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에서부터
가을이 시작되었나 보다.
골목길을 걷다 문득,
가로수들이
조용히 옷을 갈아입는 걸 보았다.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햇살도 어쩐지
조금은 느릿해진 듯했다.
집 앞, 한여름 내내
활짝 피어 있던 수국은
다음을 기약하듯 고개를 떨구었다.
그 모습이 왠지,
안녕이라 말하는 듯해서
잠시 멈춰 섰다.
내 발밑 낙엽 몇 장 때문일까,
아니면 마음속 어딘가
이미 가을이 도착해 있었던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회색달은 아직 완전히 알지 못하는 나 자신을 담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달빛입니다. 나는 이 빛을 따라 조금씩 나를 알아가고, 언젠가 더 선명한 빛으로 나아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