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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r 17. 2024

커피접대도 하루이틀이어야 말이죠

팀장의 서비스에 중독된 면민들의 아쉬움

하루가 시작되면 팀장을 보기 위해 주민들이 면사무소에 줄을 선다. 찾아오는 민원인 수가 급격히 증가한다. 별일이 없이 그냥 면사무소에 놀러 오는 것이다. 이건 내 경우가 아니라 친화력이 좋은 어느 팀장은 주민들이 오면 벌떡 일어서서 병음료수 뚜껑부터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맛에 주민들의 발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친화력이 좋은 팀장이 어느 날 발령 난 가버리자 전임팀장이 어디로 가버렸냐고 나에게 문의하는 주민들이 몇 달 내내 이어졌다. 몇 개월간 주민들의 애석함과 황망함을 마주해야 했다.  "저번 팀장님 어디 가셨소?" 그렇게 인사나 대응 서비스만 잘해도 면민들의 마음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면사무소다.


면단위에는 온갖 사회단체가 있는데 대부분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경우가 많다. 타고난 친화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지역 유지들이 오면 각별한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다. 시골 면에서 살아남으려면 확실히 친화력이 필요하다. 친화력만 있으면 어떤 면사무소라도 별 어려움 없이 근무할 수 있고 나중에 면장이 될 수도 있는 발판을 마련할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친화력도 없으며 인사도 타이밍 못 맞추고  "차 한잔 하시겠어요"라는 말도 선뜻 나오지 않는.


엉거주춤하는 사이에 그 회장은 커피를 스스로 자판기에서 뽑아 들고 사무실 가운데 원탁에 앉아 차가운 표정으로 직원들은 한 번씩 눈으로 훑지만 아무래도 타깃은 나인 듯싶다.


그 회장이 오면 벌떡 일어나서 "무슨 일로 오셨어요?, 무얼 도와드릴까요? 커피 한잔 드릴까요?" 해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단지 커피가 목적이 아니라 친분을 쌓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사무실이 길가에 있어 농협가다가 우체국 가다가 커피 한잔 하기 위해 그냥 제 집 드나들듯 하루에도 자연스럽게 여러 번 방문한다. "새로 온 팀장은 인사도 안 하더라, 인상이 차갑더라. 차도 안 타주더라". 또 언제는 " 이장회의 하는데 말이 너무 빠르더라.. 성질이 보통 급한 게 아닌가 봐" 별별 말이 다 들려온다.


사무실 입구에는 미니 커피 자판기가 있어 누구든 셀프로 뽑아 먹을 수 있음에도 그 회장은 그 커피를 뽑아서 본인 앞에 갖다 주는 걸 원했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 없이 무슨 일로 오셨냐고 별일 없으시냐고 물어보면 되지 않냐 하겠지만 하루에도 여러 번 방문하니 매번 일어나서 응대하기가 사실 귀찮다. 진짜 접대에 포커스를 맞추자면 아무것도 안 하고 스탠바이하면서 출입구 쪽을 보고 있어야 한다. 출근해서 온 정신을 그쪽으로 쏟아야 한다. 그들은 과거 습관에 너무 길들여졌다.


그날은 작정하듯 온 듯싶었다. 아침에 방문을 했는데 오후에 두 번 이상 찾아오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아니면 내가 커피를 주는지 안 주는지 시험에 들게 하려고 그런가. 예감이 좋지 않아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로  "커피 한잔 드릴까요?" 하니 단번에 "좋지"하는 말이 나온다.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지난번 팀장은 내가 올 때마다 커피를 타줬어..."  가끔 오는 것도 아니고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회장의 커피배달이 팀장 전담이라니 이곳에는 팀장이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았다. 매일 레이다를 바짝 세우고 출입구를 바라보면서 누가 오나 계속 주시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전임 팀장이 너무 접대를 잘해서 하루아침에 접대해 주는 사람을 잃어버린 자들의  불평이 말이 아니다.


나는 그런 루틴을 계속 지속해 나갈 자신이 없었다. 전임자가 그걸로 점수를 따고 이젠 습관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내가 커피대접 안 하면 나만 욕먹을 것을 알면서도 나는 하기 싫었다. 나이 들수록 사람이 조금 뭔가 여유 있고 편해져야 하는데 인생이 갈수록 피곤해지고 갈수록 받을어야 하는 사람이 들어가고 뭔가 더 해야 하다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내가 이 면에 있는 동안 언제까지 매번 "오셨어요?" 하면서 벌떡 일어나 커피 타는 게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은 "전임 팀장은 나한테 엄청 잘했어, 내 생일날 선물도 보내고 그랬어." 그 말 끝엔 자기에게 잘하면 저 높은 사람한테까지 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는 걸 암시했다. 지금 내가 자기한테 하는 건 성에 차지 않는 듯싶었다.  난 바라는 게 없으니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바라는 게 없는 삶이 이렇게 자유롭고 홀가분한가. 그들 눈엔 나 역시 야망에 불타올라 아쉬운 게 많은 사람으로 보았는지 모르겠다.


과연 그런 부분에 집중했다면 과연 나는 출세했을까. 어디 면 어디 팀장 진짜 친절하고 잘하더라 말이 바로 속보로 윗 라인에 제보되었을까. 그냥 정말 그 회장과 인간적으로 마음이 통해 자연스럽게 커피도 타주며 일상의 안부를 주고받고 아무런 목적 없이 순수하게 행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순수하지 않다.


내가 마음에서 우러나와하더라도 무슨 목적이 있는 걸로 보일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목적이 없으니 내가 여력이 되었을 때 커피접대도 하는 건데 방문자는 한치의 느슨함도 허용치 않는다. 또 성격상 그런 것도 맞지 않는다. 그들에게 바라는 게 없으니 자유롭다. 하지만 이 지역에 발령받은 죄밖에 없는 나는 마치 잡힌 물고기처럼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년이 가까워오는 말년까지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살아야 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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