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포인트

by 회색달


두 번째 서브를 넣기 전, 나는 공을 세 번 더 바닥에 튕겼다. 손바닥은 땀이 차서 그립이 미끄러웠다.

방금 전 어프로치 샷이 네트에 걸렸다. 각이 나쁘지도 않았는데, 그냥 한 박자가 늦었다. 파트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괜히 더 신경 쓰였다.


테니스 코트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건 공을 넘기는 법이 아니라, 공이 넘어가지 않았을 때의 표정을 관리하는 법이다.

경기 중 실수는 반드시 나온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고개를 숙일 것인가, 아니면 다시 준비할 것인가.


축구에서 골을 넣기 위해 선수들이 수없이 슈팅을 반복하듯, 테니스 역시 성공은 단 한 번의 완벽한 샷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경기는 상대를 무너뜨리는 과정이기보다, 내 실수를 통제해 가는 과정에 가깝다. 상대를 어떻게 흔들 것인가 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 사람인 가다.


특히 복식경기에서는 그 사실이 더 분명해진다.

어프로치 샷을 한 번 실수했다고 해서, 다음 포인트에서 뒤로만 물러설 수는 없다. 네트 앞으로 나갔다가 허무하게 점수를 내주더라도, 다시 같은 선택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멈추는 순간, 경기는 거기서 끝난다.

테니스는 실패하지 않는 사람의 스포츠가 아니라, 실패 이후에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의 스포츠니까.


그래서 나는 ‘실패’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생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시도라고.

시도를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실천은 생각보다 단순하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다.


첫째는 한 가지 방법으로만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테니스는 지독한 유산소 능력을 요구한다. 긴 랠리를 버텨야 하고, 순간적으로 폭발해야 한다. 코어가 무너지면 스트로크는 흔들리고, 지면을 밀어내는 힘이 없으면 풋워크는 늦어진다.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과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체력이 떨어지면 기술이 먼저 무너지는 게 아니라, 판단이 먼저 포기한다는 걸. “이번엔 그냥 넘기자”, “앞으로 나가지 말자” 같은 생각이 먼저 든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주저앉는다.


그래서 코트 밖의 연습도 중요해졌다. 나는 책을 읽는다. 독서를 통해 호흡을 늦추고, 생각을 정리한다. 마음을 다루는 연습은 경기 중 가장 비싼 포인트를 지켜준다. 통제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되는 것이다.


둘째는 실패의 지점에서 멈추지 않고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경기가 끝나면 결과보다 과정을 적는다. 왜 그 코스를 선택했는지, 그때 발은 어디에 있었는지, 판단이 빨랐는지 늦었는지. 기록의 목적은 반성이 아니라 분석이다. 기록에 집중하다 보면, 실패는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가 된다.


데이터는 다시 시도할 수 있게 만든다. 원인을 알면, 다음 시도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전진이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 「만약에」는 말한다.

모든 것을 잃고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한 사람의 인간이 된다고.


나는 이 문장을 테니스 코트에서 다시 배운다.

포인트 하나에 매달리지 않고, 시도의 흐름을 이어가는 사람. 그 사람이 결국 경기를 끝까지 가져간다.


이와 비슷한 결을 지닌 문장으로는 새뮤얼 베케트의 말이 있다.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이 문장은 실패를 미화하지 않는다. 다만 실패를 멈추는 이유로 삼지 말라고 말한다. 실패는 종착지가 아니라 통과 지점이라는 사실을, 짧고 단단하게 남긴다.


나는 오늘도 코트에 선다. 잘하겠다는 마음대신, 어제 실패한 부분에서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 보겠다 다짐할 뿐이다.


실패는 없다. 오직 성공에 도달하기까지의, 무수히 많은 시도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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