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직전, 한 북카페를 눈여겨보았었다.
주말마다 책 모임이나 문화행사가 열리는 문화공간 겸, 바닷가 근처 북카페였다.
그렇게 이름만 알던 북카페에서 조합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주말에 근무하고, 북카페에서 진행하는 문화행사에 참여하거나 행사를 기획할 수 있다는 광고였다. 물론 참여에 돈이 들었다.
두 번쯤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그러다 2021년 12월 다시 도전했고,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일종의 면접 같은 것이었다. 마스크를 쓴 한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요리조리 알아보는 것 같았고, 시간은 짧았다. 나 이외에도 30분 단위로 면접생들이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제외하고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조합원이 되었고, 새로 조합원이 된 사람들과 오리엔테이션을 가졌다. 나를 제외하고는 20대 중후반의 사람이었다. 나의 나이란... 다른 조합원의 이모뻘이 되는 그런 것이었다.
차마 마스크를 벗기가 어려웠다. 다들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로 보였다. 오리엔테이션을 몇 시간 마치고 다음에 근무를 하는 시간표를 보니, 왔던 사람들의 반절은 사라진 것 같았다.
12만 원이라는 회비를 내고 카페 근무를 시작했다. 북카페에 근무한다는 설렘, 커피를 만들어보는 긴장감, 아이패드 포스 기를 미숙하게 사용하는 어리바리한 모습...
특히, 첫날 아이패드 포스기에서 카드 결제를 못하고, 원두를 부어야 할 자리에 미숫가루를 붓는 대참사를 일으켰다.
온몸이 굳고, 눈앞이 흐려지던 그 순간에 북카페 대표는 말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거예요."
그 말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멈춰버린 심장 박동이 다시 뛰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모임을 기획하려는 마음은 약해지고, 몇 번의 이벤트에는 참여가 망설여졌다. 한 번은 시간이 맞지 않았고, 한 번은 '위스키 강좌'였는데... 딱 봐도 이건 '비슷한 나이의 사교 모임'이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왜 북카페 대표가 몇 번이나 망설였는지 알만한 '나의 묵직한 나이'는... 참여하기에 문제가 있었다. 물론 이렇게 나이가 있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리는 나'를 발견하고 싶었다.
스트레스는 받겠지만 그만큼 배우는 것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한 모임을 기획하려다 보니, 미리 들어온 사람의 텃세도 있었고, 아이디어를 몇 번 내보니 '나이 많은 사람이 이런 것도 알다니'와 같은 당황스러운 반응도 있었다.
물론 모임기획은 실패했다. 시 예산을 받으려고 응모했지만 떨어졌고, 셀프 기획도 이런저런 이유로 열리지 않았다. 한 마디로 어디에도 끼기 어려운 애물단지 같은 존재였다.
북카페 근무는 생각만큼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손님이 오면 주문한 음료를 만든다고 초비상이었고, 손님이 없을 때는 무료했다. 읽을 책을 가져왔지만 여기서는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님으로 왔을 때는 낭만적이었던 공간인데, 직원으로 일해보니 CCTV와 반지하의 꽉 막힌 느낌과 적막함이 감돌았다. 결국 몇 달 만에 그만두었다.
카페를 나오던 저녁에는 바닷가를 한 시간을 걸었다. 낭만보다는 허무했고, 붐비는 바닷가에서 너무나도 쓸쓸했다. 다녀오고 나면 몇 시간이 먹먹했다.
모두가 웃고 있는 해변가에서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느낌이란... 그렇게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늦은 나이라서였을까?
아니면 나 혼자서만 외롭게 남겨진 낯선 도시라는 이유였을까?
여러모로 쓸쓸한 바닷가였다.
누군가에게 가장 낭만적인 장소가 누군가에게는 가장 쓸쓸한 장소였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