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끼리 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우정 표현 방법은 바로 여행이다. 여행을 가려면 여행 약속을 잡아야 한다. 모임에서 스치는 “야, 우리 여행이나 갔다 오자!”가 일주일 뒤 여러 사람의 고뇌를 낳는다.
친구들끼리 가는 여행. 이것만큼 발걸음이 가볍고 신나는 일이 있을까.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과 함께, 친구들과의 보장된 즐거운 시간, 또 맛있는 먹거리,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시원한 풍경도 빠질 수 없다. 그러나, 그 행복한 시간들을 기약하는 여행 약속은 반목과 배신의 정수이다.
단체 카톡방에서는 미리 잡았던 약속이나 일정을 기억하지 못했다고 뉘우치며 뭇매 맞는 풍경, 돈이 없다고 다음 달에 가자고 산통 깨는 풍경, 여행을 약속한 다음날부터 묵언수행에 빠져 감감무소식인 풍경, 이럴 거면 가지 말자며 애초에 그럴 것 같았다고 당최 왜 화나 있는지 모르겠는 풍경들이 펼쳐진다.
특히나 연말, 연시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휴대전화 달력 속 빼곡히 여행 약속이 잡혀 있다. 이쯤 되면 내가 여행을 가는지 여행이 나를 데려가는 건지 모르게 된다. 중간중간 어느 여행이 가장 기대되고 어느 여행이 가장 불필요한지 내심 골라본다. 그러나 이내 뭇매 맞을 것이 두려워 입은 닫고 통장 잔고만 뒤적여 본다.
‘아!, 다음부터는 여행 가자고 할 때 못 간다고 해야지!’. 곧 드는 다짐이다. 물론 얼마 뒤 모임에 가면 금세 분위기에 편승해 여행을 승낙하는 자신을 목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