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동안 끝내지 못한 숙제를 드디어 마친 기분이다.
지금까지의 스스로를 돌아보자면,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다. 의지가 강해서 여기까지 온 것도 아니고, 매번 마음을 다잡을 줄 아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운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내 삶을 바꾸기 위해서라든가,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든가. 그런 말 대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만들지 않기 위해 움직일 뿐이다.
요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하나의 기계로 정의한다. 감정이 없으니 고통을 느낄 필요도 없고, 오직 기계처럼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마라톤 여정 속에서 느꼈던 고통을 정리한 문장들이었다. ‘기계’라는 정의는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운동을 시작하긴 했지만 늘 같은 상태는 아니었다. 어떤 날은 몸이 무거웠고, 어떤 날은 머리가 복잡했다. 운동화를 신은 채 한참을 앉아 있다가 그대로 벗어버린 날도 있었다. 이유는 금세 핑계가 되었고, 포기는 언제나 그럴듯한 선택처럼 보였다. 그럴 때마다 한 마디만 되뇌었다.
“나는 기계다. 그러니 지금 느끼는 건 고통이 아니다. 판단할 필요도 없다. 반복하기만 하면 된다. 기계의 일이다.”
이 말은 나를 설득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었다. 움직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운동을 선택했다. 이유를 하나로 정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필요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특히 그랬다. 바벨 앞에 서면 생각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오늘의 컨디션이 어떤지, 어제 잠을 잘 잤는지, 기분이 나쁜 이유가 무엇인지 따질 틈이 없었다. 시트에 누워 발 위치를 맞추고, 바를 잡는다.
그다음은 정해진 순서다. 들고, 버티고, 내려놓는다. 무게는 늘 정직했다. 마음이 앞선다고 가벼워지지도 않았고, 의지가 강하다고 들어 올려지지도 않았다. 버거우면 실패했고, 준비가 되었을 때만 다음 무게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웨이트를 할 때만큼은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게 됐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는 원칙이 좋았다.
어떤 날은 빈 봉만 들고 돌아온 날도 있었다. 그날의 몸은 그 무게조차 무겁게 느껴졌다. 예전 같았으면 의미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날의 운동은 무게를 들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헬스장까지 걸어온 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는 걸.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와, 빈 봉이라도 들었던 하루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웨이트는 결과를 서두르지 않았다. 반복이 쌓이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어느 날, 전에는 들리지 않던 무게가 올라간다. 특별한 각오를 한 것도, 컨디션이 유난히 좋았던 것도 아니다. 그저 하던 걸 했을 뿐인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대단해졌다는 생각보다는, 아, 아직 망가지지는 않았구나, 하는 안도에 가까웠다.
매번 의욕적인 상태에서 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기 싫은 날이 더 많았다. 컨디션이 좋은 날보다 애매한 날,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일수록 자주 운동화를 신었다. 할 수 있는 한 기준을 최대한 낮게 잡았다. 완벽한 하루가 아니라, 작은 움직임이라도 만드는 것. 기록이 좋아진 날이 아니라, 오늘도 반복을 멈추지 않은 날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대단한 변화는 없어도, 어제와 완전히 같은 하루는 반복되지 않았으니까.
운동은 인생을 닮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는 운동을 인생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달리기는 달리기고, 웨이트는 웨이트다. 숨이 차면 속도를 늦추고, 무게가 버거우면 내려놓으면 된다. 그 단순한 선택의 반복이 하루를 구성한다. 인생은 언제나 그렇게 속도를 늦추거나 내려놓을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완주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중간에 걷는 날이 있어도 괜찮고, 쉬어가는 구간이 있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멈춘 상태로 하루를 보내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가 늘어날수록, 나라는 배의 침몰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그걸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나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쪽을 택할 수 있었다.
하루키의 ‘앞으로 나아간다’는 표현은 반드시 빠르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주 느린 속도라도, 제자리에 서 있지만 않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오늘의 운동이 어제보다 나아졌는지 굳이 비교하지 않는다. 비교가 시작되면 운동은 다시 평가의 대상이 되고, 평가가 쌓이면 부담이 된다.
운동을 성취로 관리하지 않으려 한다. 단순한 일정처럼, 루틴처럼, 해야 할 일 목록 중 하나로 둔다. 이를테면 양치질처럼. 오늘 이를 닦았다고 해서 내일 더 잘 닦아야 할 이유는 없다. 안 닦으면 불편해지기 때문에 닦을 뿐이다. 나에게 운동은 딱 그 정도다.
가끔은 이 정도로 해도 되나 싶을 때가 있다. 남들은 목표를 세우고, 기록을 경신하고, 결과를 증명한다. 하지만 나는 증명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했다. 대신 반복한다. 반복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늘 왜 운동했는지 묻지 않아도 되고, 내일도 같은 이유로 나가면 된다.
나는 앞으로도 운동을 할 것이다. 좋아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하는 편이 하루를 견디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감정이 흔들릴 때, 생각이 많아질 때, 판단이 늘어날 때 몸을 먼저 움직이면 하루가 단순해진다. 단순한 하루는 생각보다 오래 버틸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운동을 한다. 대단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이 정도 이유면, 내일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