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하게 그려왔던 환상이 깨질 때
’ 만약 내가 아빠가 되면 애가 놀아달라면 무조건 놀아주고 사달라는 거 잘 사주고 사춘기 때에도 허물없이 지내는 부자지간이 될 거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아빠가 있다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을 꿈꾸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친구 같은 아빠가 되려다가 그런 아빠는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친구 같은 아빠’는 어떻게 완성될까. 그런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 아이를 절대 강하게 훈육하지 않고, 좋은 말로 타이르면 또 아이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아이도 장난은 치겠지만 선을 넘지 않고...
옹알옹알 거리는 두 살 세 살 때에는 아빠가 아이의 제1의 타인이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으니 아이는 엄마가 ‘내꺼’라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아빠는 어쨌거나 타인인데, 갓난쟁이 내 아빠가 아이 눈에 자주 밟히면 어쨌거나 정서엔 좋다고 한다. 아이의 사회성에 도움이 되겠지 싶긴 하다.
당시 어찌나 친구처럼 놀아줬는지 옛날 동영상들을 돌아보면 ‘내가 어떻게 저런 체력이 있었나.’싶다. 쌀 뿌리고 뒹굴고 엎지르고 매번 열을 올렸는데, 사실 오바다 싶을 정도였고 심하게는 아이가 느낄 때 공포영화처럼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목청은 컸다.
그러다가 점점 체력이 방전되어갔다. 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놀이터에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처럼 깔깔거리며 놀다가 집에 돌아오면 미동도 안 하고 커피만 마시다 낮잠에 들었다. 와중에 짜장면 값이 아까워 짜파게티 두어 개 끓여 먹고 퍼 젔던 때가 생각나네. 아무튼.
지금은 마지못해 놀고 있다. 아이의 화를 잘 못 받아주겠다. 나는 참을성이 없어졌고 아이는 유치원에 간다. 여전히 우리 부자는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이 느슨한 끈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너무 친구같이 살았나 싶다. 짧은 5년의 육아기간 동안 너무 천방지축 놀았나? 주 잡듯이 잡으면서 키웠어야 했나? 물론 그렇게 다짐한다 했을지라도 나는 내 성격대로 철없이 키웠을 것이다.
항상 우리 아들은 남들보다 자조능력이 떨어졌다. 다들 신발을 혼자 신을 수 있을 때 우리 아들은 두 어달 늦었다. 지금도 밥 먹는 건 혼자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잘 크고 있는 게 보이는데 같이 마주 할 시간은 적어지고 그럴 시간을 나 스스로 확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게 또 큰 문제다.
친구 같은 아빠를 떠나서
이제는 포용할 수 있는 아빠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는 시기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