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 이후부터는 항암 치료 중에 역겨워도 변비약은 꼬박꼬박 잘 챙겨 먹었다. 한 번의 무리한 배변활동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항문 파열과 치질을 동시에 얻어버렸다. 좌욕이 증상 완화에 좋다기에 좌욕기를 사서 하루 두 번 열심히 엉덩이를 지졌다. 따뜻한 물에 엉덩이를 담그고 있는 순간엔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대로 좌욕기에 앉아서 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네 의원에서 연고를 처방받아 집에서 좌욕을 하고 연고를 바른 뒤 잠을 자는데 새벽부터 갑자기 심한 오한이 들었다. 곧바로 들이닥치는 근육통과 발열에 엉덩이 통증은 더해졌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앉아 있다가 누웠다가, 따뜻한 물로 좌욕을 해봐도 그대로였다. 결국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37.3도 약간의 미열이 있다. 새벽에 잠을 설친 탓인지 오히려 아침에는 잠을 조금 잘 수 있었다. 전기장판에 푹 지지면 열이 떨어질 것 같은데 땀을 푹 흘리며 자고 일어났더니 오히려 39도가 넘어가고 있었다. 옷을 챙겨 입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항암 후에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지 말고 바로 응급실로 오라는 간호사의 말이 생각나 그대로 차에 탔지만 해열제 없이 병원으로 가는 한 시간을 버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진짜 고난은 응급실에 도착해서부터였다. 오후 4시쯤 응급실에 도착을 했는데 대기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침상이 만석인 것도 모자라 벤치 의자 한 칸 한 칸마다 환자의 이름이 다 붙어 있던 것이다. 응급실 접수를 하고 체온 혈압을 측정한 뒤 배정받은 의자에 앉아 병든 닭처럼 꾸벅댔다. 그로부터 해열제 없이 꼬박 4시간을 버틴 뒤 겨우 소변 검사와 채혈 검사를 했다. 수액을 연결하면서 해열제가 처방이 되었는지 슬슬 땀이 나고 열이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항암 부작용으로 호중구 수치가 바닥을 치고 면역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항문파열로 인한 염증 반응에 이렇게 열이 나는 거라고 한다. 항암을 하면서 '호중구'의 소중함에 대해 여실이 깨달았다. 혈액 속에 있는 백혈구의 한 종류로 면역을 담당하는 호중구는 보통 2,000~ 10,000 정도의 수치를 보여야 정상 수준인데 1,500 이하로 떨어지면 호중구 감소증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면역이 저하되면 외부 공격, 특히 세균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에 날 음식은 물론 날김치도 먹지 말고 위생에 각별히 주의를 기해야 한다.
채혈검사 결과 내 호중구 수치는 74. 당장에 입원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병원에 환자가 너무 많아서 병실 배정이 바로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응급실에 온 지 13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벤치를 벗어나 간이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그리고 22시간 뒤인 다음날 오후 2시가 되어서 병실을 배정받고 꼬박 하루 간의 병든 닭 생활을 끝냈다. 몸과 마음도 지치는 기나 긴 시간이었다. 나는 그나마 중간에 간이침대에서 잠이라도 잤지만 보호자로 왔던 엄마는 꼬박 하루를 뜬 눈으로 마음 졸이며 지샜다. 나보다 엄마가 더 아프게 될까 걱정이었다.
입원을 위해 코로나 검사를 하는데 코피가 났다. 항암 1차 만에 몸에 모든 점막이 처참히 무너져 버렸다. 입원 기간 동안 하루 세 번의 항생제와 한 번의 면역주사 투여를 통해 호중구 수치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두고 본다고 한다. 하루 한 번 채혈검사를 통해 염증수치가 내려가고 발열 증상이 없으면 퇴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나저나 항암치료 때문에 일주일 씩 입원하는 것도 시간이 너무 아까운데 곧바로 면역치료 때문에 입원해 있으려니 우울감이 심하게 몰려왔다.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지 멀쩡하고 정신 온전할 때 더 많은 일상을 누리고 추억을 쌓고 싶은데 이런저런 이유에서 입원으로 인간다운 삶이 모두 가로막히는 것 같아 속상했다.
면역이 사라진 틈을 타 기가 막히게 구내염이 찾아왔다. 평소에도 구내염이 잘 생겨서 웬만한 고통에는 익숙해져 있었는데(알보칠도 잘 참음) 이번 구내염은 차원이 달랐다. 발치하지 않은 오른쪽 아래 사랑니부터 목구멍까지 넓게 구내염이 번져 있었다. 왼쪽에 이어 곧바로 오른쪽 사랑니를 발치하지 않은 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 음식은 물론 물 삼키기도 어려웠고 양치는 더더욱 힘들었다. 면역이 정상수치에 올라오기 전에는 구내염 증상이 완화될 수가 없기 때문에 그저 진통제만 처방받았다. 나중엔 진통제도 별 소용이 없어서 입안을 일시적으로 마취시키는 약물로 가글을 하기도 했다.
응급실 내원 당시 호중구 수치 74
입원 1일 차 150
2일 차 501
3일 차 2,400
4일 만에 퇴원이 결정되었다.
보통 항암 1차 후에 면역 저하 현상이 거의 무조건 일어나며 2차부터는 괜찮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호중구 수치가 정상 범위로 돌아오자마자 구내염으로 퉁퉁 부은 입 안이 싹 가라앉았고 찢어진 항문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항암을 하면 인체의 신비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 많아진다. 호중구는 1,500 이하로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10,000 이상 너무 높아지는 것도 몸에 염증이 많다는 신호가 되어 좋지 못하다고 한다. 면역을 높이거나 줄이기 위해서는 식이나 운동으로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식이'나 '운동'이 얼마나 미미한 수준의 노력인지도 느끼게 되었다. 암을 이기기 위해서는 삼시세끼 마늘을 챙겨 먹는 것보다 항암제를 맞아야 하고 면역을 높이기 위해서는 잘 먹고 운동하는 것보다 면역 주사를 맞아야 한다. 우울감이 심해진 만큼 괜스레 생각과 마음가짐도 팍팍해진다. 내 몸 하나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싶었다.
2차 항암부터는 호중구가 잘 견뎌주었으면 하는 기대와 달리 3차 항암이 끝난 후로도 나는 계속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