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달리 Mar 25. 2024

내 삶의 경쟁상대는, 바로 나!

턱걸이가 가르쳐준 삶의 노하우

“이번 시험에서도 우리 반 꼴찌는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야 공부쟁이!”

 “야. 쟤가 무슨 공부 쟁이야, 꼴찌 쟁이지”

 “......”

 “그만해라! 좀. 나라고 꼴찌 하고 싶어 하겠냐.”


말은 쉬웠다. 스스로 이번 시험에서도 ‘꼴찌’를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전교 꼴찌를 도맡아 했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공부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나였다. 내신 점수도 웬만큼 나왔기에 지금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에서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전의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것. 중학교 때야 그 지역에 있는 초등학생이 모여 입학하지만 내가 입학한 고등학교는 달랐다. 학교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수준별 학습은 물론, 기숙사 시스템까지. 방학 때면 선생님들까지 남아 유명 대학교에 한 명이라도 더 입학시키려는 열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그땐 이곳에 입학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이사를 오는 경우도 많았을 정도였다. 그러니 다들 공부에 진심이었을 수밖에.


 ‘아니, 다른 애들은 방학 때 과외도 따로 받는다는데, 나는 왜 안 시켜주냐고!’.

처음엔 부모님께서도 ‘별 핑계를 다 댄다.’라고 하셨지만, 매번 시험 성적표를 가져다 드릴 때마다 굳어지셨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그럴 때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가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 교과서를 열심히 읽었다. ‘도대체 이건 무슨 내용이야.’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부터 같은 반에서도 영어와 수학, 과학, 국어 과목은 수준별 학습이 진행됐다. 말 그대로 성적순으로 일 등부터 꼴찌까지 이름을 나열해서는, 절반을 나누어 성적이 상위에 있는 이름은 A반, 그렇지 못한 이름은 B반으로 나뉘었다. 이런 교육 방식이 어떻게 생각하면 잔인하고 비인간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당시에는 적절한 ‘경쟁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교육 방식이었다. 물론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을 뿐이지만.


 2학년부터는 모든 반 학생이 뒤섞였다. 한 반에 대략 40명. 수백 명이 쉬는 시간만 되면 아침 등교했었던 교실을 뒤로하고 자신에게 배정된 교실을 찾아 수업에 참석했다. 1반부터 9반까지 이미 개인별로 알려준 A, B, C, D로 안내된 자신의 점수에 맞추어 교실로 입실. 전교 꼴찌였던 나의 수준은 ‘D’. 점심시간이면 같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복도에서 장난도 같이 치는 친구들은 전부 B 이상이었다.


 처음엔 그러려니 하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자존심이 상했다. ‘나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다들 다른 반에 있는데…….;’ 더 잘하고 싶고, 친구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발버둥일 뿐. 애초에 나누어져 있었던 성적 순위를 바꾸기는 힘들었다.


 야간 자율 학습시간, 숨이 막힌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원래 자리로 돌아와 밤 아홉 시 반까지 이어지는 자율 학습. 개인이 공부하고 싶은 걸 꺼내어 공부하니까, 자율은 자율이다. 단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기 전에는 교실 문을 열지 못하는 것만 빼면. 하루도 빠짐없다. ‘담탱이’ (담임선생님을 지칭하는 은어)는 어디서 빼 왔는지, 이미 교실 앞문에 자리를 폈다. 말 그대로 감시 속 자율 학습인 셈.


 시험에서 매번 우리 반 성적 꼴찌를 번갈아 하던 A와 눈이 마주쳤다. 키가 크고 안경을 쓴 친구다. 지방에서 올라와 학교 기숙사에서 지낸다. 새벽에 일어나 학교 옆 수영장을 다닌다는데 그래서인지 매일 수업 시간마다 잔다. 자존심이 또 상했다. ‘나는 그래도 공부 열심히 한다고 노력하는데, 쟤랑 똑같이 꼴찌나 하고 있으니, 하…….;’


 옆에 있던 친구 C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벽시계를 가리킨다. 어느새 저녁 일곱 시 오십 분. 그러고 보니 매점이 문 닫을 때가 거의 다 돼 간다. 때마침 쉬는 시간 종이 울렸고 나와 C는 교실 뒷문을 뛰쳐나오다시피 해서는 매점으로 달렸다. C는 성적도 좋고 운동도 잘했다. 성격까지 좋아 주변에는 항상 많은 친구가 있었다. 한 번은 C와 붙어 다니는 날 보고 담임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이 화살로 날아온 적 있다.

