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나의 첫 대학병원 응급실행
일요일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어떤 환자분이 퇴원 날이라고 주신 체리를 먹으며 평화를 오래간만에 찾아온 평화를 만끽 중이었다.
입원 3일 째된 교통사고 환자 E님 관련 병동 콜이 왔다.
19:45분 : 양쪽 팔, 가슴, 배 쪽이 내 살 같지가 않아요
어제는 턱에 마비감이 느껴진다고 하셨던 분이었다. 설마 안면신경마비인가 싶어서 간단히 체크했는데 문제없었다. 개구장애나 언어장애, 보행장애도 없으셨다. 팔다리 감각 저하가 어느 부위 특별히 심하게 나타나지 않고 전체적으로 제 살갗 아닌 느낌이라고 하셨다. 어제 찍은 뇌 CT 상으로는 정상이었는데...
이상하다 생각하고 당직실로 돌아왔는데 또 다른 콜이 왔다. "목이 아프고 양 팔이 마비감이 느껴져요."
이젠 검사를 제대로 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국 올라가서 신경학적 검사 망치와 펜라이트를 챙겼다.
전날부터 어지럽고 속 메스꺼웠고 아래턱부터 몸통 전체, 사지 전체적으로 마비감 있고 감각 둔해서 병원 아래층 내과에서 일단 경구 진통제 처방받아서 드시기까지 했다. 오늘 저녁에는 따로 안 드셨다고 한다.
신경은 문제없었는데 뒷목 통증이 여전히 심하고 아래턱 마비 감도 살짝 있고 무엇보다 근력이 많이 떨어졌다. 발목 움직이는 거나 발가락 움직이는 게 정상이 아니었다. 감각이 무딘 것도.
검사 후 자리에서 일어나 보시라고 했더니 다리 힘이 다 풀려서 주저앉으셨다. 아까는 괜찮았고 걸을 수 있었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많이 놀라 우셨다. 보호자분께서 병원에 연락을 해 지금 환자분 상태에 대해 물어보셨다.
E님은 전신통 때문에 진통제 주사를 자주 맞으셨는데 또 맞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진통제 주사를 맞으실 상황이 아닌 거 같아서 다른 병원 응급실에 가보자고 말씀드렸다. 수액은 우리 병원에서도 맞을 수 있으니 일단 수액을 맞겠다고 하셨다.
수액을 맞으시면서 알게 된 사실. 후종인대골화증이 있는 분이었고 사고 전에도 정형외과나 한의원에서 목 쪽으로 치료받으시던 중, 올 2월쯤에 정형외과에서 진통제 맞으면서 혀가 말리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시는 거다. 이거 진통제 알러지인거 아닌가? 근데 어떤 진통제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셨다. 그리고 입원 3일째인 오늘까지 우리 병원에서 맞은 진통제 주사에는 그런 반응은 없었다고 했다.
갑자기 요의가 심하게 왔는데 소변을 보지 못하겠다고 하셨다. 모든 간호 선생님들이 달려와서 커튼 치고 환자분 자리에 수건을 넉넉히 깔고 여자 소변기를 대어드렸다. 환자분은 다리에 힘이 없어서 화장실도 못 가시는 상황이었다. 소변은 계속 보지 못하셨다
21:45분 : 결국 응급실에 가야겠다고 결론이 났다.
근처 응급실 운영하는 2차 병원들에 환자분 상황을 설명드리며 전원 가능한지 물었다. 마미증후군일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 응금처치 불가하다며 다들 거부. 우리 병원과는 조금 거리가 먼 대학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가는데 2-30분은 걸릴 예정이었다.
22시 : 보호자분 병동에 도착하셨다.
이 분도 목이 아프신 분인지 파란색 목 보호대를 차고 계셨다. 올 3월에 강남세브란스 병원에서 목 통증으로 진료 볼 때 후종인대골화증이 심한 정도가 아니어서 운동하고 관리하면 괜찮아진다는 말 들었는데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모르겠다고 혼란스러워하셨다. 그리고 어차피 대학병원에 갈 거면 한번 진료 봤던 강남세브란스에 지금 가겠다고 하셨는데, 난 울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도중에 환자분께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우선 여기 대학병원으로 먼저 가서 진료를 보자고 설득했다.
앰뷸런스가 오기 전에 E님은 다행히 소변을 보셨다. 만약 못 보셨다면 정말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22시 반: 앰뷸런스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이동. 이제 모든 책임은 다 내게 있었다. 구급대원분께서 내게 환자 증상과 발생 경위에 대해 물어보셨는데 앰뷸런스 도착하기 전에 정리해뒀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어버버 하며 아무 말도 못 할 뻔했다. 담당 레지던트 선생님이 오늘 응급 상황 관련 보고를 자세하게 해야하니 상세하게 기록해놓으라고 당부하셨다.
