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 8월 3일 (토)
동유럽여행 7일 차 독일을 떠나 체코 프라하로 간다. 드레스덴 중앙역에서 오전 08시 10분 기차다.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고 바로 체크아웃을 하였다. 오늘은 날씨가 맑다. 인적 드문 아침 드레스덴의 프라하 거리를 지나 진짜 프라하로 간다. 오늘은 가방을 다 잘 챙겼겠지? 그래도 여기는 역에서 호텔이랑 가까워서 여차하면 뛰어갔다 올 수 있다.
우리의 기차는 IC2173으로 이번에도 1등석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주었다. 이번에는 1등석을 타볼 수 있겠지? 역에서 플랫폼을 확인하고 열차를 기다렸지만 역시나 연착이다. 그것도 50분이나. 그래도 철도 파업으로 운행 중지 되거나 차량이 취소되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늦게 와도 목적지에 가기면 하면 다 괜찮다. 1등석은 널찍하니 좋다. 한 객차에 좌석이 9개 정도 있고 우등버스처럼 좌석도 넓고 편안하면서 가운데 테이블도 있다. 콘센트도 있어 핸드폰 충전도 할 수 있다. 옆 객차에는 레스토랑도 있다. 우리 객차 승객만 이용할 것 같은 화장실도 엄청 넓고 쾌적하였다.
우리 자리 옆에 독일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베를린에서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역시나 영어를 잘한다. 물론 독일어와 영어의 어원과 어순이 같아 배우기가 쉽다 하여도 다들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지 독일의 영어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우리는 프라하에 가며 그곳에 3~4일 정도 머무를 거라 하니 딱 적당하단다. 자기도 프라하 여행을 해 본 적 있다면서. 전에도 느낀 거지만 유럽은 나라가 달라도 한 기차를 타고 자기 나라처럼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또 바깥 구경을 하면서 가다 보니 프라하에 금방 도착한 것 같다.
유시민의 <유럽도시기행 2>에서 읽은 내용이다. 우리가 가는 이 길을 따라 수많은 독일 유대인들이 프라하로 피신했다고 한다. 나치 군대도 그 길을 따라 보헤미아로 들어가 그들을 학살했고 전쟁 막바지 독일군이 퇴각할 때 체코 사람들은 300만 명의 수데텐란트 독일인을 강제 추방했으며 1989년에는 특별열차가 동베를린 체코대사관에 들어간 동독 시민들을 싣고 간 길이라고 한다. 역사 속 그 길을 우리도 지나고 있다.
프라하 중앙역에 내려 호텔까지는 걸어가도 될 것 같아 캐리어를 끌고 갔다. 10분 정도 걸으면 될 것 같았는데, 약간의 오르막과 한여름의 태양이 있어 힘이 들었다. 공사중인 프라하 국립박물관을 바라보며 바츨라프 광장을 지나 조금 더 가니 호텔이 보였다. 우리 호텔은 10년 전 파리에서 묶었던 호텔처럼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부띠끄호텔이라 그런지 파리에 온 듯한 느낌이다. 아직 체크인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짐은 호텔에 보관하고 외출하고 오기로 했다. 프라하 호텔리어도 어쩜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지, 부럽다.
지현언니가 준비한 프라하의 첫 일정은 토요일에만 열리는 파머스 마켓이다. 영어를 잘하는 로비 직원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 요청하여 볼트 택시를 타고 마켓으로 갔다.
프라하에는 신선한 제철과일과 채소, 치즈, 빵, 수공예품 등을 파는 파머스 마켓이 몇 개가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간 곳은 프라하를 가로지르는 블타바강변에 매주 토요일에만 열리는 마켓이다. 지현언니가 여행계획을 세울 때 남편이 적극 추천한 곳이라 한다. 우리가 도착한 날이 마침 토요일이라 가보기로 하였다. 규모는 크지 않은데,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특히 다양한 현지 먹거리가 많아 여기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먼저 줄 서서 먹는 바질토스트를 맛보았다. 바게트 빵 위에 치즈와 튀긴 마늘, 파와 올리브를 토핑으로 올려 먹는다. 이거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른데, 윤지와 지현언니는 닭꼬치와 닭다리 튀김을 먹은 후 수제햄버거도 하나씩 먹었다. 물론 나도 한 입씩 맛보긴 했다. 수제햄버거집도 번호표를 받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가격은 저렴한데 엄청 맛있었다. 그늘이 없어 좀 힘들긴 했지만.
강을 따라 구시가지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이라스쿠프 다리 바로 앞에 댄싱하우스라는 건물이 있다. 캐나다 출신 미국인 건축가 게리와 크로아티아 출신 체코 건축가 밀루니치가 함께 설계해 1996년에 준공했다고 한다. 이름처럼 진짜 원피스를 입은 허리 잘록한 여자와 그 옆의 남자가 서로 마주 보고 춤을 추는 듯하다. 건축 분야도 잘 모르지만 저렇게 곡선으로 휜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건물 구경을 마치고 또다시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슬슬 지쳐간다. 휴식이 필요할 즈음 레기 다리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잠시 쉬었다.
저 멀리 카렐교가 보인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인 카렐 4세의 명으로 1357년에 건설하여 1402년에 완공되었다. 1841년까지 프라하 구시가지와 프라하성 일대를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였다. 다리 앞 교탑은 지어졌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 오래돼 보였다. 입장료를 내고 옥상에 올라 카렐교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해질 무렵 예쁜 다리의 모습을 찍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설 자리가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다리 위에는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내일 프라하성을 갔다 오는 길에 다리를 건널 예정이라 오늘은 잠시 미루었는데, 지현언니는 엄청 기대에 부풀어 가보고 온다 하여 남은 우리는 카렐 4세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잠시 기다렸다.
