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졸업

by 랑랑

혈관이 결국엔 말썽을 일으켜 PICC 시술을 받았다. 매번 잘 잡히지 않는 주사 자리에 나도 스트레스였지만 기본 두세 번은 찔러야 하는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에게 주사 연결은 '주사팀 간호사 호출'이 기본값으로 따라오게 되었다. 제대로 연결되었다고 생각했던 자리도 그만 항암제가 새어버려 왼팔에만 혈관염이 두 번 생겼다. 그중에 왼쪽 손등의 혈관염 자리는 2년이 지난 지금도 까맣게 부은 채로 굳어있다.


그럼에도 교수님은 케모포트 시술을 권하지 않았다. 이제 3번의 항암만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아가씨의 몸에 상처 나는 것을 나 자신보다 더 싫어하셨다. 케모포트와 비슷하지만 팔뚝에서부터 우심방 근처에 이르는 정맥관을 삽입하는 시술인 PICC(말초삽입형 중심정맥카테터)를 권유했다. 또다시 혈관조영실.. 정맥관이 삽입되는 오른쪽 팔뚝에 국소마취 주사를 놓고 팔뚝을 통해 어깨, 가슴까지 쑥쑥 들어오는 기분 나쁜 이물감이 들었다. 10분 정도 짧은 시술이 끝나고 팔뚝을 보니 줄이 두 개가 달랑달랑 달려있었다.


PICC 시술은 신세계 그 자체였다. 항암 할 때 매번 주사를 잡지 않아도 되고 항암제가 새어 나올까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었다. 무엇보다 두 손이 자유로웠던 것이 가장 좋았다. 하지만 그것은 항암 하는 순간에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치료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음 항암 때까지는 불편함 속에 살아야 했다. PICC가 들어가 있는 팔은 제대로 펴지지 않아 항상 구부린 상태로 다녀야 했고 무거운 물건은 들 수 없었다. 또한 팔뚝 밖으로 나와있는 줄을 통해 세균 감염의 위험이 있어 샤워나 통목욕도 할 수 없었고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내원해서 소독과 헤파린 용액을 교체해야 했다. 하루는 57km 거리의 본원에 가는 것이 너무 귀찮아서 의뢰서를 요청해 동네 병원으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PICC 소독과 헤파린을 교체하는 과정에 그만 관이 찢어져버려 그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급하게 본원 응급실로 달려가 기존에 PICC를 제거하고 새로 교체 시술을 받아야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6차 항암의 마지막 이포스파마이드 투약이 끝나고 기념으로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간호사 선생님이 빈 약병을 보기 좋게 세팅해 두고 라텍스 장갑 낀 손을 펼쳐 보이며 '짠~'을 외쳤다. 고작 6번의 항암이었지만 한 회당 4일의 항암약을 맞아야 했으니 총 24일 간 약에 절여져 있던 셈이다. 면역 저하로 응급실을 세 번이나(PICC 교체까지 4번) 드나들고 매번 달라지는 부작용에 전전긍긍하고 까맣게 죽어가는 손톱과 얼굴색에 좌절도 하다 보니 4개월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PICC 제거는 시술할 때와 마찬가지로 혈관조영실에서 할 줄 알았는데 그냥 병실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 쑤욱 제거되었다. 어깨와 팔뚝을 타고 흐르는 줄의 느낌이 불쾌하면서도 후련했다. 항암이 끝났으니 이제는 열심히 추적 검사를 하며 재발하지 않게 관리하는 것만 남았다. 해방감에 기뻐 날뛰고 싶었지만 같은 병실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꾹 참았다. 유독 잘 챙겨주신 간호조무사 선생님이 있었는데 조용히 다가와서는 아프지 말고 다신 병원에 발도 들이지 말라는 인사를 건네주었다. 그 말이 얼마나 감사한지.


꼬박 한 달 반을 PICC 때문에 굽은 팔로 생활했더니 오른팔이 일자로 쭉 펴지는 데엔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그 독하다는 1세대 항암제를 두 개나 맞았으니 앞으로 사는 동안엔 암이라는 건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듯 다시 평범하고 지겹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2022.02.21.~ 2022.06.22. 아드리아마이신+이포스파마이드(a.k.a AI항암) 6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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