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탕수육꽃을 남겼다

- 산수유의 새로운 이름

날이 갑자기 따뜻해졌다. 몇 일전까진 추웠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이렇게 사방에서 수많은 봄꽃들을 볼 수 있게 될 줄이야. 이럴 때는 ‘라떼는 말이지..’ 라는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라떼는 말야. 무릇 봄꽃에도 피는 순서가 있었어. 매화와 산수유를 시작으로 목련이 피고 그 다음이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만개하고 나면 유채꽃과 철쭉이 피고 그때서야 겨우 여름이 시작되려고 해. 하지만 요즘은 ‘봄이 이제 왔나?’ 싶은데 어느덧 여름이 성큼 다가와. 긴 겨울과 긴 여름 사이, 너무 짧은 봄이라 꽃들이 조금이라도 세상을 만끽하고 싶은지 앞 다투어 한꺼번에 서둘러 피고 져.

     

어릴 적 나의 봄은 엄마가 해주시는 쑥떡이 그 시작이었어. 한번은 엄마 따라 쑥을 캐러 갔는데 도시 촌년인 나는 쑥과 국화를 구분하지 못했어. 푸짐한 소쿠리에 의기양양해서 갔다가 국화를 빼고 나니 얼마 남지 않아 의기소침한 적이 있었지. 앞뒤가 모두 초록이면 국화, 뒷면이 흰 색이면 쑥이래. 하지만 아직도 구분은 못할 것 같아. 

    

내가 엄마가 되서의 봄은 두 아이와 집 주변 작은 공원으로 산책 나가는 것으로 그 시작을 알렸지. "엄마 이건 뭐야? 저건 뭐야?" 물어보는 통에 식물도감을 사서 공부를 하기도 했어. 그래봤자 겨우, 꽃이 펴야 냉이와 고들빼기를 구분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길가에서 민들레 홀씨를 발견할 때면, 너희에게 불게 해주고 싶어서 홀씨가 바람에 날아갈까 걱정하며 조심조심 가지고 온 적도 많았어. 한 번은 진달래를 따서 화전 만드는 가족체험행사에 참여했었는데 그 기억이 좋았는지 지금도 너는 진달래를 보면 꽃잎을 입 안에 넣곤 해.     

유치원에서 봄 산책을 하고 오던 날 "오늘은 유치원에서 뭐했어?" 하고 물었더니 네가 탕수육 꽃을 봤다고 했지. 

"탕수육을 먹었다고??" 

"아니, 탕수육 꽃을 봤다고~" 

"???"

그 날은 네가 산수유를 보고 온 날이었어.     

17년의 봄은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고 그 추억들은 내 일기장에 고스란히 적혀있지. 벚꽃을 보러 멀리 나가지 못하던 해에도 최소 아파트 단지 꽃놀이는 함께 다니곤 했었는데 이젠 너희들이 중간고사 기간이라며 같이 갈 시간이 없다고 하네. '공부만 하는 것도 아니면서... 유튜브 보는 시간을 조금만 줄이면 다녀올 수 있는데...' 그래도 "엄마, 학원가는 길인데 여기 벚꽃이 활짝 펴서 이뻐." 하고 전화를 하는 아이로 커줘서 다행이다. 그 정도의 여유는 가질 수 있고 예쁜거 볼 때 엄마가 생각나는 너라서 너무 좋아.     

중간고사가 끝나면 늦은 봄놀이를 나가자. 사춘기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데리고 함께 나가기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지만 2024년의 봄은 나의 일생에도 너희들의 일생에도 단 한 번 찾아오는 시간이니까.

그런 시간들을 차곡차곡 모아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