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고향에서의 시간들

by 강흐름

내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은 요즘 어린아이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고 살았지만 그만큼 추억도 많다.

때로는 팬티만 입거나 발가벗고 바닷가에 뛰어들었고, 조개까지 캐고는 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수영을 아마 그때 자연스럽게 터득하지 않았나 싶다.

오직 손과 발로만 여기저기서 모은 조개들을 잔뜩 가지고 나와 아무런 양념 없이 냄비에 끊이기만 해도 맛이 기가 막혔다.

찌그러진 작은 냄비에다 바닷물로 쌀밥을 지으면 그 또한 꼬들꼬들하여 끝내주는 맛을 자랑한다.

일반 물과 바닷물로 지은 밥맛이 얼마나 다른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가끔 심심하거나 배가 고플 때면 바닷가에 나가 바위에 붙어있는 굴을 한가득 땄다.

손톱만 한 크기의 굴이었다. 꼬챙이로 그걸 깨서 바로 입으로 가져가면 지금의 석회굴 맛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맛있다.


그때 그 시절, 나의 고향 바닷가에는 그만큼 먹을거리가 많았다.

그 덕에 늘 재밌었고 친구들과의 추억도 하나둘씩 쌓이고는 했다.

어느 여름이었다.

동네의 어느 참외 밭에서 친구들과 참외를 훔쳐먹다 주인아저씨한테 걸린 적이 있다.

“거기 어느 놈들이여!! 다들 거기 딱 서라!!!”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너무 놀란 마음에 먹던 참외마저 냅다 버리고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버렸다.

“느그들 누구 집 아들이여?”

“저어기 저 집 사는 아들인디요.”라며 친구들과 내가 돌아가며 대답을 했다.

그런데 대답을 다 들은 주인아저씨가 문득 나에게 “느그 아버님이 강ㅇㅇ어르신이냐”라고 물으시길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네..”라고 했더니 갑자기 참외 몇 개를 봉지에 담아 주시는 게 아닌가.

당시엔 이게 뭔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와 잘 아는 분이셨던 것이다.

놀란 마음을 아버지 덕에 한시름 놓았던 것 같다.


11월의 어느 늦은 가을의 기억도 난다.

이번에는 주인이 누군지도 모를 무밭에서 친구들과 무를 뽑아 먹고 있었다.

그때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오시더니 “야들아, 무가 맛있냐?” 물으시길래 우리는 해맑게

“네, 맛있어요!”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많이 묵고 가라잉”이라던 아주머니.

나중에 알고 보니 무밭의 주인이셨다.

자기들 밭인 것처럼 태연하게 무를 뽑아 먹고 있던 우리가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시골의 인심과 정이 많은 울림을 줬던 것 같다.


여름철엔 많은 비가 오고 나면 선생님과 학교 근처의 개천이나 논두렁 같은 데서 미꾸라지도 잡고 붕어도 가끔 발견하고는 했다. 개구리를 잡아 동네 형님들에게 상납도 해봤고, 집 근처 ‘닭이봉’이라는 작은 산에서

토끼와 꿩을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 산 맨 위에서부터 여러 명이 간격을 두고 천천히 내려오다 보면 토끼가 보일 때가 있다. 다 함께 아래로 몰다 보면 토끼가 뛰지를 못하는데 그때 잡은 토끼를 동네 형님들이 챙겨가고는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엔 죽다 살아날 뻔한 적도 있다.

그 시절엔 주로 밖에서 뛰어놀고는 했는데 당시에 동네에서 일명 ‘미친 x’으로 불리던 사람이 있었다.

철없던 나와 친구들은 그 사람들 놀리며 한참을 따라다녔는데 내가 그만 붙잡혀 버렸다.

그 사람이 나를 깔고 앉고서 돌멩이로 머리를 한참 동안 내리쳤다. 나도 모르게 그걸 막으려다 생긴 흉터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마 스님처럼 머리를 깎게 된다면 그때 생긴 나의 흉터들이 모두 드러날 것이다.

그때 나를 깔아뭉갰던 그 사람이 얼마나 무겁고 힘이 셌던지.

다행히 같이 있던 친구들이 나의 아버지에게 알렸고 덕분에 겨우 빠져나왔던 것 같다.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시골이다 보니 당장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급하게 동네 가정집 의사에게 수술을 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사건이다.


그해 여름에는 나의 가출 사건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와 우리 집에 오가시던 어른들, 그리고 형님들까지 모두가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라고 한동안 놀리셨다. 빈도가 잦아질수록 나는 그 말을 점점 믿기 시작했고 어느 날 밤,

무수히 많은 별을 보며 나의 진짜 부모님은 누구실까 라는 생각을 하며 바닷가에서 잠이 들었다.

그 사이 온 동네에서 나를 찾느라 난리가 났었다는데 결국 나는 집으로 끌려가 아버지께 엉덩이를 셀 수 없이 맞고 엄청 혼이 났다.

뒤늦게 왜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표현했는지를 알게 되고 나서야 황당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향에서의 기억들이 선명해진다.

한 때의 나도 철없던 소년이었음을, 멋모르고 뛰어다디 던 어린아이였음을 떠올리게 되는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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