23시쯤 대학병원 외상센터에 도착.
수축기 혈압이 200 가까이 찍었다. 산소요법을 시행하고 전신 CT를 찍었다. 처음에 환자분 상태를 보고 응급실 의료진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응급실 간호사, 인턴도 일요일 밤에 이런 환자가 오다니? 이런 눈빛을 보였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E님을 문진 하다가 신경외과 전문의를 불러왔다. 완전 마비는 아니고 불완전 마비 같다고 했다.
그러고 더 나이 많은 의사분이 왔다. 신경외과 전문의라고 했다. E님의 보호자분 상태는 괜찮은지 계속 확인하며 한편으론 E님이 어떤 검사나 처치를 받으시는지 가까이서 지켜봤다. 새로운 처치가 들어가면 곧바로 레지던트 선생님께 보고했다. 지금 덱사 10ml 들어갔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E님과 나를 커튼으로 가로막았다. 의사 3명이서 우리 병원에서 찍은 엑스레이, 방금 응급실에서 찍은 CT 사진을 보며 열띤 토의를 했다. 감각신경부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러더니 우리 병원에서 무슨 치료받았냐고 대뜸 물어보는 거다. 침 맞은 부위와 침의 길이를 물어봤다.
무슨 후종인대골화증 환자가 침 맞았다고 갑자기 마비 증상이 오나?
순간 화가 나서 레지던트 선생님께 원장님 휴진일인 오늘 대진 원장님이 어디로 치료했는지 알 수 있냐고 바로 물어봤고 레지던트 선생님도 이 상황의 원인을 침 치료로 돌리려고 하는 거냐며 바로 알아봐 주셨다.
2.5 X 3.0 크기의 침으로 1-1.5cm 정도로 목, 승모근 쪽으로 침 치료 4회 시행했고, 도수, 물리치료는 하지 않았습니다.
3cm 길이의 침으로는 도저히 신경을 건드리거나 척수를 건드릴 수 없다. 심지어 1.5cm 깊이만 넣었다면 더더욱. 잘 따져보지도 않고 침 치료를 이 상황의 원인으로 몰아가려는 그 태도가 어이없었다.
결국 지금까지 찍은 영상만으로 환자 상태의 원인을 설명하기 힘들어 MRI를 찍어봐야겠다고 했다.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보호자분께 사지마비가 의심된다고 했다. 다행히 보호자분은 정말 침착했고 아무런 동요도 없으셨다.
산소처치, 스테로이드 주사, 수액까지 다 맞고 자정이 된 지금, E님은 감각은 전체적으로 한 단계 올라온 거 같은데 양쪽 종아리 제외하고는 다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E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는 인지하고 계셨는데 말씀이 느릿하신건 여전했다. 다시 엑스레이를 찍고 외상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병원 관계자 외에는 출입금지인 외상중환자실이었는데, 흰 가운을 입고 있는 내가 이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라고 생각했는지 직원들은 문을 다 열어주었다. 중환자실 앞 대기의자에서 보호자 분과 얘기 나누다가 레지던트 선생님이 도착했다. 새벽 한 시에 MRI를 찍고 결과 판독을 한다고 했다. 레지던트 선생님이 결과를 듣고 갈 테니 나더러 먼저 우리 병원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바톤터치를 하고 보호자분과 인사를 나누고 새벽바람을 가로지르며 병원으로 돌아갔다.
대학병원 앞에서 택시를 타고 한 시 넘어 우리 병원에 도착했다. 환자분이 환복을 힘들어해서 어쩔 수 없이 찢어야 했던 우리 병원 환자복도 바리바리 챙겨 왔다. 잠긴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 그날 새벽 3시까지 E님 관련 상황을 전자의무기록시스템에 작성했다. 너무 피곤했지만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9시 보호자분이 병동으로 찾아왔다. 다행히 E님의 엑스레이, CT, MRI 결과는 다 정상이었다.
아침에는 E님이 보호자분 손 잡는데 어제보다는 더 힘이 들어갔다고 했다. 너무 애써주셔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하고 짐 챙겨서 가셨다.
영상으로는 아무 문제없어서 더 이해하기 힘들었고, 여전히 원인이 명확히 설명되지 않은 미제 사건이지만, 다시 E님이 회복되고 있고 수술이 필요 없다니 다행이었다. 이 경험 덕분에 어떠한 상황도 다 헤쳐나갈 수 있을 거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몰아세우는 환경에서 맞서려면 나 자신을 믿어야 하고 더 목소리를 크게 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