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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Mar 27. 2020

짧은 치마를 입으면 그래도 되나요?

피해자에게  향한 손가락을 거두어 주세요.

대학을 다닐 때 학교와 조금 떨어진  주택가에서 자취를 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5분 정도 큰길을 지나 작은 골목으로 꺾으면 주택들이 한 울타리를 쓰며 붙어 있던 곳이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과제를 하다가 늦게서 집으로 갔다. 10시쯤이었으니 초저녁 잠이 많은 할머니가 아니고서야 아주 늦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해 걷고 있었다. 길을 걷는 사람이 더러 있어서 뒤를 돌아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큰길에서 작은 골목으로 꺾어 세 번째 대문이 내가 살던 집이었다. 왼쪽으로 몸을 돌려 두 번째 대문을 지나는 순간 이었다. 뒤에서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 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다다 뛰어 와서 순식간에 뒤에서 팔로 목을 감아 졸랐다. 다른 한 손은 바지 아래쪽을 뒤에서 앞으로 휘 감았다. 너무 짧은 순간의 일이라 얼굴을 보지도 못했고 놀라서 비명만 질렀다.


조용한 주택가에 비명이 울리니 여기저기서 불이 켜지며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다시 후두둑 뛰어 도망을 갔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 주인집 아주머니께 정황을 설명했다. 바로 들은 말은 일찍 다니지 왜 늦게 다니냐는 말이었다. 방으로 들어와서도 팔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n번방 운영자인 조주빈의 얼굴이 공개 되면서 피해자의 인터뷰를 들었다. 당시에 미성년자였다는 피해자는 자신이 조주빈의 ‘노예’가 되어가는 과정을 설명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의 미성년자에게 접근을 해, 개인정보를 알아내고 협박을 하며 점점 기상천외한 영상을 요구하는 과정이었다. 인터뷰를 한 학생은 그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돈을 많이 준다는 미끼에 낚여 신체 사진을 찍어 보냈다고 한다.


애당초 자기의 동기가 어른과 조건 만남을 갖고 돈을 받겠다는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이 부끄러워 계속 협박을 당했다고 했다. 처음에 바로 신고를 했으면 조금의 부끄러움만 감수하면 되었을 것을 점점 빠져나올 수 없는 올가미에 빠져든 것이다. 다행히 그 학생은 용감해서 자기가 증언을 해야 다른 미성년자 피해가 멈출 수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냈다고 한다.


조주빈은 SNS에서 신체노출 사진을 찍는 여자들을 팔로잉하고 있었다고 한다. 피해자를 물색하는 한 방법이었다는 추측이었다. 저런 사진을 찍어 올리는 여자들은 이미 자기를 성폭행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댓글을 보았다. ‘노예’가 된 학생들이 원인을 제공했다는,어김없이 피해자에게 가하는 손가락질이 많았다.


피해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성추행을 당한 사람에게 화장을 했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를 묻는 것은 예전부터 있던 일이다. 자기의 SNS에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은 사진을 올리는 사람이 관종일 수는 있다. 관종이면 ‘좋아요’하트와  ‘멋져요’라는 댓글을 원한다는 것이지, 성폭행을 당하겠다는 메시지는 아니다. 누군가 ‘살기 싫다’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고 해서 자기를 죽여달라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피해를 받은 것도 힘든데, 피해자가 숨어야 했던 사례는 아주 많다. 성추행 성폭행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데이트 폭력을 비롯한 가정 폭력, 다단계 피해, 사이비 피해자들이 그렇다.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폭력을 당한 사람이 수치스러워하고 숨겨야 한다는 건 억울한 노릇이다. 다단계나 사이비 또한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면, 어떻게 그런 어리숙한 논리에 속을 수가 있냐고 비난이 돌아올까 두려워한다. 조용히 숨기고 혼자 괴로워하며 자책만 한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수치스러워하는 데에도 단계가 있다. 돈에 대한 피해나 신체 피해는 가볍게 보지만 성피해자는 유난히 피해자를 탓한다. 데이트 폭력이나 남편의 폭력, 교주의 성폭행은 상대를 제압하는 도구로 성을 사용하는 것이다. 성피해자에게 돌아가는 비난은 피해자의 신고를 더디게 하고 가해자를 양산하는 기능을 한다.


