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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 Oct 19. 2021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준걸까?

내 불안의 아킬레스건  

 

 내가 나의 불안에 대해 한동안 가장 천착했던 주제는 바로 '불안의 기원'으로 그것은 아주 지난한 여정이었다. 나는 내 불안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명명백백히 밝히고자 했다. 선생님은 지나치게 단편적인 에피소드들 하나하나를 열거하며 이것도 불안이었을까요? 저것도 불안이었을까요? 이 때부터였을까요? 제가 눈치를 못 챈걸까요? 묻는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앞서 말해왔듯이 나는 베테랑 환자였다. 상담실에서 할 이야기와 안 할 이야기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다. 가령 초등학교 2학년 때 쯤, 불을 다 끄고 자려고 누운 방 안에서 가만히 누워 천장을 쳐다보다가 일어난 나는 벌떡 일어나 책상 앞에 서서 책상 위에 올려진 책과 학용품들을 다시 한 번 가지런히 정리했다. 그것들은 정리가 필요없는 물건들이었지만 나는 모든 물건들의 귀퉁이들이 평행이 되도록 열과 행을 맞췄다. 아마 그 날 밤 두세 번 정도 그 일을 반복했던 것 같다. 어렸을 적의 나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정리강박이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도록 했고 어떤 물건이든 사용한 즉시 사용하기 전의 상태로 돌려놓아야 했다. 강박이 불안의 일종이라는 것을 나는 불안장애 진단을 받은 후에 알게 됐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이것 외에도 꽤 여러 면에서 약간의 강박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불안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게 잠재되어 있었다는 가설을 세웠다.  

 

 내가 내 불안의 기원에 집착하는 것은 내 원가족과 문제가 있거나 그것이 내게 중요한 열쇠라서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는데 불안장애 진단을 받은 다음 해에 나는 퇴사를 했고 그 해에 임신을 했다. 출산을 앞둔 나는 남몰래 불안해했다. 아이가 나를 닮으면 어떡하지? 그 때부터 나는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원해 내 유년시절을 멀리서 또 가까이서 톺아보는 것을 취미로 삼기 시작했다.    


 바당이는 (나를 닮아) 감각이 예민한 편이다. 특히 청각, 촉각, 시각이 그랬다. 소리에 굉장히 예민해서 어렸을 적엔 조금만 큰 차가 지나가도 힘들어했고 기차역에 가면 크게 무서워했다. 어두운 곳도 그랬다. TV 화면을 1시간 정도 봤다 싶으면 눈을 깜빡이고 비비며 피로해하고 처음 보는 화면은 잘 보지 않으려고 했다. 미각과 후각도 보통에 비하면 예민한 편이지만 아주 심각한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아니다, 쌀이 바뀌면 밥을 절반밖에 안 먹는 애를 두고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 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예민한 내가 보기에 그건 별 이슈가 아니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아이는 처음 가는 곳을 힘들어했다.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일단 사람을 처음 만나는 순간이면 일시적으로 긴장도가 확 높아진다. 어떤 공간이든 사람이든 적응하는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편인데 그래도 기관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단축되긴 했다. 이런 부분들 역시 어렸을 때 나와 상당히 비슷한 편인데 그 불안을 모두 삼켜서 침착함과 수줍음으로 가장했던 나와는 조금 다르게 바당이는 다소 과장된 표현을 하는 쪽인 것 같다. 사람을 만나면 평소에 전혀 안 내던 하이톤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거의 나만 알아들을 수 있다.) 저 멀리로 뛰어가버린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학기 초처럼 낯설거나 같은 반 아이와 트러블이 있어 불편한 상황이 지속되는 시기에는 눈을 깜빡이거나 손가락 끝의 살갗이 벗겨질때까지 꾹꾹 누르고 만져서 혹시 틱인가 싶었던 때도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 시기가 지나면 사라지는 편이었고 전문가나 책을 통해 예민한 아이의 긴장도를 낮추는 여러가지 방식을 시도하면 잦아들곤 해서 상담센터나 진료를 받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언젠가는 그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는 편이다. 


