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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Nov 25. 2020

나에게 서울이란

서울, 서울, 서울

나에게 있어 시골의 삶이란 늘 그렇듯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 이곳에서 '하루를 백 년처럼 산다'는 건 삶이 지루하고 권태롭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오늘 점심은 뭐 먹어야 할지 걱정하는 팀원을 보면서 나의 이십 대를 회상했다. 7급까지는 타지역 근무지 전출이 지금은 기회가 많지만 그땐 거의 없었다. 삼사십 대가 될 때까지 시골탈출을 꿈꿨지만 이젠 그게 불가능 한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 인생은 억지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물 흘러가는 데로 순리대로 사는 것이다.


결혼하기 전 아주 오래전 그 시절, 섬에서 생활할 때도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은 '절대 이곳에서 결혼하지 않겠다' , 언젠가 결혼할 그날이 오면 '꼭 서울남자랑 하겠다'라는 희망을 노트에 적어두었다. 흔히 섬에 사는 여성은 육지에 사는 도시남과 결혼을 갈망한다고 한다. 결혼을 해서라도 섬 생활을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나 역시 서울남자 또는 도시남자랑 결혼하지 않고서야 섬을 나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90년대 초로 나의 기억은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땅을 20대 초반에야 처음 밟아보았다. 도로는 어찌나 넓던지 좁은 시골길만 보다 섬 여자의 눈에 비췬 서울은 신세계였다. 소니 카세트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조지 윈스턴의 'December'가 한강의 반짝이는 은빛 물결과 어울려 다소 이국적이고 아득한 느낌을 안겨다 줬다. 이 넓고 넓은 서울 하늘에 내 신랑감 하나 없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저 멀리 도로에 운전선 창문을 내린 채 내 또래 여성이 차량을 몰고 도로를 올라가고 있다. 조수석엔 그녀의 등치만 한 혈통 좋은 개가 타고 있다. 도회적인 느낌의 그녀를 보며 시골 여자의 마음은 부러움으로 가득 찼다. 또 텔레비젼에서 보던 그 유명인사 연예인들이 다 서울 사는 거 아닌가. 그 서울 땅에 지금 내가 와 있다.


섬에서 근무하던 시절, 회식 후에는 직원들끼리 노래방을 가는 게 정규코스였다. 가무에 능하지 않기에 노래방 가면 의자에 앉아서 그냥 '박수부대'로 남고 싶었다. 하지만 다 같이 누군가 노래 부르면 옆에 일어나서 서서 손뼉 치라고 손으로 잡아끌고 난리가 아니었다. 지금은 택도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내가 부를 차례가 되면 종종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을 부르게 되었다.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어딘가에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손, 서울, 서울, 서울'


노래를 듣다못해 동료가 외친다.

'아니 그렇게 서울이 좋으면 가라고...' 그 동료는 '여자, 여자, 여자'를 그 노래방에서 그날 밤에 세 번을 불렀으면서 말이다.


희망을 노트에 적어서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노트에 적은 것들 대부분이 신기하게도 거의 이루어졌다. 그중 하나, 드디어 서울남자랑 결혼한 것이다. 서울남자처럼 보이지 않는 시골에 근무하는 서울 남자, 성냥개비 2개 올릴 수 있을 만큼 길고 강한 속눈썹에 , 연속 인형극에 나오는 인형 같은 짙은 눈썹을 가진 커다란 눈은 조금 어둡고 먼곳에서 보면 장동건인가 할수도 있다(키작은 장동건). 멜로드라마를 보며 그 큰 눈으로 눈물을 흘리고 벌레 한 마리도 못 잡는 서울남자랑 결혼한 것이다. 지금도 하루살이 같은 벌레만 나타나도 온 식구들은 나를 부른다. 난 성큼성큼 다가가 벌레를 잡고 유유히 사라진다. 암튼 결혼을 통해 난 신분세탁을 한 후 내 본적지는 서울로 바뀌었다. 그렇게 난 서울여자가 되었다.   


서울, 나의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로망!

거기서 시작한 적 없지만 나에겐 퇴직 후 돌아가야 할 그 어떤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 남들은 퇴직 후 전원생활을 꿈꾼다지만 젊은 인생에 즐기지 못했던 도시 라이프를 즐겨야 할 어떤 곳이다. 인생의 중량이 있다면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퇴직 후 삶은 도시다. 그 복닥 복닥 한 익명의 도시에서 마음껏 도시 라이프를 즐겨야 할 것이 남아있다.


오래전 읽었던 책이다.

요즘 미국의 은퇴자들은 여생을 보낼 최적지로 대학촌을 꼽습니다... 나이 들수록 문화현장과 가깝게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덜 늙습니다. 각양각색의 문화 옆에 있어야 늙어서도 뭐라도 배울 수 있고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시간이 많다는 게 괴롭지 않습니다. 문화를 알아야 인생의 참맛도 느낄 수 있습니다. -132쪽

유병률 <딜리셔스 샌드위치>


어느 날 큰아이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엄마! 사람들은 왜 서울에서 살려고 해, 난 서울이 싫어. 그냥 완전 시골도 아니고 지방 소도시 같은 데서 살고 싶어" 그 말에 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예로부터 정약용 학자님도 이렇게 말했지, 말이 새끼를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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