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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지은 거 아니야. 그러니까 죄책감 갖지 마."

[조직의 단말쓴말] 실패할 때마다 자책하는 이를 위한 단말

by 이준유

정신분석학에는 '초자아(Super-Ego)'라는 개념이 있다. 보통 자아를 감시하는 심급으로 설명하는데, '양심의 삼각형'이나 '마음속 훈육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즉, 내가 무언가 하려고 했을 때 검열하고 감시하는 심급인 것이다.


초자아가 거의 발달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초자아가 굉장히 발달해서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심한 사람이 있다. 바로 나 같은 사람이다. 사실, 초자아가 발달할수록 일에 대한 완성도나 학습능력은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니까, 누가 가르치거나 닦달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기 계발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타입이 '당근 없이 채찍질만 하는 타입'의 상사를 만났을 때 발생한다.


가장 이상적인 타입의 상사는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는 타입이겠지만, 그런 타입을 본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아주 주관적인 경험에 의하면, 50%는 채찍만 휘갈기는 타입이고 40%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타입이었다. 오로지 10% 내외의 상사만이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섞을 줄 아는 타입이었다. 아마 이 부분은 대다수의 직장인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한다.


이렇듯 채찍을 선호하는 상사가 많은 '조직'에서,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사람은 과연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신나게 혼나고 돌아와선 '역시 난 쓰레기야.', '왜 이런 일 하나 못 하지?', '난 구제불능일지도 몰라.' 하며 자책한다. 분명 뭇사람들이 보기에 그 정도까지 쓰레기는 아닌데, 스스로 자신을 박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타입이었고, 또한 이런 경험을 겪었다. 내가 경험한 최초의 관리자는 채찍질로 정말 유명한 관리자였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아직까지 자살한 사람이 안 나온 게 신기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어느 날은 출장을 갔는데,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 나를 보자마자 한 말이 이거였다. "너 괜찮냐?" 손을 꼭 잡은 것은 덤.


하지만 그 관리자보다 더 많이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조금이라도 혼나는 일이 있으면 자리에 돌아와 엄청나게 자책했고, 무엇보다 나 때문에 깨진 사수나 중간 관리자에게 큰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다 참다못해 터진 날이 있었다.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어떤 일의 결과로 말미암아 나는 먼지처럼 털렸고, 자리로 돌아왔다가 서러운 마음에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눈이 펄펄 내리는 것을 보며 옥상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어깨 위로 눈이 쌓이는 것을 느꼈다. 추운 줄도, 젖는 줄도 모른 채 한껏 자책을 하다가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그 관리자가 나를 불렀다. 아마 옥상에 올라가기 전 표정에서도 드러났겠지만, 잠깐 사이에 어깨와 머리가 젖은 걸 보더니 당황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죄지은 거 아니야. 죄책감 갖지 마.


그때는 이 말이 그저 서럽게만 느껴졌다. 한껏 죄책감을 느끼고 돌아왔는데 그러지 말라니. 이미 실컷 혼내놓고 잘못한 게 없다니, 어디에 장단을 맞추라는 거야?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 말은 모든 일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마인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그 꼬장꼬장한 관리자로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일에는 대부분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있다. 그래서 성공하면 '잘한 것'이고, 실패하면 '잘못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정답은 아니다. 일의 성공과 실패가, 그 사람의 인격적인 부분을 건드릴 필요까진 없기 때문이다. 즉, '죄책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큰 잘못을 저질러 일을 망칠 수는 있다. 여기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갖는 태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한 죄책감을 느끼며 마치 모든 잘못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처럼 과하게 자신을 공격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태도가 아니다. 일은 나의 인격이 될 수 없으며, 일은 일로서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일과 인격을 완전히 분리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역시 일보다 사람이 우선이다. 사람이 있고 일이 난 거지, 일이 있고 사람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러한 당연한 진리를, 가끔은 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성공과 실패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잘못했을 경우 제 살을 깎아먹기까지 하고 드물게는 나름대로 책임을 지겠다며 목숨을 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 '목숨을 버려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니, 없다. 대부분의 일은 어쨌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혹시 해결되지 않는다면 돈이 모자라지 않았나 생각해보라).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돈보다는 생명이 훨씬 소중하지 않는가?


그러니 늘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하자. 때론 실패할 수도 있으니, 고통스러울 정도로 죄책감을 느낀다면 잠시 일에서 나를 분리하자. 시간이 된다면 이런 주제로 명상을 해도 좋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잘못된 건 그냥 세상일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때의 경험은 나에게 악몽이면서 동시에 발판이 되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할 정도로 힘겨웠지만, '일과 인격의 분리'를 위해 무던히 애쓴 결과 요즘에는 어떤 일을 하든 어느 정도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면 내가 했던 가장 자랑스러운 일조차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자책하고 후회했던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결국, 남는 것은 가장 소중한 건 나 자신뿐이다. 내가 하는 일보다도 그 어떤 일보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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