 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가 나와 똑같은 모습을 보일 때 미치겠고 괴로워한다는 말이 있다. 알 것 같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나를 닮은 작은 존재에게서 보일 때, 어떤 종류의 잔잔한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정말 별로라고, 정말 싫다고 생각해온 부모의 어떤 점들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빼닮은 걸 알아차리던 순간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것이겠지? 약간의 자괴감 같은 것. 어쩔 수 없구나. 피는 못 속이는 걸까. 뭐 그런 마음 말이다. 하지만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바당이가 나쁜 꿈을 꿀까봐 무섭다며 한 두시간씩 잠에 못 들던 시기에, 원에서 안전교육영상을 본 후로 하루에 한 오십번씩 시도때도 없이 누가 자길 잡으러 오면 어떡하냐고 묻고 급기야 밖에 있는 게 무서워서 산책도 빨리 끝내고 어서 집에 들어가고 싶어하던 시기에, 나는 내가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는 기쁘게 그 순간을 맞이했다. 기쁘다니 이상한 말이지만 정말로 그랬다. 이 정도의 불안은 내가 해결할 수 있고 다룰 수 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양육자로서는 약간의 효능감도 느꼈다. 게다가 가 그렇게 묻고 또 묻는 것도 너무나 이해가 갔다. 괜찮을 거라고, 아무 일 없을 거라고, 비슷한 말을 하루에 한 두시간씩 백번씩 해야 하는 것도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나 혼자서도 어차피 맨날맨날 하는 말이다. 청자가 둘이 됐을 뿐이었다. 아무 일 없을 거라는 거 알지만 계속해서 누군가로부터 확인받고 싶고 그래도 또 물어보고 싶고 그렇게 묻고 또 물어도 계속 그 생각이 맴도는 그 서클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괜찮았다. 한편으로는 결자해지의 마음도 있다. 남편은 불안한 사람이 아니다. 정말로 단단한 사람. 나무같은 사람.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을 좋아했고 좋아하고 마음 깊이 그런 면을 동경한다. 아이도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랐는데 바당이는 그런 부분에서 영락없이 나다. 바당이가 만약 불안하다면 그것은 100퍼센트의 100퍼센트로 나 때문이니 내가 해결하겠다는 비장한 마음도 있다.   


 하지만 얼마전에는 그런 마음만으로는 버티기가 힘든 날이 있었다. 잠자리에서, 나는 이 쪽 침대에 바당이는 저쪽 침대에 조금 멀찍이 떨어져 누워있는데 바당이가 불쑥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자기는 엄마가 늦게 오는 날에는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서 헤어지는 생각을 하면서 꾹 참는다고 말이다. 내가 이 말을 못 알아들었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이것이 어떤 말인지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짐짓 모르는 체를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 슬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바당이는 자기는 그렇게 우리가 더 오래 떨어져 있을 때를 떠올리면 좀 괜찮다고 했다. 나를 조금 늦게 만나야 한다는 데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불안을 처리하기 위해 나와 영영 헤어질 수도 있는 때까지 떠올려야 한다니. 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울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이런 것까지 유전이 될 수 있는걸까? 바당이의 흐름은 정확히 내 것과 똑같다. 어떤 일 때문에 불안이 치솟을 때 나는 바로 최악으로 달려간다. 가령 엄마가 건강검진에서 조금 좋지 않은 소견을 받았다고 하면 곧장 엄마의 장례식에 서 있는 식이다. 혹시 지금 당장 그런 일이 벌어진대도 나는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거야 하면서 지금 상황을 덮어버린다. 그게 내가 불안한 나를 잠재우는 방식이다. 지금의 불안을 더 큰 불안으로 감춰버리는 기괴한 위안인데 솔직히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이런 식으로 계속 생각하면서 살아도 괜찮은건지 아닌건지 모르겠다. 그저 이렇게 흐르는 내 생각을 막을 수 없을 뿐이다. 그런 채로 이미 오랜 기간을 살아와서 사실 다른 방법을 모르겠다. (이런 사고는 불안장애 진단 전에도 있었다. PTSD 진단 전에 있었는지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시 이것도 PTSD의 영향 아래서 생긴 것일까?) 그런 생각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힘이 내게 있을까? 사실은 다른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곤 하는지 오랫동안 궁금했다. 내 주변의 아주 믿을만한 사람, 나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매일을 나누는 친구 둘에게 이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나만의 기발한 방식인 듯 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을 드디어 찾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바당이에게도 나처럼 불안의 고속도로가 있는걸까? 그건 유전일까 아님 내가 만든걸까? 

 그 말을 할 때 바당이는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슬퍼보이지도 심각해보이지도 힘들어보이지도 재미있어보이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그런 얼굴을 할 때는 아주 드물다. 나는 가끔씩 아이가 그렇게 말간 얼굴을 할 때면 그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는 편이다. 그리고 그 날 바당이의 얼굴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어쩔 수 없는 서글픔이 몰려왔다. 


