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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사람을 안 봐. 조직을 보지.”

[조직의 단말쓴말] 책임감이 부족한 이를 위한 쓴말

by 이준유

어떤 일이든 첫 삽이 가장 기억에 남는 법이다. 첫 직장에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교육을 받을 때는 스스로 유능한 커리어맨을 상상하곤 했다. 정해진 업무를 뚝딱 해내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일까지 어렵지 않게 도와주는. 아마 신입사원이라면 누군들 그렇지 않았으랴,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역시 견고했고, ‘유능한 커리어맨’ 환상이 깨지는 데에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어렵사리 취재 계획을 잡고 처음으로 출장을 다녀온 날, 팀장님께 된통 깨졌다. 내지는 물론이고 표지 사진도 하나 찍어오는 일이었는데, 팀장님은 내가 자신 있게 내민 ‘표지 사진 후보’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걸 이런 식으로 찍어오면 어떡해?” 팀장님은 그러고서는 하나 하나 지적을 해주었는데, 그때 팀장님의 당황한 눈빛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게다가 들어보니 모두 맞는 말이라, 몹시도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200km를 달려 다녀온 출장은 모두 허사가 되고, 안 그래도 촉박했던 마감일정은 더 촉박해진 채, 새로운 표지사진을 찍기 위해 동분서주해야만 했다.


첫 출장이고 첫 임무고 첫 일이었던 만큼(심지어 나는 사진 전공도 아니었다) 억울한 점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변명을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었다. 제가 잘 몰라서, 제가 처음이라서, 제가 부족해서. 팀장님은 그런 마음을 아셨는지 어느 날 내 자리로 직접 찾아와 조곤조곤 말씀하셨다.


대중은 사람을 안 봐. 조직을 보지.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에는 조직도가 있다. 아니, 사실 조직도가 없는 기업은 없으리라. 그래서 조직에 연락을 취해야 할 때면, 먼저 조직도를 들어가서 담당자의 직급과 업무를 확인해본다. 그런데 우리는 ‘직급’과 ‘업무’는 확인하지만, 그 사람의 ‘이름’이나 ‘나이’, ‘경력’, ‘능력’, ‘성격’ 등은 확인하지 않는다. 확인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이는 다시 말해, 우리가 조직에 속해 있다면,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더라도 그것은 ‘조직의 변명’이 될 뿐 ‘개인의 변명’으로는 비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만약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하자. 어지간한 큰 일이 아닌 이상, 사람들은 ‘어느 조직의 누구’가 아니라 ‘어느 조직’으로 인식한다. 이것이 조직의 법칙이다. 조직 안에 속해 있을 때는 ‘나’와 ‘너’, ‘팀장님’ 등 개개인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대중들이 인식하는 것은 그러한 개인이 아니라 조직 그 자체이다.


어찌 보면 개인으로서는 감사한 일일 수도 있다. 내가 한 일에 온전히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조직에 근무하는 이상, 한편으로는 나의 행동과 생각이 조직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성공한 스타트업 CEO들이 간혹 추락하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이다(우버의 CEO가 좋은 예다). 본인은 그저 개인으로서 행동했을 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을 보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조직을 진심으로 아낀다면 혹은 자신이 조직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면, 반드시 기억하시길. 사람들은 '나'가 아니라 내가 속한 '조직'을 본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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