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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r 23. 2024

결핍이 불러온 면직원의 호화로운 입맛생활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면 불편한 점 중의 하나가 먹는 문제다. 군청처럼 구내식당이 있는 게 아니기에  점심때는 뭘 먹으로 어디로 가야 할까를 늘 고민한다. 도시처럼 근처에 갈 수 있는 음식점이 많은 것도 아니다. 기껏 냉면집이나 짜장면집 갈비탕집 뿐인데 것도 몇번가면 안먹고말지 질린다. 그래서 어떤  여직원들은 도시락을 싸와서 사무실에서 먹기도 하지만 한국식 반찬이 냄새도 안 날 수도 없기에 먹고 난 후 환기도 해야 하고 또 매일매일 반찬 걱정하며 도시락 싸는 것도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세상이 좋아져 지금은 우리도 점심때 이렇게 자유롭지만 수년전까지만 해도 점심때도 돌아가며 민원을 봐야해서 점심을 거르거나 대충 컵라면으로 떼우는 직원도 많았다.


" 오늘 우리 뭐 먹지?"


아침 10시가 되면 슬슬 뭘 먹어야 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팀별로 먹는 분위기다. 면사무소 근방의 식당은 다 한 번씩 거쳤기에 딱히 뭔가 먹고 싶은 생각도 없다. 시골이라고 물가가 낮은 것도 아니고 갈수록 밥값이 비싸다는 걸 체감하지만 선뜻 고구마나 계란으로 점심을 때우기도 어렵다. 우리에게 유일한 힐링시간인 점심때마저 컵라면과 고구마로 때워가며 영양실조까지 걸려가면서 돈을 벌고 싶지 않다. 면장한테 갈굼을 당해 스트레스받고 악성민원으로 인해 스트레스받을 때 우리를 구원해 주는 건 맛있는 점심이기 때문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기에 팀원끼리 절대 개인적인 저녁 약속은 하지 않는다. 근무시간에 보는 사람 퇴근 후까지 보면서까지 개인 시간을 뺏는 것도 현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다. 우린 점심에 진심으로 목숨을 건다.



"누군 입이고..." " 우리는 직원이 아닌가"


이런 생활 속에 가끔 직원들을 열받게 하는 건 어느 팀은 면장이랑  밥을 먹으러 갔는데  장어를 먹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직원들은 거의 하이에나의 외침처럼 보이는 불만들을 보인다. 급기야 누군가 그런다 " 면사무소 뒤에서 우리끼리 삼겹살을 구워 먹자" "벚꽃이 피면 김밥사서 산에 올라가서 우리끼리만 점심 먹자" " 그렇게 뒷마당에서 냄새를 풍기면 면장실로 냄새가 올라갈 거야 ". 우리를 빼고 자기들끼리 먹은 것에 대한 복수로 남은 팀은 은밀한 계획을 꾸민다. 하지만 면장과의 점심은 마치 '폭탄 돌리기'처럼 서로가 기피하기에 면장과 먹느니 차라리 김밥을 먹더라도 우리끼리 편하게 먹고 싶다는 분위기다.


고물가임에도  먹고 죽자하는 심정으로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켜 주는 후회하지 않을 메뉴를 선택하기 위해  블로그를 통해 후기를 본다. 선택한 결과로 만족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도 있다. 면 내에 있는 오리탕집 갈비탕, 추어탕을 벗어나 그나마 점심시간이라도 도시의 분위기를 잠깐 느껴보기 위해 읍내로 나간다. 사전에  예약을 해두고 읍내로 간다. 읍내에는 패밀리레스토랑이 몇 개 있는데 파스타 가격은 16천 원이다. 저렴하지는 않지만 분위기나 맛이 나름 괜찮다. 처음 이 패밀리레스토랑 생겼을 때 개업발이 장난 아니었다. 시골도 직장인이 있는데 맨날 김치찌개만 먹을 수 없지 않나. 그것에 목마른 직장인들이나 젊은 층들에게 오아시스였다. 요즘 금방 개업 폐업하는데 5년째 성업 중이니 인기가 아직 있는듯하다. 밥 먹고 난 후에 또 커피를 먹어줘야 해서 카페에 전화해 미리 주문을 해놓는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어제도 파스타 오늘도 파스타 일일 일 파스타다. 그나마 먹을만한 게 크림새우파스타 그게 그나마 무난하다. 사실 나이 드니 실제 입맛도 변해서 스파게티를 예전처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나마 먹을 것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먹은 파스타는 심심해서 맛없고 피자는 뒷맛이 별로다. 이런 이래서 맛없고 저런 저래서 맛없고 몇 번 까다롭게 투정을 부리니 팀원들 눈치도 보인다. 젊을 때와 다르게 나이 드니 이제 밀가루 음식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가스가 차올라 얼마 전 점심때 팥죽을 먹고 고통스러운 적 있다.


고물가니 어쩌니 하면서 점심은 늘 이렇게 호사스럽다. 직장스트레스에 먹는 것만큼 좋은 건 없으니 말이다. 돈만 벌다 죽을수는 없다. 밥 먹고 또 카페에서 픽업한 커피 한잔씩 손에 들고 사무실로 복귀 한다. 그건 스벅이 없어도 이 시골구석에서도 누릴 수 있는 여유다. 덕분에 밥값 정산할 날짜가 돌아오니 이번 달 점심값이 일인당 20만 원에 육박한다고 월급 200 받아서 10프로가 밥값으로 나가게 생겼다고 막내 팀원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이 피자는 입맛에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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