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향해 쓰는 편지
J에게
J야 너에게 젊음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네가 지금 살고 있는 계절이 젊음인지, 내가 살고 있는 계절이 젊음인지, 그럼 우린 언제까지 젊은 건지, 한번 떠오른 질문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럼 너는 청춘이 젊음 아니야? 하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편지를 쓰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청춘'이라는 단어의 뜻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이라고 해. 근데 '젊다'라는 형용사의 뜻은, '나이가 한창때에 있다. 혈기 따위가 왕성하다. 보기에 나이가 제 나이보다 적은 듯하다.'라고 적혀있네. 우리가 그렇게 찾는 청춘은 사실 끝이 있는 단어였던 거지. 그런 너에게 젊음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창때는 대체 뭔지, 혈기가 왕성한 건 뭔지, 보기에 제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건 뭔지 말이야.
다만 나는 젊음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거나, 그 즐거움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싶진 않아. 젊음은 좋고, 늙음은 나쁜 건 아니잖아? 지난 편지에서 말했지만, 내겐 나이 듦도 소중한 과정이거든. 완연한 내가 되는 과정이었던 나이 듦과 젊음은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튼 아무도 묻지 않은 나의 젊음은, 또 3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로,
신체적인 젊음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몸이 우락부락 좋다거나, 보기 좋은 몸을 얘기하는 게 아니야.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내 두 발로 걸어서 갈 수 있고, 오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직접 오를 수 있는 정도의 건강을 가진 사람들이 젊다고 생각해. 나이가 들고 몸 어딘가가 삐걱대기 시작하면, 무언가 마음대로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면 그게 젊음을 잃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사람은 누구나 신체적인 노화가 오기 때문에, 분명 삶의 어느 시점이 오면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시점이 오겠지. 어린 시절에 조금이라도 운동을 해 놓은 사람들은 좀 더 오래 그 젊음을 간직하겠지. 술래잡기를 하다가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을 때를 생각해 보면, 신체의 일부가 내 맘대로 안 움직이니까 짜증도 좀 나고, 신경질도 나고, 괜스레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던 기억이 있네. 하물며 팔이 불편해도 그런데, 잘 걷지 못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좀 더 짜증도 나고, 세상이 미워 보이겠지. 그렇게 해맑던 젊음이 조금씩 희미해 가는 거겠지. 넌 그래도 아직 젊잖아? 서울 구경도 왕왕 다니기도 하고, 두 발로 뛰기도 하니깐 말이야. 네가 그 젊음을 가능한 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 네 젊음이 네 삶의 마지막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다. 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단 말이야.
우리의 이 젊음이 언제까지나 함께 할 거라는 생각일랑 집어치우고, 늘 곁에 두는 소주와 담배는 좀 치워 두었으면 좋겠다. 또 건강하면 뭐 하냐고 얘기하지 말아주라, 내 친구가 80살 먹은 할아버지 같다는 생각에 우울해지니까 말이야. 평생 소주 먹진 말란 말은 안 하겠지만, 두 번 먹을 거 한 번만 먹고 한번은 나랑 달리기하자. 소주보다 달리기가 좋은 이유는 달리기하면서 얘기해 보자. 이건 나의 부탁이야.
두 번째로,
정신적인 젊음도 있다고 생각한다. 음, 젊음은 뭔가 통통 튀고, 어린아이 같은 단어인데, 정신적인 젊음은 유치하고 아이 같은 생각을 하라는 거냐고? 그건 아니야. 내가 생각하는 정신적인 젊음은, 스스로 사유할 줄 아는, 세상을 온전히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만의 눈을 간직하는 거야. 나이 듦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렇고,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걸 굉장히 강조하는 것 같네. 단순히 어디서 본 말들만 앵무새처럼 옮겨대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해.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다 보면, 정말 많은 아저씨들을 만나게 되더라. 담배를 사는 아저씨, 술에 취한 아저씨, 이제 술에 취할 아저씨. 이전에 그런 아저씨들과의 대화를 즐겨 한다고 한 적이 있잖아. 잘 보면, 정말 자기 젊음을 온전히 간직하고 사는 아저씨들이 있더라. 요즘 애들, MZ 세대들이 어떻더라 하는 말 말고, 자기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그걸 이야기해주는 아저씨들이 있어. 또 그런 아저씨들이 되게 웃기기도 하고. (그런데 요즘 애들이 어떻다느니, MZ 세대 특징이니 하는 말들은 되게 웃긴 말이네.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요즘 애들 10명도 만나서 대화해 보지 못한 사람들인데.. 요즘 애들에 간신히 속하는 나도 요즘 애들 10명과 속 깊은 대화를 해보지 못했는데, 요즘 젊은이들이 어떻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는 거지? 적어도 내 친구들은 다 가지각색, 다양한 젊음을 간직한 친구들인데 말이야.)
