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3일 동안 감감무소식이다. 항암 2일 차부터 소식이 없었으니 정확히는 5일 동안 무소식인 셈이다. 배는 계속 빵빵하게 차올랐다. 입의 쓴맛과 구역감은 숙취와 비슷해서 자꾸 얼큰한 음식이나 달고 신 불량식품 등 자극적인 먹거리만 찾게 되었다. 입술에 벌레 기어가는 느낌과 목구멍에 지렁이 한 마리 끼어있는 느낌을 없애기 위해선 무언가를 계속 입에 넣어 자극을 줘야 했다. 다행히 구토는 하지 않아서 매끼 밥은 잘 먹었는데 문제는 배출이 안 되는 것이었다. 항암을 하면 변비가 심해진다고 해서 병원에 있을 때도 미리 변비약을 처방받았지만 셋째 날부터는 변비약 특유의 걸쭉하고 단맛이 너무 역겨워 먹지를 못했다. 그게 탈이었는지 가스만 찰뿐 도무지 더부룩함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작정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그냥 앉아있다 보면 언젠간 나오겠지. 그렇게 30분, 한 시간이 지나고 1차 시도 실패. 2차 시도 역시 실패였다. 그래도 몇 번 화장실에 앉아있던 보람이 있었는지 그나마 배변감이 조금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음 시도에 확실히 마무리를 짓는 거야! 집 밖을 벗어나 열심히 걸어 다녔다. 한 시간쯤 걷고 다시 들어와 변기에 앉았다. 금방이라도 해결될 것 같은데 아무리 용을 써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포기하고 일어서는데 휴지에 피가 묻어난다. 생리가 시작된 줄 알았다. 출혈량이 꽤 되었기 때문에 바로 생리대를 착용했다. 세 번의 시도 끝에 얻은 배변감은 배변통으로 번졌다. 5일 간 쌓인 결과물(?)을 누군가가 절대 새어나가지 못하게 꼭꼭 틀어 잠가버린 기분이었다. 걷는 것도 힘들었다. 누워있어도 배가 아프고 밑이 빠질 것 같았다. 보다 못한 동생이 집 앞 편의점으로 가서 관장약을 사 왔다.
동생이 사 온 관장약을 먹고 신호가 오기를 기다리는 내내 침대에 옆으로 누워 끙끙댔다. 세상에 똥을 못싸는 것이 이렇게나 괴로운 일이었을 줄이야. 또 한 번의 '난생처음' 경험. 배에서 꾸르륵 요동치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화장실에 앉았다. 없는 기운을 쥐어 짜내어 한 번 크게 용을 쓰는데 '투둑!'하고 무언가 터지는 느낌과 드디어 해방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눈물도 터져 나왔다. 슬픔, 기쁨, 아픔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의미 없는 눈물. 손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뒤처리를 하고 일어서는 데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의 피가 고였다. 생리대를 갈고 식은땀과 떨리는 손발을 이끌고 나왔다. 또다시 침대에 옆으로 누워 눈을 감았다. 뱃속은 편안했지만 엉덩이와 밑이 빠질 듯 아팠다.
그 후로는 배변 활동이 원활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렇지 못한 5일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리해서 배변을 한 것이 뭔가 심히 잘못되었는지 출혈은 조금씩 계속되었고 소변 만으로도 밑이 아팠다. 방귀를 뀌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찔끔 날만큼 아팠다. 걸을 수도, 앉을 수도 없었다. 그저 옆으로 누워 끙끙 대는 것이 전부였다. 참다못해 병원 암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간호사와 연결이 되었다.
"제가 항암을 하고 집에 와서 볼일을 보는데 항문이 파열됐는지 너무 아프거든요. 병원 가서 치료받아도 되나요?"
"당연하죠. 그 부작용 관련 과나 병원으로 가서 치료받으셔도 돼요. 항문외과 가서 꼭 치료받으세요."
엄마 차에 겨우 올라앉아 등받이를 제일 뒤로 젖혀놓고 병원으로 향했다. 움푹 파인 맨홀과 과속 방지턱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이 시골 동네에서 용하기로 소문난 개인 의원이었다. 워낙 아기 때부터 다녔던 병원이라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바로 이곳으로 향했다. 원장님은 대충 사정을 듣고 원장실 간이침대에 속옷을 벗고 옆으로 돌아 누우라 한다. 통증이 심해서 수치심이고 뭐고 없었다. 항문 안에 길게 찢어진 상처가 있고 치핵도 나와 있다며 많이 아팠을 텐데 왜 이제 왔냐 하신다. 면봉으로 항문 주변과 안에 상처에 약을 바를 때는 비명을 고래고래 질렀다. 연고와 함께 먹는 항생제랑 진통제를 처방해 주겠다고 했는데 항암 중이라 다른 약을 먹어도 되는 게 맞는지 몰라 그냥 연고만 처방받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