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검은머리앤 Apr 22. 2024

나도 돈 좀 쓰면서 살자

- 신상 부츠 그까짓 거.

사실 전 원래 알뜰한 편이었어요.

제가 28살에 결혼을 했는데

200만 원이 안 되는 월급으로 5년 동안

약 6000만 원 이상 모았던 것 같아요.


제가 돈을 모은 이유는

'어떤 남자를 만나도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내가 모은 돈으로 결혼해야지'

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결혼하는데 

돈이 어느 정도 필요한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돈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노력했습니다. 


어쭙잖게 채권투자도 좀 해보고...

고금리 저축상품이 있다고 하면 

서울에서 경기도까지 마다하지 않고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새마을금고 조합원이 되어 보기도 했고,

CMA계좌를 개설해서 돈을 넣어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십 대 후반에 제가 돈을 넣어둔 저축은행 두어 군데가 망했어요.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눈앞에서 누가 제 지갑을 그냥 들고 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말쑥한 도둑놈이 세상에 많구나...

이런 느낌이었어요.


직장 동료분께서 친구 남편이 금감원에 다니는데 

미리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더군요.

순간, 

나도 금감원 직원이랑 결혼을 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저축은행은 망하고 난 뒤였습니다.


마음고생을 했지만 돈은 다 돌려받을 수 있었어요.


이렇게 열심히 모은 돈을 결혼비용으로 다 쓰고 나니 

엄청 허탈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해서 모은 돈이 결혼하고 났더니 다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이 카드값만 가져온 줄 알았는데

마이너스통장까지 함께 가져왔더라고요.

결혼을 하고 나서 빚쟁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당장 아껴야지 다음 달 카드값을 갚을 수 있는데

아껴서 뭐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끼기 싫더라고요.


처음으로 제 물건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갔습니다.

(선물용 말고 제 물건을 구매하는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판매실적 좋은 영업사원 레이더망에 걸리게 됩니다.

"뭐가 필요해서 오셨을까요.

이쪽으로 와서 구두 한 번 신어봐요."

라고 말하면서 저를 직접 매장으로 데리고 가셨어요.


"저 오늘 이 지점 도와주려고 나온 직원인데 오늘 하면 3만 원 더 깎아줄게요."


결국 신상 부츠를 샀습니다.

잘 신지도 않는 굽이 높은 부츠였어요.


사고 나니

기분이 좋았냐면...


그렇지도 않았어요.


'내가 미쳤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돈을 아끼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떻게 아낄까 고민을 하다가 

방법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인터넷에서 아끼는 방법에 관한 팁을 찾아보기도 하고

도서관에 가서 절약 관련된 책을 빌려와서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사실 웬만한 건 다 해본 것들이고 

잘 몰랐던 것들 위주로 실천해 보기 시작했어요.

잘 몰랐던 내용은 주로 맞벌이 부부일 경우, 신혼부부일 경우 

어떻게 돈관리를 하는가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맞벌이 부부는 각자 돈관리를 하지 말고 한 명이 주도적으로 관리할 것


오케이.

경제관념이 조금이라도 나은 제가

남편의 수입까지 관리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제가 돈관리를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어요.

남편이 월급을 이체할 때

본인 용돈, 보험, 기부금 등을 제외하고 

저에게 보내주었습니다.

그 액수가

남편 월급의 절반도 안되었거든요.


이맘때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남편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이가 있으면 차를 사야 한다면서 

마침 선배님 중에 차를 팔려고 하는 분이 계시다고 하더군요.


차를 사자고?!


오 마이 갓.

이전 02화 밥솥도 두 개, 청소기도 두 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