구시가지 광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천문시계와 틴성당 가는 길에 체코의 명물, 굴뚝빵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여기는 빵에 아이스크림을 올려주었다. 이건 먹어줘야지. 두 개 사서 넷이 나눠 먹었다. 달달하니 맛있었지만 이 많은 칼로리를 어쩐다?
틴 성당 가기 전에 옛 시청사 건물에 시계탑이 있다. 이 시계탑에 올라가서 프라하 시내를 전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탑 전면에 있는 천문시계를 보러 온다. 마침 시계가 움직일 시간이 되어 가니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렸다. 시계 장치는 세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천문 눈금판으로, 해와 달의 위치와 다양한 천문 정보들을 표시한다. 두 번째는 '사도들의 행진'으로, 매 시간마다 해골이 줄을 당기고, 모래시계가 뒤집히고, 예수의 열두 제자가 지나가고, 닭이 우는 등 여러 움직이는 조각품들이 나타난다. 세 번째는 달력 눈금판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데, 특별하다. 이 1분 남짓 시간 동안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사진을 찍으며 구경했다. 혹시나 소매치기가 있을까 가방은 앞으로 매고.
시계의 알림이 끝나니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론가 자신의 길을 떠나 흩어졌다. 우리는 구시가 광장 옆에 있는 틴 성당으로 향했다. 외관은 고딕 양식이고 80m나 되는 -아담과 이브라는 이름이 붙은- 두 개의 첨탑이 구시가 어디에서나 보여 금방 찾을 수 있었는데,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뒤로 돌아가면 있으려나 한 바퀴 돌았는데도 못 찾겠다. 그러다 레스토랑 건물과 국립미술관이 있는 궁전 사이 골목 안쪽에 입구가 있었다. 성당 주변에는 옛날에도 있었을 것 같은 집들이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입구 찾기가 어려웠나 보다. 마침 성당 개방 시간이어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내부는 바로크 스타일로 엄청 화려하다. 옛날 왕실의 영묘로 쓰인 성당이라 왕족과 대주교의 관이 있다. 특이한 건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의 관도 있다고 한다. 성당 안은 왠지 모르게 엄숙하고 숙연해진다.
틴 성당의 공식 명칭은 틴 앞의 성모교회다. 틴은 체코말로 '담을 두른 공간'으로 영어 타운과 같은 뜻이라고 한다. 예전 틴 마당은 시장이었다. 11세기에는 광장 인근 틴 안뜰로 오는 외국 상인들을 위래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가 있었는데, 이후 틴 성당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시커멓게 풍화한 외벽이 틴 성당의 오래된 역사를 보여주는 듯하다. 보헤미아가 수많은 전쟁에 휘말렸는데도 프라하는 참화를 피해 구시가의 중세 건축물과 신시가의 바로크 스타일 집들이 파괴되지 않고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프라하에 관광객이 많은가 보다.
틴성당을 나오면 광장에 있는 얀 후스의 동상을 볼 수 있다. 가톨릭 사제 얀 후스는 종교개혁가로 대중 앞에서 라틴어가 아닌 체코어로 설교를 하여 교황청의 미움을 받았다. 그가 죽은 후 보헤미아에 '후스파'라는 정치결사가 출현하였고 이후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 동상을 볼 때는 그냥 얀 후스의 동상인가 보다 하고 대충 봤는데, 책을 찾아보니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모든 역사를 다 알 순 없지만, 얀 후스 이야기를 읽고 얼마못가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이 순간 프라하 구시가 광장에 있는 얀 후스의 동상을 보고 그 역사를 찾아보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기록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화약탑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화약탑은 공사 중으로 외벽을 막아놓아 건물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화약탑은 15세기 후반 시의회 귀족들이 보헤미아왕 블라디슬라프 2세에게 선물한 의전용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17세기에 잠시 군용 탄약고로 사용되어 화약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틴성당처럼 시커멓게 변한 외벽이 오래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오늘은 프라하 첫날이라 이 정도로 돌아보고 바츨라프 광장 근처 호텔로 돌아갔다. 이 부근을 프라하의 신시가라고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신시가와는 달리 생긴 지 600년이 넘었다. 신시가 호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 먹을 식당을 검색해 보았다.
근처 마음에 드는 식당을 골라 갔다. 식당 안을 지나 안쪽으로 가니 중정처럼 보이는 정원에 야외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다. 거기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였다. 음식도 맛있고 가격도 괜찮다. 생맥주가 맛있었다. 체코 역시 맥주의 고장인 건 확실하다.
식사를 마치고 접시가 비워졌을 무렵 웨이터가 와서 식사를 마쳤나 물으며 접시를 치우려고 하였다. 처음에 나는 다 먹었으면 이제 나가라는 뜻인가 해서 "식사 아직 안 끝났어요."라고 말했다. 조금 있으니 다시 와서 또 물어보았다. 우리는 맥주를 더 마시려고 하나더 시켰더니 접시를 치워도 되냐 또 물었다. 빨리 가라는 뜻이 아니라 여기서는 식사가 끝났으면 접시를 치워주는 것이 관례인가보다. (이 식당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그랬다.)
화장실 걱정 없이 맥주를 즐기는 즐거운 저녁 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