 ‘야, C랑 누구누구는 공부 잘하는데, 너는 왜 그래?. 괜히 너 때문에 애들 성적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반 평균까지 깎아 먹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처음엔 과연 이런 말을 제자에게 할 수 있는 말인가 싶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당시에는 어디에 말도 못 했다. 그 말이 맞았으니까. 나를 제외하고는 어울리는 친구들 모두 모범생이었는데, 나만 미운 오리 새끼처럼 보였을 수밖에.


 어디로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다. 어른이 된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날 수만 있다면 ‘공부 못해도, 전교 꼴찌 해도 잘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렇게 머리 아프면 포기하고 더 재미있는 걸 찾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뒤로 마음을 다르게 먹기로 했다. 되지도 않는 공부에 스트레스받느니 ‘강제’ 야간 자율 학습이라도 좀 빼면 숨통이 트일 것만 같아 부모님께 솔직하게 말했다. ‘나 도저히 야간에 학교 남아서 공부 못하겠어요.’ 처음엔 완강하던 담탱이도 부모님의 자필 편지와 확인 전화 덕분에 나를 놔줬다. 대신 부모님과 약속한 건 남은 2학년 한 학기. ‘이거라도 어디냐’ 싶었다.


그 시간에 그나마 내가 좋아하던 과목을 혼자 공부했다. 영어와 과학, 두 과목. 교과서를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스스로와 약속한 시각만큼 문장 사이의 글자 하나까지 외워가며 공부했다. 시간이 끝나면 집 근처 시립 운동장으로 가 달리기를 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달렸고 그만큼 혼자만의 공부도 조금씩 완성되어 갔다.


 2학기 기말고사. 두 과목 점수 많이 올랐다. 물론 전체 평균이 오르지 않아 반 순위는 크게 변함없었다. 이번에도 다름없는 꼴찌였다. 그러나 이전과는 분명 달랐다. 이미 정해져 있는 ‘틀’에 있었던 내가 스스로 빠져나와 ‘나만의 틀’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이후 겨울방학 때에도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고 3학년 1학기가 되었을 땐 다행히 성적이 많이 올라 수능 시험을 볼 수 있을 만큼 됐다. 꼴찌라는 불명예 이름표는 다른 친구가 대신했고.     


 유튜브 영상에서 한 남자가 매일 턱걸이하는 영상을 올려놓은 걸 봤다. 백 킬로가 넘는 몸무게를 가지긴 한 남자. 철봉에 매달려 어떻게든 올라가려 하지만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한참을 낑낑대더니 결국 두 손을 놓고 땅에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그의 영상은 멈추지 않았다. 턱걸이는 계속됐고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처음 영상이 공개된 지 한 달째 되던 날, 마침내 남자는 턱걸이 하나에 성공했다. 매번 실패 장면만을 보다가 처음으로 성공한 그의 환희에 나 역시 무언가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하나 더, 한 걸음 더 나아진 내 모습. 그렇게 한걸음 씩 나아가는 것. 그것이 성장이라고 턱걸이 영상은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턱걸이를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처음엔 나도 올라가기는커녕 몇 초 동안 매달리기조차 안 됐다. 근력의 문제인가, 요령의 문제인가, 하며 인터넷 자료를 뒤적이며 ‘어떻게 하면 턱걸이를 잘할 수 있을까?’의 대답을 찾아봤다. 다들 각자만의 숨겨놓은 비결이 있었지만 그들의 공통점도 있었다. 매일 반복하는 것. 그리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것. 말 그대로 자신과 싸움에서 이기라는 것이었다.


매일 철봉에 매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손바닥에 어느 정도 굳은살이 생겨도 아프다. 처음에는 매달려 있는 1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이걸 놓을까? 내가 지금 이걸 왜 하고 있지?’ 그런데도 끝까지 버텨낸다면 어느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하늘을 가로로 나누는 봉과 가까워지는 것. 그때가 바로 성공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다.


 ‘턱걸이 하나로 무슨 삶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거창하게 군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삶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매달려 본 사람은 안다. 철봉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본 사람은 손에 굳은살이 뜯겨나가는 아픔이 있어도 어떻게든 자신의 앞에 놓인 희망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지금 하는 일이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가슴 답답함을 느낀다면 당장 문을 열고 나가 주변 공원의 철봉, 아니 방문 틀에 철봉이라도 달아보자. 혹시 아는가, 내가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근력’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지.     

이전 06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거라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