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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 김 사장 Nov 13. 2019

멋있지 않다는 것이 매력인 탐정


언젠가 은행에 환전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백만 원을 유로화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더니 창구 담당 직원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물었다. 


“유럽여행 가시나 봐요. 어디 가세요?” 


이때까지만 해도 그분의 자세는 ‘당신이 어디에 가는지 궁금하다기보다 이건 그야말로 고객 응대 차원에서 묻는 겁니다’에 가까웠다. 물론 대놓고 업무 매뉴얼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표정으로 물은 건 아니다. 다만 환전하러 오는 고객에게 늘 웃는 얼굴로 이런 것까지 물어봐 주려면 저분도 나름대로 귀찮겠구나 싶어서 “프랑스요” 하고 짧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자, 


“몽마르뜨 언덕에서 사진 꼭 찍으세요(웃음)”


라는 다소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재차 물었다. 


“프랑스만 가세요?” 

“네?” 

“비행기로 그렇게 멀리 가면 다들 주변에 다른 나라들도 돌아보고 오시던데.” 

“네에.” 


이 대목에서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망설였지만 가만히 있으면 뭔가 비싼 비행기 값 내고 고생고생 날아가서 달랑 프랑스만 구경하고 돌아올 한심한 인간 취급을 받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행사에 초대를 받아 가는 거라고 변명 비슷하게 덧붙였다. 그러자 아까의 매뉴얼적 자세가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궁금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무슨 행사요?” 

“도서전이요.” 

“무슨 도서전이요?” 

“파리 도서전……”


……까지 얘기했을 때 내가 마주한 표정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던 마술사의 검은 모자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비둘기를 발견한 듯한 모습으로 그녀는 계산기를 두드리던 손을 멈춤과 동시에 커다란 눈을 더욱 커다랗게 뜨며 “에에? 작가세요?” 하고 진심으로 감탄한 듯 활짝 웃으며 물었다. 이런 표현은 실례지만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우시던지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속으로는 ‘당신을 웃게 할 수 있다면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왜 이런 얘기를 꺼냈냐면 이제부터 소개할 남자가 그런 상황으로 인해 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설탕 공장이 있던 인디애나폴리스에서 고교 시절을 보내고 하버드에 진학한 마이클 르윈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아내를 웃게 만들려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는 자상하고 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 그가 창조한 탐정 또한 작가의 심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는데 그 특징을 대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술을 즐기지 않는다. 

2) 술 맛보다는 커피 맛에 더 까다롭다. 

3) 담배는 일절 피우지 않는다. 

4) 하물며 마약 따위야 더더욱 사절. 

5) 탐정 주제에 권총을 무서워한다. 

6) 대신 책을 좋아한다. 

7) <율리시즈>부터 <법률과 가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하여간 시간만 났다 하면 책을 꺼내든다. 

8) 미인에게 유혹받아도 깨끗하게 거절할 줄 안다. 

9) 오직 한 사람만을 마음에 두고 있는 순정파. 

10) 여성에 대한 태도처럼 스포츠도 오직 농구만을 사랑하지만 모든 스포츠에 관해 박식하다.


즉, 마이클 르윈과 앨버트 샘슨이라는 인간은 그야말로 성실함을 그림으로 그린 듯한 바른생활 사나이들인 것이다. 그런 만큼 앨버트 심슨이 활약하는 마이클 르윈의 소설에는 ‘시체’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하드보일드 소설에서는 이례적인 일인데 왜냐면 사립탐정이 사람을 찾다가 시체를 발견한 후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간다는 것이 일반적인 구성이기 때문이다. 시체도 없는 마당에 그렇다면 대관절 샘슨은 뭘 하느냐. 혈액형에 관한 수수께끼를 쫓거나 도주한 남녀를 돕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니거나 병원에 입원한 면회 금지 환자의 사정을 조사하거나 은행가 부인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보는 등 상당히 사소한 일을 하는 데 열을 올린다. 


재미있게도 탐정으로서의 이러한 자세가 작가 미야베 미유키에게 상당히 어필한 듯하다. 스물일곱 살에 데뷔하여 30년 넘게 추리소설을 쓰며 받을 수 있는 상은 모조리 수상하고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낸 그녀가 지금껏 만들어낸 유일한 탐정 캐릭터는 『누군가』, 『이름 없는 독』,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 등장하는 스기무라 사부로, 딱 한 명뿐이다. 그리고 스기무라 사부로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탐정이 바로 앨버트 샘슨이라는 것을 나는 미야베 미유키 작가를 인터뷰하며 알게 되었다.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자. 


“저는 ‘앨버트 샘슨’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에요. 시리즈를 전부 읽고 났더니 샘슨 같은 탐정을 만들어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스기무라 사부로가 탄생했어요. 샘슨의 매력은, 일단 멋있지 않다는 거예요(웃음). 힘도 세지 않고요. 수수께끼의 미녀가 등장하지도 않아요. 탐정 소설에 흔히 나오는 멋진 대사를 읊조리지도 않죠. 하지만 다정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그런 점들이 무척 좋았어요.”


어지간히 끔찍한 살인사건이 아니면 다들 눈도 깜짝 안 하는 요즘 같은 때에 이런 바른생활 탐정에게 끌려 또 다른 바른생활 탐정을 만들어낸 작가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리고 싶다. 혹시 관심 있는 독자들은 앨버트 샘슨과 스기무라 사부로를 함께 읽어보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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