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항암까지 호중구 저하로 응급실을 들락날락 하고 입원치료를 받았는데 4차부터는 내성이 생겼는지 호중구가 튼튼하게 버텨주었다. 1,800.. 호중구가 아주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면역 치료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4차 항암이 끝나서야 비로소 응급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면역 저하로 열이 나지는 않았지만 두통이 심하게 생기고 식사를 해도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음식이 얹힌 듯 윗배가 쿡쿡 쑤시고 더부룩한 느낌이 들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두통은 더해져 드라마에 나오는 몸져누운 시어머니처럼 머리에 띠를 두르고 있어야 했다. 바깥공기를 마시며 조금 걸어볼까 했는데 몇 발 떼지 않아도 숨이 금방 찼고 계단이나 오르막을 오를 때면 눈앞에 별이 반짝거렸다. 머리를 싸매고 주저앉다가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와 누웠다.
외래진료가 있던 날, 두 시간 먼저 도착해서 채혈검사와 X-ray 검사를 마치고 순서를 기다렸다. 곧이어 내 차례가 되고 외래 진료를 보는데 이번엔 헤모글로빈 수치가 너무 낮다고 한다. 성인 여성 헤모글로빈 정상수치는 보통 12~16 정도로 보는데 채혈검사 결과 나의 헤모글로빈 수치는 7.6이었다. 항암제가 이제는 단단해진 호중구를 물리치지 못하고 적혈구 공격으로 노선을 바꾸었나 보다. 적혈구가 부족해서 빈혈증세로 심한 두통이 있던 것이고 마찬가지로 식사를 해도 위에 피가 몰리지 않아 소화가 제대로 될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혈액 2팩 수혈을 처방받았다.
수혈을 위해 또 한 번의 채혈 검사를 하고 항암 낮병동에 병실을 배정받았다. 채혈 검사에 따른 혈액형에 맞춰 혈액팩이 도착했다. 적나라하리만큼 검붉은 혈액주머니를 보니 속이 불편해졌다. 두통도 찌릿하게 찾아왔다. 눈을 감고 수혈을 받는 내내 잠을 잤다. 항암제 맞았을 때처럼 수혈을 하면 입 안에 피의 비릿한 맛이 느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의 몸에서 나온 피가 내 몸으로 들어가는 게 기분이 이상했다. 대학생 때는 헌혈을 참 열심히 했는데 그저 무료 영화 티켓을 얻기 위해 가볍게 했던 헌혈이 이런 과정을 통해 필요한 사람에게 갔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뿌듯했다. 그리고 얼굴과 이름 모를 누군가의 혈액 주머니도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수혈을 받자마자 단숨에 몸이 가뿐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다음 날부터는 장염처럼 계속 괴롭히던 배아픔이 사라졌다. 뭘 먹어도 소화가 잘 되었고 든든해진 배 덕분에 나른하게 잠도 잘 잤더니 어느덧 두통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또 한 번 느낀 인체의 신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