이 노래를 무한 반복으로 틀어놓았더니 어제는 꿈속의 배경음악으로도 등장했다. 이러다가 나도 수업 중에 밤양갱 노래를 흥얼거릴지도 모르겠다.
자고로 아이들이 있는 곳은 시끌벅적하고 노래도 흘러나오는 게 자연스럽다고 본다. 분수의 덧셈과 뺄셈은 못해도, 공책에 글씨는 개발새발 써도, 달리기는 꼴등을 해도, 함께 목소리는 모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꽤나 울림을 준다. 목소리도 다르고 음정도 다르지만 그래서 멋지다. 음악 교과서에 담기지는 않았지만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이 알아서 즐겁게 따라 부르는 곡이 있다면 그것이 밤양갱이든 꼬깔콘이든 상관이 있을까 싶다. 밤양갱 열풍을 이대로 소음 취급하고 넘어가기는 뭔가 아쉬웠다. 아예 이 곡을 음악 시간에 음미하며 같이 불러볼까 싶어서 주의 깊게 들어보았다.
비비 '밤양갱' (장기하 작사, 작곡)
떠나는 길에 네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잠깐이라도 널 안 바라보면 머리에 불이 나버린다니까'
나는 흐르려는 눈물을 참고 하려던 얘길 어렵게 누르고
'그래 미안해'라는 한 마디로 너랑 나눈 날들 마무리했었지
다디달고 다디달고 다디단 밤양갱 밤양갱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다디단 밤양갱 밤양갱이야
표현이 시적이기도 하고 담긴 이야기도 귀엽고 멜로디도 착착 감기는 잘 만든 작품이구나 싶었다. '근데 이거 이별 노래고 '밤양갱'은 상당히 은유적인 표현인데 애들이 이해될까?‘하는 고민이 됐다.
'재민이라는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어. 네가 학교 끝나고 자전거 타자고 했는데 재민이가 한 시간밖에 없다고 주말에 오래 같이 놀자고 한 거야. 주말이 되어서 실컷 놀았는데 재민이가 감기에 걸린 거지. 근데 너랑 오래 놀다가 감기에 걸렸다고 하면서 너랑 노는 게 피곤하다고 하는 거야. 사실 너는 딱 한 시간만 같이 재밌게 놀아도 상관없었는데 말이야. 잠깐이라도 괜찮으니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달달한 마음! 그게 밤양갱이야.‘
너무 설명충인가? 의외로 애들이 무슨 의미인지 이미 파악하고 있을까? 내 설명이 오히려 유치뽕짝으로 들릴까? 옆에 있던 엄마에게 고민 상담을 해보았다.
"엄마, 학교에서 애들이랑 밤양갱 부르면 안 될까? 애들이 엄청 좋아해." (참고로 우리 엄마는 제시, 비비, 이효리 팬이다)
"왜 안돼? 멜로디가 좋잖아~"
"이별 노래잖아. 애들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교사 커뮤니티에서 보니까 비비가 노출이 심한 가수라서 학부모들이 부적절하다고 민원 들어오기도 하는데."
"애들도 이별 알아야지. 그리고 그런 이상한 민원이 진짜 들어오면 그때 그만하면 되지!"
엄마 말이 맞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 음악이 흐르는 건 항상 옳은 것이고 내용에 잔인하거나 야한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별난 민원은 들어오면 그때 생각하자. 엄마의 쿨한 응원을 받으니 단순해지면서 용기가 났다. 집에 있던 우쿨렐레로 반주 연습을 시작했다. 다행히 연주법이 복잡하지 않았고 주말 오후 내내 밤양갱 밤양갱 거리며 즐겁게 연습했다.
“샘이 깜짝 선물 있지롱~ 주말에 연습했는데 밤양갱 반주 보여줄까?”
”와 샘 그거 반주할 수 있어요? 대박! 보여주세요! “
“샘, 비비보다 노래 잘 불러요. 최고예요! “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분명 쉰소리가 난 것 같은데 원곡 가수보다 멋지다고 해주는 아이들을 보니 연습한 보람이 차고 흘러넘쳤다. 우쿨렐레 반주에 맞춰 밤양갱 노래를 집중해서 노래 부르는 아이들과 내 모습이 꽤 근사했다. '동네 사람들~ 누가 와서 이 멋진 장면 좀, 예쁜 목소리 좀 들어봐요!' 음악 시간에 밤양갱을 불러도 되는 거였다. 아니, 좋은 거였다.
밤양갱 노래 부르기처럼 교육과정에는 없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활동들이 있다. 여행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가 돋보이는 장면이 나오면 도덕 교과서 대신 보여주고 싶다. 장마철에 천둥번개가 요란할 때 교실 불을 끄고 무서운 이야기도 실컷 하고 낙엽이 떨어질 때면 주변 공원으로 소풍을 나가 돗자리에 누워서 하늘 보며 멍 때리고 싶다. 입김이 나오는 날씨가 되면 붕어빵도 같이 구워 먹고 싶다. 실은 이 활동들은 이미 시도해 보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일들이다.
에너지가 닿는 만큼 교실에서 이 것 저 것 딴짓을 실컷 해보자는 주의다. 하고 싶은 건 참지 못하고 결국 해버리고 마는 우당탕탕 선생님이지만 지나고 보니 벌써 추억이 많이 쌓였다. 소풍 가서 애들 과자 몰래 뺏어 먹으며 즐거워하고 겨울에 붕어빵 만든다고 난리 치다가 교실에 불을 낼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즉흥적이고 뭐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 많은 성격을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이 오히려 감당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성적이 중요해지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면 딴짓하는데 걸림돌이 훨씬 많지 않았을까?
실컷 딴짓을 하고, 좌충우돌 부딪혀 보고, 눈치 보지 않고 밀어붙이며 교직 삼 년 차를 지나고 있다. 이래도 되나? 싶은데 다행히 아직까진 별일이 없었다. 괜찮은 아이들, 학부모, 동료들을 만나 아직 험한 꼴을 보지 못했으니 항상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어떤 후폭풍이 닥칠 수 있는지 알아버리기 전에, 누군가의 선배가 되기 전에,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를 만나 모든 것에 조심스러워지기 전에 실컷 이러고 지내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