 불안은 정말 유전되는걸까. 그렇다면 내가 내 아이에게 뭘 물려준걸까, 하는 근원적인 불안이 내게는 있다. 그리고 사실상 내게는 그렇다는 증거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임신 내내 아이가 남편 성격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우스갯소리처럼 했지만 거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좋아하지만 나의 모든 면을 좋아하지는 않으니까. 나의 모든 면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나는 늘 궁금했다. 내가 불안장애를 겪게 된 건 스물 아홉살의 일이었다. 그 때 엄청난 기억력과 추리력을 총동원하여 아무래도 불안의 싹이 내 안에 있었다는 가설을 세우긴 했지만 그걸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럼 어쨌든 내게는 불안의 유전자가 있는 것일까?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어떤 환경적 조건에서 트리거가 눌려 발현된 것일까? 그럼 아이도 비슷한 상황에서 나처럼 불안한 사람이 되는 것일까? 불안의 유전자(라는 것이 만약 있다면)를 가진 사람이 평생동안 불안발작을 경험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모두가 결국에는 불안장애환자가 되는 것일까? 기타등등 기타등등. 나는 내 불안 그 자체보다도 아이의 불안, 나의 불안과 아이의 불안 사이의 관계, 역동, 우리의 미래 등등에 대해 더 많이 불안해했다. 그러니까, 내 불안의 아킬레스건은 아이인 셈이다. (불안이라는 유전자가 있다면) 나와 그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단 하나의 존재. 


 결론적으로 불안은 유전된다. 유전될 수 있다. 유독 우울이나 불안을 자아내는 하강나선에 익숙한 뇌가 있다고 한다. 나는 그런 내용들을 읽을 때마다는 좀 처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 이것이 현대과학이 밝혀낸 진실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끔은 억울하고 분하기까지 하다. 우리집의 유전자 믹스는 도대체 왜 이 따위로 된 것일까? 반반이라도 섞였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야, 그 정도 섞여서 저 정도인건가? 아이의 불안이 환경, 즉 양육의 결과가 아니라고 해도 죄책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이 경우엔 그 유전자를 물려준 것 역시 나인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불안이 아무리 진화의 결과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활성화된 불안이 이렇게 대물림 되어 살아남아야 할만큼 중요한 것일까. 아포칼립스 시대를 대비하는 것인가. 유전자의 큰 계획을 나로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조차 없다. 


 남편은 그렇게 말했다. “유전을 그렇게 운명론적으로 해석하면 곤란해. 그게 어떤 환경을 만나서 어떤 복합적 맥락속에서 발현되느냐를 전혀 간과한 거라고. 유전은 반드시 그런 삶을 살게 된다는 결정론이 아냐.” 나보다 유전학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이들이 반복적으로 내게 해 온 말이다. 선생님도 그랬다. 모든 것이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다고 이야기해버리면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이다. 물론 나도 동의한다. 그 쪽이 옳은 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아직 다 받아들이고 있지 못할 뿐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유전이 운명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내가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한들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는 말이기도 한 것은 틀림없다. 기질은 대물림되며 그것은 인간의 의지나 환경, 양육 등이 개입할 수 없는 생물학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유전자와 환경은 복잡한 함수식으로 이루어져있다. 아주 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그 수식을 푸는 것은 아직까지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오, 차라리 영원히 비밀에 부쳐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많은 것을 결국엔 받아들이게 됐듯이, 이것도 언젠가는 그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내가 갖게 된 좋은 것들을 떠올리는 일이다. 나에게 사랑받고있고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을 주면서도 나를 언제나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대해준 부모를 만난 일,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대학생때까지 만난 나의 사랑하는 여자친구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사람들, 대체로 재밌고 즐거웠던 학교와 회사생활, 한 사람과 이토록 오랜 시간동안 서로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우정, 사랑, 존경, 연민같은 것들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나의 남편,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주는 우리집 어린이와 개. 어쨌든 나를 이 생에 붙잡아두는 것들 말이다. 그들 덕분에 나는 여전히 내 삶이 꽤 괜찮다고 느끼며 좋은 것 속에 나쁜 것이, 나쁜 것 속에 좋은 것이 있다는 제법 어른스러운 생각도 하며 이렇게 불안한 내 삶 곳곳에 행복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늘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내 노력과는 무관하게 이번 생에서 나에게 보너스처럼 주어진 것이다. 내게 운이 나쁜 일들이 벌어진 것과 정확히 똑같은 원리로 말이다. 그것들 덕분에 내가 그래도 불안이라는 불운 속에서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아주 잡아먹히지 않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삶에 구멍은 있는 것. 미친 사람처럼 그 구멍을 채우려 해서는 안 된다는 걸.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게 그냥 두고, 내게 주어진 기쁨들을 크게 누리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것이 무기력이나 비관주의, 혹은 회피가 아니라 삶을 지속하기 위한 실용주의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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