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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티 Jun 08. 2024

선생님 똥 얘기좀 그만 하세요!



(이번화는 식사 시간 근처에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선생님은 오늘 아침 기분 완전 5점이야!”

“왜요~?”

“오늘 5일째 모닝 똥 쌌거든? 이건 거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 몸이 너~무 가벼워! 흐흐흐”

"오 샘 기분 좋으니까 그럼 오늘 체육 해요!"

"응?"

 우리 반은 아침 조회 시간에 마음 손가락 펼치기 활동을 한다. 손가락 한 개가 가장 나쁜 기분, 다섯 개를 다 펼치면 가장 좋은 기분이다. 아이들의 컨디션을 대강 확인할 수 있고 왜 3점인지, 5점인지에 대해 이유를 얘기하며 스몰토크의 기회가 된다.

아이들 감정을 살핀다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혼자 사는 내가 실컷 쫑알거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성 변비인 나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모닝똥이 가장 큰 이슈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아침 시간에 자꾸 내 똥 이야기를 떠벌리게 되는 것이다. 구렁이 같은 황금똥을 싼 날은  손가락 점수가 5점이고 그런 식이다.

  나는 변비 탈출을 위해 건자두, 요거트, 유산균, 푹 익은 바나나 등등 안 챙겨 먹어 본 게 없다. 이 글에 근사한 그림을 그려주고 있는 멱꾹 작가님이 내 사연을 듣더니 차전자피라는 새로운 한약재(?)도 조용히 챙겨주었다. 똥님에게 바칠 새로운 재물의 효험을 기대해 보는 중이다.


   자취방엔 똥 달력이 있다. 똥 싸는데 성공한 날이면 그 날짜에 갈색 색연필로 하트를 그려 넣는다. 하트가 빼곡히 쌓이는 날들엔 마음도 가볍다. 맘껏 똥 달력을 그릴 수 있다니 혼자 사는 것의 좋은 점 중 하나다. 이렇게 똥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어찌 새어 나오지 않을 수가 있을까. 매일 아침마다 주기적으로 만나는 반 애들한테는 더더욱.

  아이들은 똥 얘기에 쌍디귿만 나와도 반응을 한다는 얘기가 있다. 똥을 주제로 한 그림책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일 것인데, 2년 전부터는 '똥볶이 할멈'이란 만화책 시리즈가 베스트셀러에도 올라있다. 그래서 난 자연스럽게 똥 얘기를 했을 뿐인걸? 모든 배움은 아이들의 흥미로부터 일어난다고 그랬다.

  이렇게 우겨보지만 간혹,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많이, 불편한 표정으로 변하는 아이들이 눈에 보이면 바로 입을 닫는다. '아차! 똥 얘기가 불편한 열한 살 어린이도 있을 수 있지. 그래. 너희도 나름 10대에 접어들었으니 대우를 해주지.'라고 주춤하는 척한다. 그리고 며칠 뒤에 또 자연스럽게 똥 이야기를 꺼내고 만다. 끈질긴 선생이다.

 '아니 뭐 똥 안 싸는 사람 있나? 밥상머리에서만 아니면 됐지 똥 얘기가 더러워? 똥 잘 싸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너희가 나처럼 변비를 겪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우리 엄마가 똥 잘 싸고 잘 자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거든? '괜히 똥 얘기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속으로 씩씩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도대체 무슨 똥 얘기를 그렇게 하고 싶은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너희만 할 때 여름방학에 외갓집에 놀러 가서 똥 싸다가 변기가 막힌 걸로 지금까지 놀림을 받고 있다던가, 변비에 좋다고 해서 먹어본 음식 목록이라던가, 고등학교 때 책상에 오래 앉아있어 보겠다고 버티다가 그때부터 변비가 생겨서 얼굴이 더 노래진 것 같다던가, 교생 실습 때 긴장한 탓에 변비가 너무 심해서 택시 타고 가다가 내려서 주변 화장실을 찾느라 혼꾸녕이 났던 그런 얘기들인 것 같다.

  한 마디로 내 인생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은데 이게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내 얘기를 하고 싶은데 그 중심 주제가 똥이라는 것만 좀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꼰대가 될 순 없으니 아무래도 똥을 주제로 단편 에세이를 써보는 게 낫겠다. 나처럼 똥 이야기를 좋아하는 만성변비인들이 읽어주지 않을까.

  도덕 시간에 배우는 예절에는 '똥 얘기'를 하지 말란 말은 없고 '상대방이 불편할 수 있는 얘기' 또는 '더러운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까 똥 얘기에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거나, 똥이 더러운 게 아니라면 똥 얘기를 하는 건 예절에 어긋나지 않는 거 아닐까? 이렇게 우겨보아도 알고 있다. 교실에선 자제해야 한다는 걸.

“오지 마! 나한테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마!”

며칠 전 쉬는 시간에 내게 다가오는 호준이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다른 아이들도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얼른 내 자리 옆 창문을 열고 엉덩이 주변으로 부채질을 하는 시늉을 했다. 민망한 상황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보려는 나의 어설픈 액션이었다. 내 이상한 행동을 지켜보던 아이들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야아! 선생님 방귀 뀌셨다!”

호준이가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외쳤다. 방구를 ‘뀌셨다’니! 그 와중에 방구와 존댓말의 조합이 귀여웠다.

  나중에 1학년 담임을 맡게 되면 똥 얘기를 실컷 해도 애들이 다 좋아하지 않을까. 아직 1학년 담임을 해볼 엄두가 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맞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걸로 위안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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