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저만해서 큰 병원에 지금 가봐야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사무실로 올 수 있었다. 입원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수술 및 검사 일정 등 특이사항이 생길 때마다 사무실에 연락해서 상황을 공유했다. 하지만 역시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고 암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건 힘든 일이었다. 사업 계획이 세워지는 연초는 그 어느 때보다 바빴지만 사무실에서는 그저 내 건강 회복에만 집중하라며 업무 연락을 일절 하지 않았고 입원 기간 내내 병가 처리를 해주었다. 심지어 열명 남짓한 직원들끼리 십시일반 치료비도 모아 후원을 해주었다. 꽤 큰 금액이 담긴 봉투와 빳빳하게 코팅된 롤링페이퍼를 받아 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빨리 털고 일어나 사무실에 복귀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것이라 다짐했다.
퇴원 후 이틀 뒤 사무실을 찾아갔다. 긴 병원 생활로 햇빛을 잘 보지 못해 허옇게 변한 얼굴과 15kg 정도 살이 빠진 몸을 이끌고 찾아가니 직장 동료들 모두 조금은 놀란 표정이었다. 큰 수술을 이겨내느라 고생했다며 아직 병가가 여유롭게 남았으니 컨디션 회복을 위해 충분히 쉬고 오라는 배려까지 받았다. 먼저 제안하지 않아도 알아서 뭐든 다 챙겨주려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 이제 식사도 잘 챙기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체력을 좀 길러볼 예정이라고 했다. 다음 주에 있을 혈액종양내과 외래를 통해 이후 치료 계획에 따라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며 사무실을 나섰다.
항암 계획이 세워지고 다시 사무실을 찾아가서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출근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가발도 쓰고 부작용 약도 잘 챙겨 먹으면서 버텨보겠다고 얘기했다. 아낌없이 호의를 베풀어준 직장에 내가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출근을 하면서 보통의 일상을 이어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는 오히려 내가 상처받을 것을 걱정했다. 아무리 가발과 모자로 숨기고 출근을 한다고 해도 사무실로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어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으며 힘든 항암 치료를 받으며 업무 스트레스를 어떻게 버티겠냐는 뜻이었다. 차라리 6개월 간 휴직 처리를 해줄 테니 그동안 항암 치료에 전념한 후 푹 쉬고 건강을 찾아 다시 돌아오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었다. 계속되는 배려에 눈물이 났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퇴사였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회사 생활을 이어가자니 내 모습을 보고 괜히 위축되어 신경 쓸게 분명한 직원들이 더 걱정이 되었다. 나로 인해 사무실 분위기가 어두워지게 되는 건 싫었다. 또한 여태 자리를 비운 것도 마음 쓰이는데 다시 6개월 간 길게 공백을 두자니 나의 업무를 도맡아 할 직장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대체 인력을 채용한다고 해도 업무 특성상 주요 업무는 팀원들에게 돌아갈 것이고 한 달 여간의 채용 기간을 소모하여 6개월 대체 인력을 채용을 할지도 의문이었다. 어쨌든 너무 아쉽지만 퇴사를 결정하고 다시 사무실을 찾았다.
내가 참 사랑했던 나의 일터였다. 24살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첫 직장 생활을 한 지 4년, 상처만 남은 첫출발을 퇴사로 마무리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1년 반 동안 방황을 했었다. 다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고민 속에 무작정 여행만 다니다가 선물 같이 다가온 두 번째 직장. 첫 직장에 비해 업무도 다채롭게 재미있었고 직장 상사가 직원들의 지붕이 되어주는 듯한 든든함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업무에 대해서는 간혹 엄하긴 했지만)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이곳에서 팀장으로 승진이라는 것도 해보고 팀원을 이끌어 나가보기도 하고 팀 업무를 정리해보기도 하고 나 스스로 무언갈 이루어 나간다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날개를 다는 건가 싶던 순간에 암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에 가로막혀 그토록 사랑하던 직장생활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사직서를 쓰기 위해 사무실로 가는 출근길은 아름다웠다. 아무리 깊은 애정을 갖고 있던 직장이어도 출근길은 항상 싫은 법이었는데 날씨도 아름다웠고 갖춰 입은 정장에 뿌린 향수도 향기로웠다. 평소 출근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화장도 공들여 보았다. 출근길이 우중충한 빗길이었어도 나는 상관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직원들에게 짧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센터장님, 국장님, 팀장님과 점심 식사를 했다. 여느 때처럼 시답잖은 대화와 가끔의 침묵 속에 점심 식사를 했고 업무가 시작되는 오후 1시에 맞춰 모두 사무실로,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4년을 집보다 더 오랜 시간 있던 곳인데 A4용지 크기의 종이 가방에 달랑 담기는 짐이 전부였다. 집 주차장에 세워 시동을 꺼놓고 종이 가방 속을 뒤적거렸다. 딱딱한 사원증이 그립감 좋게 손안에 잡힌다. 4년 전의 내 모습이 담긴 사진과 회사명, 직책 그리고 내 이름을 눈으로 꾹꾹 눌러가며 읽어본다. 코가 시큰해지고 입술과 어금니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사원증이 점점 뿌옇게 변해갔다. 눈을 더 크게 부릅뜨고 다시 한번 꾹꾹 눌러 읽어본다. 그러다 사원증을 품에 안고 울었다.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는 목놓아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