폭력남편이나 성폭행의 심리는 비슷한 듯하다. 상대를 노예화하고 소유물로 취급하여 마음대로 조정하고 싶어한다. 감시와 협박을 일삼으며 공포로 학대대상을 지속적으로 유린한다. 가해자는 애당초 범죄 대상을 고를 때 미약한 청소년, 경제적 약자, 가족의 보호도 허술한 상대를 고른다. 즉, 약자를 가해하는 찌질한 범죄인 것이다.


사이비와 다단계의 시스템도 비슷하다. 사이비는 거룩하게 포장된 교리에 속아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피해자들이 노예가 되어야 한다. 다단계는 ‘교리’대신 ‘돈’이 권력으로 교주자리를 차지한다. 몇 년만 고생하면 일하지 않고 고소득을 가져오는 저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희망 고문이다. 다단계나 사이비의 피해자 물색도 상당히 치밀하게 공들여 물색한다. 즉, 내가 아무리 단단해도 작전을 짜고 몇 명이 작정하고 공략을 해오면 당할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가해자를 비난하기보다는 피해자를 탓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피해자를 볼 때 공감을 하고 함께 분노해 주면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피해자를 탓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런 사기에 당하다니 어떻게 그렇게 단순해? 왜 그런 짧은 옷을 입었어? 왜 낯선 사람에게 그렇게 친절한 대답을 해 줬어? 하면서.


피해자를 보는 마음에는 무력감이 작용한다. 복잡한 놀이공원에서 아이를 잃어버리면 엄마는 패닉이 된다. 극도의 공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무력감을 느낀 후 아이를 찾으면 첫 반응은 화를 내며 아이를 탓하게 된다.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한 아이를 탓한 후에 안도의 눈물을 흘린다. 피해자를 볼 때도 사람들은 같은 무력감을 가진다.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나 또한 비슷한 입장이면 당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나에게 무력감과 두려움을 주는 피해자가 싫은 것이다. 그러니 비난을 하는 쪽을 택한다. 비난을 함으로써 자신의 두려움과 무력감에 화를 내고 숨기는 것이다.


무력감에 반대되는 감정이 유능감이다. 내가 무력하지 않고 능력이 있다는 감정이고 쉬운 전문용어로 ‘잘난척’이다. 자신의 무능을 받아들이기 싫은 잘난척의 감정이 피해자를 비난하는 감정이다. 어떤 학자는 '권력감정'이라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어쨌거나 잘난척을 해서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는 심리적 방어수단이다.  


작정하고 속이며 다가오는 소시오패스 앞에서 누구나 무력할 수 밖에 없다. 피해자에게 향한 손가락을 거두고 함께 분노하며 어깨를 다독거려주면 좋겠다. 피해자를 탓하는 마음은 약자를 괴롭히려는 가해자의 지배욕구와 닮아있다. 피해자를 공격하는 입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 한 것인지를 인지하면 정작 피해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가 보일 것이다.


피해자가 숨으니 가해자는 점점 더 괴물이 될 수 있었다. 피해자에게 비난을 하는 눈길만 거둬도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 뿐만 아니라 성폭행, 사이비, 가정폭력의 피해자들 또한 신고가 활발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스무 살 때, 골목길 공격을 당한 날 밤은 벌벌 떨며 보냈다. 다음 날은 온 골목에 소문이 났고, 며칠 동안 앞,뒷집 할머니들로부터 일찍 다니라는 걱정을 들어야만 했다. 후로 나는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면 너무 무서워서 훅 주저앉는 기간을 보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는 세월을 3년 정도 지내고 나서야 조금 나아 졌다. 뒤에서 발자국소리가 나면 가슴이 쿵쾅거려 뒷 사람을 먼저 보내고 뒤에서 따라가야 마음이 편해지는 정도까지 극복 되는데 10년이 걸렸다. 큰일을 당한 것도 아닌데도 그 정도로 트라우마가 오래 지속되었다.


심각한 각종 성 피해자가 이겨야 할 트라우마를 생각한다면 비난이 어떻게 나올 수 있겠는가? 아는 척도 하지 말고 섣부른 위안도 필요없다. 성적 피해자를 향한 지나친 피해자 연민도 또다른 가해이다. 법적으로 합당한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의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피해자를 위한 일은 합당한 처벌  그리고 함께하는 분노 ㅡ 이미지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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