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날은 정신력 싸움이었다. 3일 동안 맞은 약기운이 차곡차곡 잘 쌓였는지 일어나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목구멍부터 입안까지 가득 채우는 기분 나쁜 쓴맛이었다. 냉수 한 모금으로 구역감이 살짝 가라앉는 듯했지만 아침밥 앞에서 결국 두 번 헛구역질을 했다. 그래도 구토까지 가지 않은 것에 스스로 대견해했다.
지난밤 구토억제제 알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숙취에 세게 갇힌 것처럼 바닥이 빙글빙글 돌고 눈앞이 반짝거렸다. 구역감은 가만히 누워 있으면 잠잠해졌기 때문에 따로 부작용 약을 먹지 않고 정신이 들 때까진 누워있었다. 하루 종일 졸리고 기운이 없는 게 구토억제제 탓이 아닌 항암제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오전 11시 마지막 날 이포스파마이드 항암이 시작되었다. 항암제의 빠른 배출을 위해 수액을 2L나 맞았는데 그게 배출이 되지 않고 그대로 쌓여 몸무게가 정확히 2kg이나 늘었다. 결국 이뇨주사를 처방받았는데 주사기 속 적은 양의 이뇨제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 1분에 한 번씩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데 아주 죽을 맛이었다. 몸에 기운은 없고 일어서려니 속이 울렁거리고 그럼에도 화장실은 가야겠고 소변을 아무리 봐도 방광에 저릿한 배뇨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환자복이 식은땀으로 금세 축축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간밤에 수액을 맞은 왼손의 손등이 팔뚝까지 퉁퉁 부어서 오른쪽 손등으로 다시 주사자리를 잡아야 했다. 항암 1차에만 총 여섯 번의 주사 자리를 바꾸었다. 이러다가 케모포트 심는다고 할까 봐 무섭다. 2차부터는 혈관이 제발 말썽을 부리지 않고 잘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1차 항암엔 총 6일을 입원했었다. 입원 첫날 CT검사, 2~5일 나흘간 항암치료, 마지막 6일째 되는 날엔 면역주사를 맞고 퇴원했다. 여전히 머리는 핑핑 돌고 속이 울렁거렸지만 '퇴원' 한마디가 가장 큰 부작용 방지약이라도 된 듯 샤워를 하고 짐 정리를 하며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좀 전에 병원에 도착해서 먼저 수납을 하고 있던 엄마를 만나러 1층 로비로 갔다. 입원했던 날의 모습과 똑같이 짐가방을 등에 매고 씩씩하게 걸어오는 나를 보며 엄마는 안도하는 듯 보였다. 집 가는 길에 운전도 내가 하겠다고 했다.
"괜찮아?"
"어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다행이네 고생했어."
나의 허세에 엄마는 또 한 번 안도했다.
"난 네가 파김치 돼서 나올 줄 알고..."
"내가 맷집이 좋은가 봐."
시동을 걸고 블루투스를 연결한 뒤 다시 노래를 틀었다.
[꽃가루를 날려, 폭죽을 더 그게 터뜨려]
언제부턴가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은 나의 퇴원곡으로 자리 잡았고 경쾌한 음악와 가사는 퇴원의 해방감을 한껏 누리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두려웠지만 궁금하기도, 또 신기하기도 했던 1차 항암이 이렇게 끝났다. 이렇게 다섯 번만 더 하면 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항암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엄마에게 말했듯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100% 허세는 아니었다. 입 안에 쓴 맛과 구역감은 차차 나아지겠지. 그리고 곧 머리도 빠지기 시작하겠지. 달리는 차의 창문을 열었다. 쌀쌀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었다. 집에 오는 내내 이제 곧 아쉬워질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