지난주엔 친구끼리 아침 등산을 다녀와서 맥주를 두 캔 사가시는 아저씨 두 명이 있었어. 아저씨 둘이 선 한 30년은 넘게 친구를 한 것 같더라. 서로 투닥투닥 하면서 카스 두 캔이랑 새우깡을 하나 사 가시더라, 얼굴은 이미 산 아래에서 마신 막걸리로 벌게져서 말이야. 나를 보면서 막 헤헤하고 웃으시길래.. 나도 막 아저씨가 너무 웃기고, 또 주말 등산 다녀와서 맥주 한 캔 하고 드러누워 자는 우리 아빠 같기도 해서, 막 같이 웃었거든.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더라. 그러니깐 또 젊은 친구가 잘 웃는다고, 보기 좋다고 해주시는데, 그날은 자기 전까지 기분이 좋더라. (그러고 1시간 있다가 카스를 두 캔 더 사러 오셨어. 가을에 아파트 정자에서 먹는 캔 맥주는 참을 수 없지.) 세상이 어떻네, 요즘 애들은 어떻네 하는 말들을 유튜브나 뉴스에서 보고 줄줄 읊는 사람들이 아니라, 평일 내내 열심히 일하고, 주말엔 평생을 본 친구와 등산하고 막걸리와 맥주 한 잔, 이런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 아닌가? 비유가 적당한진 모르겠네. 아무튼 넌 너의 젊음을 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너의 젊음인지, 그저 세상의 파편인지 궁금하다.
세 번째로,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은 늘 젊어 보이더라. 오늘은 단순히 외적인 젊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니까, '어 우리 전공 교수님 중에 완전 나이 들어 보이는 교수님 있는데!' 하는 생각은 접어주길 바란다. 내가 말하는 배움이란, 단순히 정수론의 어떤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공 책을 왕창 읽거나, 영어 단어를 매일같이 외우는 배움을 말하는 게 아니야. 교육을 받은 사람, 받지 못한 사람을 말하자는 게 아니야. 우선 사람은 살면서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잖아. 젊은 사람도, 나이 든 사람도, 행복한 사람도, 슬픈 사람도.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무언가 배움을 얻어 가는 사람들이 있더라.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떤 현상을 보며 배움을 얻는 사람도 있고, 물론 책이나 어떠한 지식을 배우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자기 사고를 활짝 열어놓고 세상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의 백옥 같은 젊음을 요리조리 잘 닦아서 간직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대학교수님들은 늘 자신이 가진 지식을 의심해야 하고, 또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야 하는 사람들이니 늘 젊어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내가 교수님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논문 쓰실 땐 예민해지지만 말이야. 넌 어떤 배움을 계속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세상이 너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지 말이야.
아마도 이 편지를 보는 넌 스스로가 젊다고 생각할 거야. 물론 편지를 쓰고 있는 나도 젊다고 생각하고 말이야. 그런데 이 젊음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가진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 편지를 써.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정해준, 남들이 정해준 나이에 맞춰서 나이 들어야 하잖아? 30대가 되고, 40대가 되고, 50대가 될 때마다 '아 난 이제 완전히 나이가 들어버렸구나..'하고 슬퍼할 거 아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하루이다.'라는 말도 있더라고. 오늘 주어진 젊음을 막 흥청망청 즐겁게 쓰는 것도 너무 즐겁지만, 조금은 아껴서, 운동도 좀 하고, 배움도 멈추지 않고, 스스로 좀 생각도 하면서 우리 젊음을 잘 간직해 보자. 한 60대까지 젊을 수 있으면 참 재미있겠네. 젊게 나이 들면 말이야.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그런데 배움을 멈추지 않는 완연한 내가 될 수 있다면, 그런 슈퍼맨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네.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넌 충분히 젊다고 생각해.
어쩌면 잘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서 하루하루를 부단히 노력하는 너니까 말이야.
너의 부단한 하루 사이엔 늘 행복이 가득하고
너의 괴로운 하루 사이엔 늘 무던함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함께, 오래, 젊음을 간직하고 싶다.
스쳐가는 젊음을,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좋겠다.
T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