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구미는...

by 랜덤초이

요즘 젊은 세대들이 즐겨 쓰는 표현 중 '추구미'라는 단어를 종종 보게 된다.


문장 속의 맥락으로 대강의 의미를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이를 소재로 글을 적으려니 정확한 뜻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추구미'는 '목적을 이룰 때까지 뒤쫓아 구하다'라는 뜻을 가진 '추구(追求)'

그리고, '아름다움'이란 뜻의 한자 '미(美)'를 합친 단어이다.

즉, 자신이 갖고 싶고 닮고 싶은 목표가 되는 모습 or 이미지 or 분위기 같은 것을 얘기할 때 쓰는 신조어이다.


정확히 반대의 뜻은 아니지만 추구미와 대비되는 용어로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정도의 목표를 얘기하는 '도달가능미(到達可能美)'나

현재 가지고 있는 수준을 얘기하는 '보유미(保有美)'가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단어의 사용 예시로는 '너의 추구미는 정우성이라지만 도달가능미는 곽범이다'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요즘은 과거와 달리 한자(漢字) 교육이 공교육의 필수과목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젠지세대가 한자어(漢字語)를 조합해 신조어를 만들어 쓴다는 점은 꽤 독특하다고 생각되었다.


어쩌면 추구미와 비슷한 쓰임새로 '롤모델(Role model)'이란 익숙한 단어가 있는데

왜 갑자기 '추구미'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지도 궁금했다.

(굳이 예상해 보자면 추구미는 롤모델에 비해 대상의 외적인 아름다움에만 포커스 된 느낌이랄까?)




여하튼 '추구미'와 '도달가능미'라는 표현을 접하면서 나는 두 용어의 관계가 마치 오래전 윤리 시간에 배웠던 용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각 개인이 구성원으로 속해 있는 특정한 소속집단(所屬集團, membership group)을 갖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개인이 어떤 행동이나 판단을 할 때 기준으로 삼는 준거 집단(準據集團, reference group)을 가진다.


'소속집단'은 실제로 개인이 그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곳을 의미하니 마치 '도달가능미≒보유미'와 유사해 보이고, '준거집단'은 개인의 소속 여부와 관계없이 그 사람이 행위나 규범의 표준으로 삼는 대상이 되는 집단이니 어찌 보면 '추구미'와 비슷한 맥락으로 비교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학교 시험에서도 종종 다뤄지는 중요도 높은 내용이었고, 시험문제로 나온 유형은 대략 두 가지였다.

만약 주관식 문제로 나올 경우, 두 집단 중 하나의 정의를 서술한 뒤 해당 정의가 뜻하는 용어를 괄호 안에 정확히 적으라는 식이었고

객관식 문제로 나올 경우, '소속 집단준거 집단에 대한 아래의 설명 중 옳지 않은 것은?'을 묻는 식이었다.

보통 옳지 않은 설명의 예시로는 '특정 개인의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은 반드시 일치한다.' 같은 내용이 제시되곤 했었다.


시험문제로 자주 접하다 보니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은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다'라는 상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모두’, ‘반드시’ 같은 부사가 들어가면 틀린 예시라는 찍기 tip도 배웠다.)


그리고 더 심화된 문제로는 '개인의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이 불일치한 경우의 영향'을 묻는 경우도 있었다.


윤리선생님은 두 사회집단이 불일치할 때의 긍정적 효과를 설명해 주셨는데, 그 예시는 대강 이런 식이었다.


"너희들의 소속집단은 고등학교야."

"근데 너희들 중 SKY대학 진학을 바라는 녀석들의 준거집단은 SKY대학이야"

"개인이 속한 두 집단은 서로 다르지만 준거집단에 속하려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지"

"그러니까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의 불일치가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도 한다 이거야"


수업을 잘 기억하던 한 친구는 수십 년이 지나서도 당시 배운 지식을 응용하기도 했다.

"나의 소속집단은 유부남이지만, 오늘 준거집단은 총각이야"라고... (농담이었다...)


'추구미' 역시 개인이 스스로의 아름다움(美, 이미지)을 만들어 갈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니,

준거집단의 경우와 흡사한 긍정적 기능을 할 수도 있다.

추구(追求)의 대상이건 아니면 준거(準據)의 기준이건 사람들이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마음속에 더 바람직한 상태를 그려서 그 방향을 쫓는 것은 분명 순기능이 있을 것이다.


늘 향상심(向上心)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런 개인과 사회는 지금보다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클 테니 말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가 그러하듯 사람들이 원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목표에 다다르는 것은 아니다.


추구미가 '카리나'라고 해서 '카리나'와 비슷한 수준까지 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고

기업 신입사원들의 준거집단이 경영진이라고 해서 노력하는 자들 모두가 경영진이 될 수도 없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 자신의 경험이 쌓이고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다 보면

과거에 배운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의 불일치가 만드는 긍정적 효과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많은 노력을 하면서도 원하는 결과에 다다르지 못한 사람들은

그 과정 속에서 과연 스스로가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할까라는 의문이 그것이다.


어쩌면 '추구미'니 '준거집단'이니 하는 개념은 사람들의 경쟁을 부추기고

그 과정의 노력에서 얻어지는 결과를 승자가 독식하기 위한 기믹(gimmick)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SNS 같은 개인 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의 포장된 인생에 과잉 노출되는 사회에서는

나의 삶을 늘 남들과 비교하게 되면서 '추구'와 '준거'의 대상이 급격히 확장되는 기분이다.


누군가는 남과의 비교를 통해 향상심을 갖고 긍정적 결과도 얻겠지만

반대로 보다 훨씬 다수의 사람들은 종내 원하는 결과에 다다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 과정에서 남에게 맞춘 기준으로 자신의 현실을 판단해서 실망하고 자격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고, 심한 경우 자신의 현실이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다른 사람이 가진 것에 대해 더 큰 기대와 환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건 심리적인 이유일 수도 있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남이 가진 것에는 보다 관대한 평가를 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혹시 아는가? 내가 추구하고 내가 속하고 싶어 하는 선망의 대상 역시도 다른 누군가를 추구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의 끝에

남에게 관심 갖고 남을 생각하는 시간 중, 조금이라도 스스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 주변의 소속 집단에 시간을 들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생은 어차피 생각한 대로 되지도 맘먹은 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는 게 세상의 이치이다.

그런데도 항상 남과 비교하여 나의 존재를 평가하는 건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었다.


그렇게 피곤하게 이미 반세기를 살아왔으니 이제부터는 온전히 나에게로 관점을 옮겨보면 어떨까.


말하자면 나의 추구미는 바로 나이고,

나의 준거집단은 지금 내가 소속한 바로 이곳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다가도 훗날 이게 아니었네 하고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경험해 볼 수 있을 테니

충분히 시도해 볼 일인 듯싶다.

일단 TV, SNS부터 줄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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