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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티 Jun 01. 2024

불금이 뭐예요?

"오늘 헬스장에 사람이 왜 이렇게 없어요?"

"회원님, 불금이잖아요!"

"아... 불금!"

  금요일 밤의 헬스장에는 나와 피티 선생님뿐이었다. 꽤 오랜만에 맛보는 음식처럼 불금이라는 단어를 입안에서 우물거렸다. 봉지를 뜯고 시간이 지나 말라비틀어져버린 오징어 맛이 났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거리를 누비는 금요일 밤과 멀어진 요즘이라 그렇다. 작년 여름까지 금요일 밤마다 직장인 취미 밴드를 하러 다녔다. 이제는 한 물 갔다고 해도 여전히 붐비는 금요일 밤의 홍대 입구역에 내리면 왠지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눈에 띄는 타투를 한 사람도 배꼽티를 입은 사람들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리라니. 매주 다녔어도 항상 구경거리가 많았다.

  합주실에 도착하면 각자 한주를 치열하게 살고 온 멤버들이 피곤한 얼굴로 모여 있었다. 그들의 몰골은 한 주를 버텨낸 회색빛 직장인일 뿐 타투나 배꼽티와는 거리가 멀었다. 금요일 밤마다 딩가딩가 합주를 한다고 지하 연습실로 기어들어오는 성실하고 지독한 배짱이들일 뿐이었다. 합주를 시작하고 흥이 오르고 나서야 조금씩 얼굴에 생기가 도는 '합주 중독'에 빠진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참여하는 직장인 밴드 연합 공연을 목표로 연습을 이어갔다. 합주가 끝나면 항상 가는 치킨집 또는 막걸릿집에 자리를 잡고 아무 얘기를 계속했다. 다음 공연 곡은 뭘로 할지, 공연 컨셉은 뭘로 잡을지, 이번에 새로 나온 누구의 곡이 좋다든지 이런 얘기였다. 식당에 흘러나오는 음악 얘기로 화제가 갑자기 전환될 때도 많았다. 치킨집의 떡볶이가 왜 이렇게 맛있는 가에 대해 한 마디씩 하다 보면 또 시간이 흘렀다. 


  해도 안 해도 그만인 얘기를 실컷 떠들 수 있는 아무개의 사람들이 있다는 건 꽤 근사한 일이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해도 안주발을 세우며 늦은 밤까지 멤버들의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듣는 게 재밌었다. 학교 밖의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했다. 인테리어 시공 업을 하는 감미로운 목소리의 남자 보컬은 유럽 배낭여행을 가려고 반년 동안 쓰리잡을 뛰었다. 그는 여행 도중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유럽 초등학생들의 사진을 찍어 내게 보내줬다. 베이스 오빠는 기르는 강아지와 가족보다 더 진한 사이처럼 보였다. 반려견에게 바치는 곡을 쓰기도 하고 주말엔 지방까지 반려견 봉사를 다니기도 했다. 그 끈끈한 관계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대리 반려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가족도 직장 동료도 아닌 음악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선생님으로서의 내가 옅어지는 기분을 즐겼다.

  밴드를 떠난 지 일 년이 되어간다. 불금이란 단어가 멀게 느껴지는 금요일 밤은 저염 닭가슴살처럼 퍽퍽하고 밋밋하게 되었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리를 맞추며 느끼는 쾌감이나 함께하는 소맥 한 잔이 그리운 날도 많다. 같은 팀이었던 멤버들의 공연 소식이 들리면 자극이 된다. 공연 연습을 안 하고 지내는 동안 나는 휴식기를 알차게 보낸 걸까 돌아보기도 하고 공연에 놀러 가 내 팀이었던 이들의 무대를 아련하게 응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잠깐 뒤돌아보아도 금요일 밤을 온전히 내게 선물하는 지금이 충분히 좋다. 아니 적어도 지금은 이게 더 좋다. 웬만하면 일찍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밀린 빨래와 분리수거를 한다. 해지기 전에 서둘러 운동부터 다녀오고 땀범벅인 채로 침대에 쓰러져 배달 어플을 켠다. 일주일을 무사히 지낸 나에게 '먹고 싶은 거 말해봐. 다 사줄게.'를 외치고 고심하며 메뉴를 고른 후에 배철수 아저씨 라디오를 들으며 배달을 기다린다. 편의점에서 감자칩 한 봉지와 맥주 작은 한 캔도 사 온다. 러닝타임 신경 쓰지 않고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를 고른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실컷 먹고 마시며 넷플릭스를 보다가 치킨 기름과 감자칩 가루를 입술에 묻힌 채로 잠이 들 때도 많다. 금요일 밤을 비워두니 내일을 생각 안 하고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초자유의 즐거움을 누리게 됐다. 웬만하면 친구랑 약속도 잡지 않는다. 나랑 논다. 


  하루종일 아이들이랑 있다 보니 기가 빨려서 그런가? 원래 고독이 필요한 사람인데 비로소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은 걸까? 모르겠다. 아직은 나를 지켜보는 수밖에.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지나고 보면 뒤늦게 이해가 되는 때가 있지 않은가. 나중에 돌아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이천 이십 사 년 나에게 금요일 밤 합주의 쾌감보다, 친구랑 치맥 한 잔 하는 것보다, 혼자 빨래 개고 넷플릭스 보는 시간이 절실했던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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