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도, 육아도 .... 나는 그저 신입이었다.
결혼식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이리저리 손님을 맞이하고 바쁜 와중에 결혼식 전날 면접 본 특허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 결과 최종 합격했고, 언제부터 출근 가능한가요?"
"아!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런데, 제가 오늘 결혼식이어서요. 출근은 신혼여행 다녀오고 가도 될까요?"
그래도 식 올리기 전에 연락 받아서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합격 연락은 받지도 못할 뻔 했다.
지방에서 엔지니어로 살아가다가 이제는 서울로 출근하게 되었다.
합격 연락을 받고도 실감을 하지 못했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어느새 식장 안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렇게 결혼식이 마무리되었다.
누가 그랬었다.
결혼식날은 정신이 없어서 누가 다녀갔는지도 모른다고
결혼식이 끝난 시점...
누가 오고 갔는지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왜 나는 모든 것이 기억나는 것일까?
꼭 올 것 같은 사람들은 오지 않고,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은 또 오기도 하고,
그들이 원망스럽기도 했고, 또 고맙기도 했다.
이렇게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듯 싶다.
다행스러운 건 결혼식 다음날 떠나게 된 신혼여행 덕에 상당히 여유로운 저녁을 맞이했다.
식장 근처에서 가볍게 뒷풀이에도 참석하고,
여유있게 신혼집으로 이동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누구나 신혼 첫날밤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겠지만,
실제 그 상황이 되면 체력은 바닥나고, 피곤에 쩔어 잠에 든다는 사실을...
부리나케 새벽녘 인천공항으로 이동했고,
면세점에 들렀으며,
비행기 시간에 딱 맞추어 탑승하고 나면....
금새 신혼여행지에 도착한 초짜 부부를 만날 수 있다.
신혼여행은 너무 즐거웠다.
돈을 쓰는 기분이 이런 것인가?
더구나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출근할 곳도 정해져있으니.
고민거리가 더이상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얼마 뒤 특허사무소로 첫 출근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사무실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남직원과 여직원의 비율도 비슷했고,
쉴새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와 키보드 소리...
그 외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가끔 미팅을 하기 위해 움직이거나 식사를 하러가자는 소리만 들릴 뿐..
별거 없는 입사 첫날부터 사건이 터졌다.
의욕이 넘쳐서였을까?
나는 머리가 찢어졌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붉은 피가 안경으로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급히 택시를 타고 고속터미널역 가톨릭대 응급실로 이동했다.
머리를 꼬맸고, 이직한 신입직원은 일주일간 머리도 감지 못한 채 출근했다.
다들 놀랬고, 나 역시도 이 자리가 나의 자리가 아닌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또 이렇게 허무하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특허를 써보기는 했지만, 엔지니어 입장에서만 작성해봤을 뿐,
실제 명세사로서는 처음 경험하다보니
초반에 적응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하루하루 익숙해져가는 듯 싶다가도, 이내 수정을 계속해야 했다.
또한, 생각보다 특허 사무소의 업무는 스펙타클했다.
기본적으로 4주 내에 초안을 보내도록 되어 있는데,
현실은 달랐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보통 3일에 한 건. 그것도 매번 새로운 기술이었다.
머리는 뜨겁고 손은 차가웠다.
신혼이라는 이름과, 통근거리가 꽤 멀다는 이유로 칼퇴근을 하고,
늦은 밤 혹은 주말에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문득 거울을 보니, 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 걸 알아차렸다.
“내가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분만실에 들어가 있었고, 아이가 태어났다.
무겁고 낯설지만, 분명한 현실.
나는 이제 한 생명의 보호자였다.
그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신기했다.
어쩜 이리 날 닮은 건지....
웃음이 나기도 하고, 이유없이 우는 모습을 보면 한없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도대체 왜 우는 건지 알려줄 수는 없는거니?
연차가 더해갈수록 일은 더 많아졌다.
특허도 써야하고, 특허 분석 업무도 해야했다.
시간은 갈수록 쫓겼고, 육아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아침 6시에 출근하고 퇴근하면 낯가림 심한 아이의 어두운 표정을 마주해야했다.
낯선 인간이 어둑해질 무렵 평온한 집에 들어와 자신을 안으려 하니 무서웠나보다.
유일하게 기저귀를 갈 때만이 나에게 몸을 맡기는 시간이었다.
그마저도 ‘시원해서’ 그런 듯 보였다.
말도 못하는 아기와의 거리감은 묘하게 마음을 할퀴었다.
‘이 아이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어느순간 아이도 아빠라는 존재를 인식했는지
놀아주면 가끔 웃어주기도 하고 안기기도 했다.
특허도, 육아도 그저 신입이었는데,
점점 노하우도 생기고,
하나의 루틴이 생겨나면서 나는 다시 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느즈막히 아이를 재우고, 나는 뒷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설거지를 하고, 컴퓨터를 켠다.
아내가 아이를 재우는 동안 낮에 못한 업무를 한다.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일을 하느라, 정작 나 스스로의 삶은 설명할 여유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잠든 아이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중요한 건, 지금 여기 아닐까.’
회사가 아닌, 가정. 월급이 아닌, 시간.
그날 이후, 나는 서서히 ‘다른 삶’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다음 화 예고: “결국, 나는 다시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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