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거야. 도와주지 마

독일살이 5년의 기록

by 알레스구트

내가 다시 애기가 되는게 좋아?


아니?! 다시 애기가 되다니!!!

안될 말이지! 안되고 말고!


그럼 도와주지 마, 혼자 할 수 있어!


하나부터 열까지

그냥 보고 있자니 매번 시원찮다.


그래 뱃속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나.

자꾸 하다보면 느는거지.


이닦기,

세수하기,

손씻기,

밥먹기,

뒷처리...


결국 언젠가 다 스스로 해야할 일이잖나.


그걸 만4살, 6살이 완벽하게 하길

기대하는게 무리지.


답답하고 시원찮아도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매번 다짐해도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결국 아이들이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육아의 참 목적이지.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주면서.




내가 보고 느낀 독일 엄마들은

좀 더 어릴때부터도

아이들을 기다려주고 존중해주는 것 같다.


또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아이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묵살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상황을 차분히 설명해주고

듣고 또 조용히 기다려준다.


그럴 때면 아이를 정말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는구나 하는 게 느껴진다.

네가 알아서 뭐하냐며

아이를 다그치던 스스로를

반성도 하게 되고 말이다.


반복해서 알려준다는 것,

아이의 의사을 존중해주고 경청해주는 것.

그리고 기다려주는 것.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아이가 성숙된 자아로 성장해가는

중요한 과정인 것 같다.


지금 당장 깨끗하고 단정하게

옷매무새를 만져주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서툴지만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일 것이다.




어느 날은 유치원에서 아주 어린 아이가

엄마의 도움 없이

야무지게 스스로 척척 옷을 벗고 정리하고,

신발을 벗고 신발장에 넣고

실내화를 반대로 신고

얼굴에 사뭇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모습으로

제 반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뭐 하나 깔끔하고 반듯하게 한 건 아니지만

그 아이는 아마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에

뿌듯했던 모양이다.

그 아이의 엄마도 아이에게 잘했다며

그냥 쿨하게 넘어갔다.


그래, 뭐 아이가 신발을 좀 이상하게 신어도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고

다음번엔 좀 더 잘 신는 법을 배우겠지.


유치원에서도 보면,

선생님 한 마디에 모든 아이들이

당연한 듯 놀던 장난감을 스스로 치운다.


물론 이게 하루 아침에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다 놀았으면 직접 치워야 하는 규칙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준다.


그래서인지 유치원의 아이들은 비교적 규율을 잘 지키고,

스스로 하는 것에 익숙해보인다.


집에서는 말도 안듣는 우리 애들조차 그 곳에선

아주 야무지게 스스로 하는 낯선 모습이다.


답답하고, 시원찮아도,

아이들의 어설픈 모든 행동들을

오늘도 눈감아 주고 기다려주는 연습부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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